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 ③ 모순 (2)
박지효 기자
일간스포츠는 곽재선 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제1회 하이니티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인 금알음 작가의 「세계에서」와 김재인 작가의 「반항의 향」을 매주 1회씩 순차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는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많은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두 작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편집자주>
나와 서화가 대화를 나눈 것은 다음 날 점심시간이었다. 우리는 종종 점심을 거르고 아무도 없는 교실에 모였다. 청소한 지 오래되어 보이는 뿌연 창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익숙한 속도로 문이 열렸다. 딱 하나만 물어보기로 다짐하고 서화를 불렀다.
“어제, 네가 왜 대표였던 거야?”
“졸았냐?”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서화가 얄미웠다. 잠 많은 건 자기도 똑같으면서.
“졸았다. 그러는 너는 뭐가 좋다고 클록터에 센터 대표로 인사를 해?”
서화가 급히 눈짓했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사정이 있지. 협조한 거야. 이모션 사이클 시행 어떻게 생각해?”
어디선가 우리를 감시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낌새를 한 번 의식하니 편하게 말할 수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거, 끝내버리는 게 나을지도.”
서로 전하고 싶은 바가 있지만 말하지 못해 답답했다. 힘껏 소리치고 싶었다. 당신들이 뭔데 나를 막막하게 하냐고 말이다. 서화가 표정으로 신호를 주었으니 몰래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아마 도청 장치가 있을 것이다.
“연락은 왜 안 봐?”
“폰이 망가져서. 잘 작동을 안 해.”
거짓말. 서화는 거짓말을 할 때면 눈동자의 안광이 흐릿해졌다. 스마트폰도 학생 대표의 대가로 클록터가 감시할 가능성이 있었다.
“알겠어.”
대화는 내 어설픈 연기가 무너지기 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나의 추측이 맞다면 센터는 보안을 강화할 거다. 그로 인해 무단 외출은 더 자제될 것이고, 최후의 수단으로 사각지대를 찾아야 했다. 센터와 클록터의 감시를 막을 사각지대 말이다.
내가 골똘히 생각하는 사이 서화가 다급하게 나를 불러 세웠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센터 관리실에 들어갔을 때, 위치추적 전용 노트북의 화면을 봤는데 모두 평면이었어.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말이야. 똑같은 구조를 지닌 두 층을 찾으면 추적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표정을 찡그리며 신호를 보냈다. 도청당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그러자 서화가 오른쪽으로 목을 꺾어 보였다. 작은 크기의 장치가 붙어 있었다.
“빨리 설명할게. 도청기야. 나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 제안이 들어왔는데, 수락했거든. 우리를 위해서야. 도청기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몰라. 이것도 약점이 있어. 내 피부랑 연결을 시킨 건지 가끔 찌릿찌릿해. 작동할 때만 그런 눈치야.”
“잠깐, 제안?”
서화가 입을 뻥긋하다 말고 멈추었다. 그러고는 입 모양으로 안 된다는 말을 건넸다. 다시 도청기가 작동했다. 플라스틱 구조물 안에 아주 작은 불빛이 보였다. 우리는 비교적 바람이 부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바람이 꽤 성가신 잡음을 만들어 낼 거다. 대기업의 기술력을 한낮 잡음이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천천히 감시를 주시하며 내려갔다. 교실의 아래층 복도를 지나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향이 풍겼다. 나는 어릴 적부터 후각이 발달 되었다. 그 덕에 누린 장점도 많았지만, 생선구이의 냄새가 비리다거나 보육원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담배 냄새 때문에 고생했다. 이렇듯 타고난 후각에 꾸준한 시향까지 더해졌으니, 개개인의 체취는 더욱 잘 기억했다. 어디선가 맡아본 향이었다. 머리 아플 정도로 시원하면서도 왜인지 피비린내 같은 살결의 냄새. 정장에 베인 날카로운 사무실 공기. 사전에서 보았던 증오나 역겨움, 그런 게 담긴 청록빛 향이었다. 고민하는 사이 체취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기억 한편에 저장해 둔 증오의 정의를 꺼내려 애썼다. 아주 사무치게 미워함. 또는 그런 마음. 나는 감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모션 사이클에 반대한다. 약간은 역설적이다. 그저 어린 시절 본능에 따라 느낀 감정들에만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센터에 반항하는 것, 맘껏 노래를 부르는 것, 강제로 계약을 맺는 것. 어찌 보면 내게는 이런 상황 자체가 하나의 ‘감정’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문제를 풀고 강의를 들어 한국어를 습득하는 게 아닌 것과 같았다. 하지만 휘연이를 위해서 지나온 상황을 본질적인 감정으로 분석하고 싶었다. 끙끙대며 첫 번째로 가능성을 본 게 향이었다. 서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향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느낀 감정을 다시 한번 반복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정도였다.
서화가 영문을 모르는 듯 지나친 공실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방인 만큼 명패도 붙어 있지 않았다. 우리의 인기척에 뒤를 돌아본 방 안의 남자와 유리창 너머로 눈이 마주쳤다. 서화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클록터의 직원이자 강사였다. 소름이 돋았다. 그와 내가 눈을 맞추는 사이 서화는 복도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남자가 불쾌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몸이 경직되며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저 내가 클록터라는 집단에 기피 의식이 생겨서일지도 모른다.
“한이류 학생?”
긴장한 채로 뒷걸음질 쳤다. 그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었다. 나는 이모션 사이클의 시술 방법을 모른다. 경계를 늦추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건넨 것은 뜻밖의 물건이었다.
“이류 양 물건 맞습니까?”
그는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문학 작품, 그러니까 폐기되어야 할 도서. 내가 폐도서관에서 잠시 집어 들었던 책이었다. 기억이 펼쳐졌다. 선휘연과 함께 있던 사람이었다. 당시 휘연이의 등장으로 인해 정신이 없었던 나는 다른 사람들을 기억할 여지가 없었다.
“지문이 검출되었습니다. 해당 책의 표지에서요. 이류 양이 제1센터에 재학 중이고, 해당 도서는 전국에 몇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금방 찾을 수 있죠. 그날 도서관에 계셨습니까?”
내가 잠시 주춤거리자, 남자가 말을 이었다.
“해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클록터의 일원입니다. 이류 양도 연락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연락한 사람이 당신 아닙니까?”
남자가 잠시 탄식하더니 생각에 빠졌다.
“저는 전국구의 센터를 관리하는 부서의 팀장입니다. 회장님께서 센터 소속 학생들에게 틈틈이 메일을 보내시더군요.”
막힘없이 진실을 말해주는 게 이상했다.
“그쪽이 이렇게 정보를 불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못할 건 없습니다. 어차피 제가 손 쓰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겁니다.”
그 말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골치 아팠다. 나와 서화는 각자 클록터의 회장에게 제안받았고, 클록터의 직원이 내가 그날 도서관에 방문한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어려운 말이네요. 도서관 방문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 말고 아무도 모릅니다.”
이류 양에게 흥미가 있어서요.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당황스럽게도 명함에 걸맞지 않게 이름은 없었다. 대신 연락망과 생년이 있었다. 나이는 올해로 스물여섯. 짙은 다크서클 탓에 시청각실에서 나이를 추론하는 데에 애먹었던 거였다.
“또 봅시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여러 노트북이 설치된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속삭였다.
“당신은 잡음이 있네요.”
인상이 구겨졌다. 이모션 사이클에 헛소리 기능도 추가된 모양이다. 왜 하나같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겼다. 그와 동시에 짜고 친 것처럼 서화가 돌아왔다.
“왜 그리 멍해. 졸려?”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있던 책을 제목이 보이지 않도록 숨겼다. 클록터는 내가 이모션 사이클에 관한 문제를 서화와 논하길 원치 않는다. 최대한 클록터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편이 나았다.
“어제 잠을 못 잤나. 피곤하네.”
화제를 돌려 일상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운동장에 도착해 있었다. 앙상한 나무가 심어진 화단에 앉았다. 서화는 도청 장치가 신경 쓰이는 듯 목 주변을 손으로 지분거렸다. 서화가 센터 본관에 큼지막하게 쓰인 후원사 이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알아? 클록터 본사 후원자 명단에 우리 엄마 이름이 새겨져 있어. 그래서 내가 학생 대표일 거야.”
“운이 좋은 거냐 나쁜 거냐.”
“모르겠는데.”
서화는 그렇게 말하며 표정을 찡그렸다. 그 모습에 웃음이 샜다. 어릴 적에 서화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짓던 표정과 닮았다. 주로 채소 반찬을 먹거나, 휘연이가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문장을 만들어 내거나, 이어폰을 압수당할 때나.
“요즘은 록 안 들어?”
“이어폰이 망가졌어.”
음악 산업 또한 국민의 감정이 통제되며 자연스럽게 규모가 줄어들었다. 모든 예술 시장이 그랬다. 센터에 재학 중인 학생의 대부분은 예체능 계열의 진로를 가지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센터 내에서 음악 감상은 제한되어야 했지만, 학생들이 이모션 사이클에 협조도 안 하는 마당에 어떻게 하겠나. 정부는 학생들의 음악 감상을 알면서도 모른 체 했다. 쉬쉬해 주는 눈치였다. 우리의 입장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조치였다.
“편의점 갈래?”
센터 주변에는 편의점이 없었다. 귀찮음을 숨기고 서화를 따랐다. 걸음을 빨리할수록 주변은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센터 부근보다 개발이 덜 된 동네였다. 항상 반대편의 편의점만 갔지, 이 동네는 처음 방문했다. 내가 편의점의 시원한 공기로 더위를 식힐 동안 서화는 뜬금없이 밴드를 샀다. 어디 상처라도 났나 싶었지만 겉보기에는 말끔했다. 나는 빼곡히 진열된 에너지 음료 한 캔을 샀다.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 편의점 뒤편에 있는 계단을 올랐다. 노을이 지고 있는 풍경이 잘 보였다. 계단 난간에 걸터앉은 서화가 목선을 드러내며 도청기 위에 밴드를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그제야 밴드의 용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밴드를 세 겹이나 붙였다. 마지막 하나를 꾹 눌러 붙이자, 우리의 숨통이 트였다.
“처음부터 이러면 됐잖아.”
“지금 생각났는걸.”
헤실헤실 웃는 서화를 뒤로하고 내가 물었다.
“도청기가 맞긴 해? 어떻게 사람 피부에 칩을 이식해?”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이모션 사이클의 시술 방법은 총 세 가지가 있어.”
서화가 좋은 정보를 가져왔다고 웃음을 지으며 비장하게 말을 시작했다.
“첫 번째, 약 복용. 알약을 꾸준한 간격으로 복용하는 방법이 있어. 이 경우는 개인이 복용을 끊으면 서서히 시술 효과가 없어져서, 클록터에서 추진하려 하지 않아.”
만약 강제로 이모션 사이클을 시술하게 된다면 이 방법이 가장 안전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내 의지로 슬쩍 끊을 수 있으니까.
“두 번째, 약물 접종. 조금 섬뜩하지 않냐? 클록터에서 주기적으로 연락을 해준대. 이쯤에 다시 맞으러 오라고. 클록터가 자체적으로 감시할 수 있으니까, 약에 비해 끊기가 쉽지 않지. 하지만 클록터 측에서 고객에게 투자해야 하는 인력과 시간이 많아서 권하진 않는다더라.”
서화가 노을을 바라보던 눈동자를 내게로 옮겼다. 이어서 밴드가 덕지덕지 붙은 도청기를 툭툭 쳤다.
“마지막 세 번째, 이거. 칩 이식인데 붙이면 끝이야. 정기적으로 관리할 필요도 없고 개인이 떼지 못해. 아, 도청기는 뗄 수 있어. 일주일 정도만 하기로 했거든.”
“너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어떤 바보가 저 도청해 주세요, 하고 동의하냐?”
“시술 방법 세 가지는 내가 학생 대표 자리를 맡은 덕에 얻은 거야. 보통 시술에 동의한 다음에 알려주거든. 그리고 메일이 또 왔어. 나한테서 무슨 가능성을 봤다나 뭐라나, 클록터 직원들 팬 거 사과하면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대. 사과가 진심은 아니었고 대충 때웠는데 이렇게 저렇게 진행 되어버려서.”
“메일 보낸 사람은 줏대가 없네. 도망치라고 했다가, 도와달라고 했다가.”
“나도 머리 아파.”
서화가 평소에 뱉지도 않던 욕설을 읊조렸다.
“너 말고 다른 사람이랑은 말이 안 통해. 제일 바보 같은 건 클록터 아니야? 의외로 반항아들은 똑똑하다고.”
“효율에 찌든 사람들은 노을을 바라보는 기분을 모르지. 그게 우리의 특권이면 난 만족해.”
머리카락에 흐릿하게 가려진 서화의 눈동자에 노을빛이 반사되듯 금빛 안광이 돌았다.
“너는 감정을 느껴?”
내가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난 모르겠어. 이름을 붙이지도 못하겠고.”
“몇십 년 전 사람도 많이들 그랬대. 지금처럼 통제당하지도 않는데 자기가 지닌 감정이 뭔지 몰라서 싸우고. 그런데 나는 알 것 같아. 아는 게 더 괴로워.”
모르는 게 약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서화가 얄미웠다. 왜인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열이 올라 바람막이를 벗자, 주머니에서 작은 향수병이 굴러떨어졌다. 서화가 이를 줍더니 분사했다.
“이건 언제야?”
“맞춰 봐.”
나는 종종 서화에게 조향한 향수가 어느 날의 어떤 상황인지 맞히게끔 시켰다. 서화도 은근히 이를 즐기고 있었기에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왜 이렇게 달아. 잔향은 또 쓰네. 알코올 냄새가 과다한데.”
“평가해 달랬어?”
내가 장난으로 주먹을 들이밀었다.
“해바라기밭!”
오답이라 말하며 주먹으로 서화의 머리를 콩 쳤다. 서화가 일부러 몸을 과장되게 움츠렸다.
“엄살은. 너랑 싸운 날이잖아. 기껏 아이스크림 사 왔더니.”
“도대체 이게 왜 그날인데? 네 향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몇 년을 맡아봐도.”
“선휘연에 비하면 내 작품은 양반이지.”
“둘 다 거기서 거기 거든. 너나 걔나 다 미쳐있어.”
아무렇지 않게 꺼낸 휘연이 이야기에 가슴 한편이 저릿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서화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앞머리가 눈의 반을 덮을 만큼 길었다.
“내가 앞머리 잘라줄까.”
“선휘연이 내 앞머리 눈썹 위까지 잘랐잖아. 그 이후로 미용실에서만 잘라.”
다시 언급된 휘연이에 이상한 정적이 맴돌았다. 누가 말을 꺼내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다. 그저 노을의 울렁거림에 잠식당했다. 오백 걸음 걸었을까, 서화가 내가 질문했다.
“너는 좋아한다는 게 뭔지 알아?”
“나는 사탕을 좋아한다. 그런 거?”
서화가 쉽게 설명하려 애쓰는 게 보였다.
“틀린 건 아닌데, 내가 말한 건 달라.”
해가 점점 더 저물었다. 하늘이 많이 어두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위는 거셌다. 열대야 같았다. 손부채질로 열기를 식히는 사이 서화가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햇빛은 가려주고 싶고, 별은 같이 나누고 싶은 것. 문득 잊을 만하면 미소가 떠오르는 것. 평소 잘만 하던 말도 한 번 더 곱씹게 되는 것. 영원을 믿으며 기억을 넘칠 때까지 받아주는 것. 저번에 네가 말했잖아. 세상은 잔을 지녔다고. 내가 그 사람의 잔이 되어주는 것. 그런 게 좋아한다는 마음일까나.”
휘연이에게 이상한 말투를 옮았냐는 질문을 뱉으려다가 삼켰다. 문장을 다시 조곤조곤 씹었다. 선휘연, 지금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심장이 시렸다.
“그 사람이 누구인데? 상대가 바라지 않으면 민폐 아니야?”
“잔이 와장창, 깨지는 거지.”
사실 서화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줄 수 있는 반응은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냥….”
서화가 말끝을 흐렸다. 훅훅 찌는 밤공기에 숨쉬기가 답답했다. 순간 서화의 발이 멈춰 섰다. 서화와 내 거리가 꽤 멀어지고 나서야 의미를 알아차렸다.
“나를?”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해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좋아한다, 좋아, 반복해 생각할수록 머리가 고장 났다. 무거운 물체가 폐를 짓누르는 듯했다.
“나도 너 좋아. 됐지?”
서화의 대답을 기다렸다.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게 마치 어린아이 같아서 민망했다. 내가 애써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서화가 나를 따라왔다.
“그래.”
모든 게 어려웠다. 세상도, 사회도, 친구도, 그리고 좋아한다는 한마디까지도. 내가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내 최선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 ‘서화가 나를 좋아한다’라는 사실을 공식처럼 외우는 것. 그게 전부였다.
[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은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➃ 붉음과 어깨를 나란히 (1)에서 계속)
박지효 기자 jihyop@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