[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세계에서 ➁ 산딸기 콩포트 한 스푼 (2)
박지효 기자
“… 해서, 연역적 탐구라는 방법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 변론이 끝나자 의례적인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2분 11초. 시계를 보지 못해 발표 내내 불안했는데,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지킬 수 있었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는다.
연구방법론 수업은 바로 다음 시간이었다. 이 수업의 평가는 특이하게 토론 형식으로 평가가 이루어진다.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기본적인 토론의 흐름은 같았지만, 개별 평가를 위해 바뀐 부분이 많아 사실 토론이라기보단 일종의 스피치에 가까웠다.
비판적 사고 역량과 집단 지성 활용의 능력을 기름. 나는 수업 기획서에 쓰여있을 평가 요소를 막연히 짐작했다. 이 세계에는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많지만, 그것들의 체계는 매우 정밀했다. 연구방법론을 배우는 데 왜 토론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정작 토론이 필요할 법한 생태 윤리학 수업은 논술형으로 진행하면서.
이해되지 못할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평가 방식에 이상함을 느껴도 무어라 지적할 수는 없다는 소리다. 괜히 의문을 표했다가 포인트라도 깎이면, 그게 더 멍청한 짓이었으니까. 파멸 전, 중세 시대엔 불경죄라는 죄목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 자체가 불경죄가 아니면 무어란 말일까.
정해진 시간을 준수하지 못하거나 논리적으로 주장을 내세우지 못할 경우, 혹은 반대 측의 돌발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가차 없이 감점을 받는데, 변론하면서도 특별히 실수를 한 부분은 없었다. 질문이 들어오지 않아 답을 할 필요도 없었고. 애초에 진짜 토론이 아니라서, 반대편 아이들도 암묵적으로 질문을 하지 않는 풍조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점수를 깎이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은 있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나는 이런 압박 때문에 토론형 수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애들이 가장 많이 낙담하는 것도 이런 평가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평가 방식은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일이라는 건 안다. 역량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 모든 평가의 원칙이므로,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를 했다.
다만 이성과 감성이 다르듯, 대답하지 못하거나 시간을 넘겨 헛숨을 들이키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 아이들의 실수를 안타까워하는 이타적인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마땅한 흐름 자체가 다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는 다정하지 않고, 평가가 다정한 게 더 이상한 거다. 그래, 그게 마땅한 진리일 테다. 하지만.
머릿속이, 수많은 변론과 이성의 방어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숱한 혼란에 머리가 지끈거려서, 나는 다급히 다른 것들을 떠올렸다. 이미 반대 측 아이의 변론은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여로와의 필담을 복기했다. 적어도 그 기묘한 것들은 저 토론만큼 고루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잡아본 볼펜의 감촉과, 두근대던 심장이 안정 궤도를 찾아가는 느낌 따위 등을.
나중에야 느낀 사실이지만, 여로는 그때 내가 거리를 두려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여로가 내보인 어떤 ‘형이상학적인’ 것들에 대한 사랑에 비해, 내게 다가오는 발걸음은 아주 조심스러웠으니까. 여전히 여로의 그 세계들을 이해하진 못했으나, 확실하게 느낀 건 있었다. 여로의 그것은, 적어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보다는 훨씬 따뜻하다는 것을.
아이들의 시선을 단번에 얌전하게 만든 여로의 어른스러움은 내 이상 증세를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그게 못내 안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가에 막힌 기분이 들었다.
여로를 생각하면 항상 어딘가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벽을 넘어 최고가 되려 했는데, 벽 너머엔 더 높은 벽이 있었다. 얼마나 더 공부해야, 얼마나 더 의젓해져야 여로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여로의 다정에 경쟁의식을 느끼는 내가 역겨우면서도, 도저히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나는, 여로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여로는 내가 알고 있는 ‘이치’와는 정반대의 사람인데도?
“… 한 점을 고려하면, 귀납적 방법을 이용한 탐구가 명제를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될-”
“그만.”
선생님의 단정적인 어조가 반대 측 학생의 말을 끊었다. 선생님이 홀로그램으로 띄워낸 초시계는 2분 30초를 막 넘기고 있었다. 일정 시간을 넘기거나 채우지 못해도, 그렇다고 내용을 불완전하게 얘기해서도 안 됐다. 학생의 얼굴이 절망감으로 차올랐으나 선생님은 단정적으로 학생에게 앉으라 손짓할 뿐이었다.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눈으로 마주하니 무지에 대한 확신만 더욱 깊어졌다. 역시 모르겠다. 나는 이것들을 왜 또 잔인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A-29 여로입니다. 마지막 변론 시작하겠습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반대 측 테이블에서 여로가 일어나고 있었다. 선생님께 간다더니, 이 평가를 같이 보기 위해서였나? 여로는 이전 학교에서 보고 온 과목과 안 보고 온 과목을 나눠서 하나씩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고 있었다. 아마 지금 일어나서 발표해야 하는 것도 그 이유이겠으나… 아까 설명을 들었다고, 바로 할 수 있을까. 나는 걱정을 담아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어쨌든, 잘 했으면 좋겠는데.
그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꽤나 충동적으로 힘내라는 입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그냥, 뭐랄까. 여로의 얼굴이 저 학생처럼 절망감으로 차오르는 건, 그다지 보고 싶은 광경은 아니었다. 여로마저 저런 표정을 짓는다면, 이 혼란이 영원히 해갈되지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연역적 탐구는 가설 설계가 중요합니다. 다르게 얘기하면, 잘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를 연구할 때는 그 기본적인 틀을 세우는 게 어려우니, 탐구 자체에는 불리하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걱정과 별개로, 내 응원에 미소를 지어 보인 여로의 변론은 이번에도 완벽했다. 어조와 성량은 변론을 더 논리적으로 들리게 하도록 적당했고, 내용에는 한 치의 논리적 오류도 없었다. 더는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쯤 되면 경이로울 수준이다. 바로 전에 평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온 사람이, 이렇게 발표를 완벽히 진행할 수 있을까.
“… 따라서 저는 상기 주제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귀납적 추론 형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변론 마칩니다.”
2분 15초. 여로는 안정적인 시간 내에 발표를 끝마쳤다. 얼굴에 일말의 긴장이나 안도도 띠지 않은 채로. 사람이 어찌 저리 동요가 없을 수 있을까. 나는 책상 속에 넣어둔 선물 받은 책을 매만지며 속으로 기함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여로라는 인간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 뛰어난 능력으로 온갖 과제들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으면서, 왜 세상의 진리에 부정할까. 왜 그에게는 쉽고 아름다울 세계를, 저 스스로 빠져나가려 하고 있을까….
순간,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여로와 눈이 마주쳤다. 반대 측의 마지막 아이가 변론을 시작하는데, 여로는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어려워. 이거 별로야.’
입술을 과장되게 삐죽이는 모습이 퍽 아이답다. 나는 머릿속에 있는 모든 혼란이 시끄럽게 울리는 것을 잠시 잊고 픽 웃어버렸다.
‘잘 했잖아. 준비도 짧게 한 것 같던데.’
‘준비하는 건 어렵지 않아. 토론을 흉내 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야.’
멈칫. 나는 꽤 바쁘게 여로의 입 모양을 해석하다가, 아까 내가 했던 생각과 같은 말을 하는 여로에 잠시 몸을 굳혔다. … 그게 내 생각만이 아니었다고? 아니, 물론 여로는 그렇게 말할 것 같긴 했다. 다만 놀란 것은, 은연중에 내가 여로와 같은 방식으로 사고 하고 있어서…, 그리고 그게 또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내가 여로를 피하려고 한 이유가, 서서히 언어로 정립이 되기 시작했다. 어딘가 남들보다 특별한 아이는,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매몰되거나, 우상화되거나, 둘 중 하나다. 여로는 후자의 예시였고, 나는 전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오리 새끼에 불과했다. 내가 이 모습으로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던 건 배경색에 내 모습을 숨길 줄 알아서였다. 도저히 내 색채를 내보이고도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받아들이라 말하는 여로가 두려웠던 게 아닐까. 정작 저 푸른 눈은 나와 다르게, 아무런 과오를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자, 그럼 D조를 끝으로 토론 평가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채점 결과 발표 및 이의 제기는 다음 시간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상념에 빠진 사이 어느새 선생님이 수업을 파했다. 나는 온갖 생각의 여파에 조금 멍한 눈으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다음 수업 때도 종이가 필요할까?”
“…응?”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몽상에서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해 느리적 느리적 움직이는 내 앞에, 여로가 먼저 와 있다. 여로는 의문 어린 시선을 마주하더니, 장난스러운 손짓으로 칩이 들어있을 관자놀이 부근을 매만졌다.
“다음 시간에 점수 확인한다잖아. 아까 그랬던 것처럼 힘들어 할까봐.”
“아니, 아까는…!”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나가느라 어수선하던 교실의 시선이 잠시 내게로 쏠렸다. 나는 급하게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잠깐, 진짜 잠깐 그런 거야… 그리고 이 평가는 괜찮게 봤어.”
“부끄러우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만약 점수 때문에 숨이 막히면, 도망치라고 하는 말이었어.”
너는 일어나지 않길 바랄 거고, 나도 딱히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가끔 불가항력적인 일이 일어나긴 하잖아. 여로가 덧붙였다.
“… 도망을 치라고? 무슨… 점수 확인도 안 하고 뛰쳐나가기라도 하라는 거야?”
“그건 회피고. 회피랑 도망은 달라. 도망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해. 어떤 걸 목도하고 나서, 그걸 감당할 수 없겠다고 판단을 내리면,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는 용기.”
내 떨떠름한 물음에도 여로는 정성을 담아 정갈한 언어로 내게 대답했다. 여로의 말에는 어떤 철학이 강렬하게 자리를 잡고있는 것 같았다.
“그 용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너도 지금껏 버티고 있었겠지.”
그러니까, 자신을 이미 완벽하게 통찰해서, 타인까지 봐줄 수 있는, 어떤 높은 경지의 철학.
“… 도망치는 게 용기라. 그래, 맞긴 해. 다만 그냥 도망칠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어차피 이제는 도망칠 곳도 없으니까. 나는 뒷말은 구태여 내뱉지 않고 상투적인 웃음을 지었다. 조금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수업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으므로, 여기서 더 깊은 혼란에 빠지는 건 좋지 않았다.
또 그것은 여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했다. 여전히 받아들이긴 어려웠으나, 제 철학과 마음을 아낌없이 전달해 준 사람에게, 예의 없게 굴고 싶진 않았으니까.
여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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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에 대한 생각은 복잡했다. 그러나 해답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한 곳에 있었다. 사실은 모든 문제가 아주 간단한 곳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그것은 수용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붙잡고 있는 생각들을 일부 내려놨을 때라야 이행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생각과는 달리, 거기에도 그리 오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사락.
점심시간. 모두가 자리를 비워 고요한 교실 안에, 어울리지 않는 책 넘기는 소리가 고요를 메웠다. 종이의 내음은 가까이 있는 사람만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미약했으나 그 자체로 강렬한 색채였다.
나는 그저 당신이 만든 산딸기 콩포트의 달큰한 내음을 사랑할 뿐이었어요.
그 색채, 그 향기, 혀를 감싸는 매혹적인 붉은 것들….
내 오감이 단지 그걸 사랑하겠다는데, 세상의 다른 어떤 것들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여로의 글씨체와 닮은 글씨. 텍스트로 쓰인 글씨 중간중간엔 필기체로 쓰인 인물의 편지가 있었다. 이름 모를 감정을 언어로 옮겨 놓았다면 그런 모습일까. 나는 책장을 넘기고 한참 동안 그저 그것을 가만히 쓸어보기만 했다. 고작 책 몇 줄이 딱딱해진 사고를 이리 크게 바뀌고 있다는 것은, 고작 신기하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부족한 방대함이었다.
생각을 내려놓는 과정은 그리 고되지 않았다. 남의 얘기를 듣는 것처럼 멀거니 듣고 있었을 뿐인데도, 도망치라 얘기하는 그 다정함은 이미 마음에 와닿은 것일까. 혹은 드문 달콤함에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런 다정을 이기지 못해, 나는 결국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여로가 선물한 책을 열었다. 며칠간 성물을 대하는 것처럼 수업 시간 내내, 자습 시간 내내 책상 아래로 숨긴 딱딱한 양장본의 표면을 쓸고 있자니, 도저히 책장을 넘기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로가 준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질 때마다 문득 든 생각들은 가설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답을 맞추기를 종용하는 게 아니라, 답이 틀렸다고 미칠 듯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아주 낮은 자리에서 나를 포용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수식이 아닌 다른 것을 들여다본 것이, 아마 그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여로가 준 문학책은 파멸 이전에 출판된 이름 모를 작가의 것이었다.
양장본은커녕 종이책도 출판하는 곳이 드문 시대에, 옛 내음이 물씬 풍기는 책을 도대체 어떻게 구한 건지 모르겠다. 책에서는 종이 냄새와 함께 달큰하면서도 매운 냄새가 났다. 그것은 민간에서 구전되는 구차한 사랑 이야기 같기도 하고, 일종의 성장기 같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난해하게만 느껴져서 관둘까 생각하기도 했다. 조각조각 이어진 그 내용은 생소했고, 이따금은 전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들이 거북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거부감을 애써 내리누르면서도 정작 책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다. 여로와의 대화가 그리 느껴졌듯이, 단념한다면 중요한 것을 놓쳐버릴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난해한 가운데서도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왜 그 정제되지 못한 것들은, 검은 활자로만 이루어져 있어도 어떤 색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평생 써보지 않아 이론상의 단어로만 존재했던 아름답다는 표현을 쓰고 싶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화학식이라는 화학 선생님의 말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선생님들은 깔끔하게 정리된 방정식의 움직임이, 인체의 흐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의 잘 짜인 체계 따위들만 아름답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이렇게 정제되지 못한 것들도 아름답다고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명아.”
한결이 나를 불렀을 때, 내 시선은 책의 어느 한 구절에 집중되어 있었다. 한결이 두 번, 세 번 더 나를 부르고 나서야 나는 그가 내 앞에 와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야!”
“어, 어?”
큰 외침에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큰 소리로 나를 부른 한결이 어휴, 하는 한숨을 내쉬며 내 앞에 걸터앉는다. 태블릿이 기하 문제를 띄운 채로 켜져 있는 걸 보니, 자습실에서 공부하다가 바로 교실로 돌아온 듯 보였다. … 아, 어쩐지. 밥 먹으러 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식사에 있어서는 꽤 수동적인 사람이었고, 어떤 것에 몰두할 땐 누가 먹으러 가자고 하지 않는 이상 먼저 식사를 챙기진 않았다. 항상 한결이 먼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나를 부르곤 했는데, 그가 없으니 자리를 뜰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뭘 보길래 세 번을 불렀는데 못 들어. 종이책? 아직도 종이책으로 나오는 논문이 있나?”
한결이 내가 보던 종이책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읽던 곳의 페이지를 기억한 뒤 책을 덮은 나는 멋쩍게 웃으며 책을 가리려 슬쩍 손으로 덮었다. 분명 흥미로웠고, 매혹적인 것도 맞았으나, 공부하다 온 것이 분명한 한결의 앞에서 단순한 흥미를 위해 이 백 년 전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낯부끄러웠다.
“그냥, 어쩌다 보니 읽게 돼서… 넌 자습실 다녀온 거야? 점심시간 종 치자마자 사라지던데.”
나는 한결의 관심을 돌리려 그의 옆구리에 끼워진 태블릿을 눈짓했다. 한결은 점심시간 전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에서 증발했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애매했기에 나는 그냥 한결이 나타날 때까지 교실에 남아있길 택했다. 그러다 시간도 잊을 정도로 책에 빠져버린 것이고.
내 물음에 한결이 어딘가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항상 장난스레 웃고 있던 입매가 단단하게 굳은 게, 어떤 결연한 의지를 떠올리게 했다.
“이제부터는 밥 먹는 시간 10분을 넘기지 않고 공부할 거야. 점심시간 시작하자마자 자습실 가서 공부하고, 10분 남았을 때 식당으로 가려고.”
“뭐? …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한결의 결연한 표정은 무리한 결심을 한 직후이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흔들림 없는 눈빛이, 이미 그의 결의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걱정을 담아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후, 하더니 한숨을 뱉었다.
“이젠 진짜 졸업 시험 준비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서… 그동안은 졸업 시험보다 레포트나 학교 시험만 집중했으니까, 졸업 시험에서 좋은 성적 받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 너도 시험 기간에 이렇게 했으니까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일 년도 안 남았다니까 너무 초조한 것도 있어서.”
여러모로 이편이 나아. 한결이 덧붙이자 나는 갑자기 두통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러니까, 한결의 말대로 이것은 바쁠 때 내가 먼저 만들었던 루틴이기도 했다. 아예 끼니를 거르다가 쓰러지는 건 더 큰 손해였으므로, 적당히 건강을 유지하면서 공부 시간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만든.
척 봐도 무리하는 게 분명한 스케줄이라 나도 매일같이 이렇게 하진 못했고, 한결도 매번 곁에서 말렸던 기억이 있다. 밥은 편하게 먹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근데 한결이 이렇게 나오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 네가 저번에 말렸었잖아. 밥은 편하게 먹어야지.”
“응, 사실 그게 맞는데… 어차피 얼마 남지도 않았고, 그때 그 교수님도 그러셨잖아. 지금을 희생해야 한다고. 네가 제일 잘 알면서 뭘 그래. 이 기만자.”
한결이 다크써클이 내려앉은 눈으로 킥킥댔다. 한결의 말은 논리적이었지만, 나는 하나하나 반박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정작 무어라 반박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로라면 확실한 언어로 이 모순된 것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차마 지금을 희생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는 애의 의지를, 불확실한 무언가로 좌절시킬 수가 없었다. 학교의 관점으로 보면, 그게 훌륭한 학생의 자세였으니까.
그것은 내 삶이기도 했다. 다만 한결처럼, 어떤 수준의 결과와 같은 가시적인 목표를 가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내 노력은 목포에 대한 열의에 불타올랐기 때문이라기보단… 그냥 주변의 환경에 맞춘 것이었다. 지배자라고 느낀 것에 지배되어, 다른 아이들보다 무리하게 공부하자 생각했던 게, 타인의 눈에는 남들과 다른 열의와 의지로 비춰졌던 것이다.
그러나, 무리도 모범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서만이 아니라, 그냥 이곳 어딘가에 잘못된 구석이 있는 것 아닐까. 나는 미숙한 것들이라도 꺼내 놓으려 입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는, 입술을 떼려 하다가, 한결의 공허한 시야와 시선이 닿았다.
… 그 순간, 문득 또 어딘가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결은 저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태평하게 문학이나 읽고 있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져서.
그 피로 짙은 얼굴을 보니, 당장이라도 책을 닫고 수식을 풀어내야 할 것만 같았다. 마음이라는 게 무슨,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오락가락했다. 나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에 한숨을 내쉬고 책을 가방에 넣었다.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어떤 것을 이해해야 하는 건지… 좁은 내 시야에선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럼 일단 밥 먹으러 가자… 10분이면 충분하니까.”
“오키. 지금 가면 사람도 얼마 없을 테니까…”
나는 한결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득 든 질문을, 조심스럽게 내뱉으면서.
“… 졸업 시험 준비하겠다고 한 거, 그래도 후회 없겠어?”
그가 어떤 사고를 거치고 내린 결론일지 알 수 없기에 함부로 얘기할 수 없었다. 그 사고에는 분명 어떤 고통들이 수반되었을 것이므로 더더욱. 그러나 한결은 지친 입꼬리를 당겨 웃을 뿐이었다. 여로의 것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어떤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여로의 미소와는 달리, 한결의 것은 툭 치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여러 번 고민해 봤는데, 포인트로 지원하더라도 점수가 안 되면, 가고 싶지 않았더라도 안전한 곳에 지원하기도 하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별다를 것도 없으니까. 간 데서 열심히 하면 뭐든 되겠지.”
순간, 밝은 어투를 자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한결의 눈이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번들거렸다. 멈칫. 나는 순간 한결을 따라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 내려앉은 눈가를 바라보았다.
… 문득 덮어두었던 기억이 하나 수면 위로 올라왔다. 분홍빛으로 빛나는 노을 아래서 한결과 공을 차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잔뜩 지친 한결의 모습 위로 겹쳐 보였다.
하급 학교 때와 비교해서, 참 많이 달라진 눈빛이다.
이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은 어른스러운 성숙함이었다. 그것은 포인트와 직결되어 있기도 했고, 아이들은 대부분 정제된 방식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사고했다. 그것은 한결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결은 장난기가 유독 많은 애였다. 천진난만하고, 한 조각의 절망에도 금세 웃어 보일 줄 아는, 웃는 모습이 예쁜 아이. 장난이 과도할 때는 나도 한결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긴 했으나, 이 학교에 와서는 거의 그럴 일이 없었다. 한결의 장난기도 거의 정제된 것으로 변해갔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한결의 눈빛에서 그 정제된 장난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결이라는 인간의 표상처럼 여겼던 그 장난기가 꺼진 자리에는 어떤 건강하지 못한 종류의 의지와 피로가 존재했다.
만약, 시험이 끝나고 그것마저 사라지게 된다면, 한결에게는 무엇이 남는 걸까.
나는 원래 텅 비어버린 인간이다. 공허는 일상이었고, 무채색의 삶이 찾아온다고 해도 적당히 무던히 넘겨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한결은 아니었다. 한결은 잘 웃고, 유머러스하고, 웃음으로 타인을 포용할 줄 아는 애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포인트가 쌓이진 않는다. 그것으로 성적이 오르지도 않았다.
… 상급 학교는, 한결이 얼마나 잘 웃고 유머러스하고 재치있는 아이인지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한결을 바라보는 눈빛에, 서서히 슬픔이 차올랐다. 보통 일반식을 먹던 한결은, 그날부터 나와 같이 아무런 맛도 없는 영양보충식을 먹기 시작했다.
[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세계에서>는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➁ 산딸기 콩포트 한 스푼 (3)에서 계속)
박지효 기자 jihyop@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