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15초짜리 하이라이트 구간만 훅으로 살아남고, 음악이 숏폼 배경음악으로 빠르게 휘발되는 시대다. 음악이 자극과 속도전이 되어버린 가요계에 싱어송라이터 장기하가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장기하가 지난 9일 첫 솔로 정규 앨범 ‘산산조각’을 발매했다. 2002년 밴드 눈뜨고코베인과 청년실업을 거쳐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로 인디 신의 대표주자가 된 지 24년 만이자, 2018년 밴드 해체 후 처음 선보이는 정규작이다.
이번 신보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창작 방식이다. 장기하는 대중음악 시장의 오랜 관습인 ‘선 음악, 후 뮤직비디오’ 공식을 뒤집었다.
출발점은 직접 쓴 시 한 편이었다. 그는 이 시를 바탕으로 33분 분량의 무성 단편 영화를 먼저 완성했다. 이후 연출된 영상의 단 한 프레임도 손대지 않은 채, 화면의 호흡에 맞춰 9개 트랙의 음악을 직조해 냈다. 영상을 음원의 부속품이 아닌 동등한 서사의 축으로 세운 것이다.
33분의 무성영화 속에는 상실과 변화, 순환의 서사가 흐른다. 말하듯 툭툭 던지는 창법과 한국어 특유의 ‘말맛’을 리듬으로 바꾸는 전매특허는 여전히 유효하다. ‘싸구려 커피’부터 ‘우리 지금 만나’,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가요계에 균열을 내왔던 특유의 위트와 건조한 감각은 정적인 분위기의 연출과 만나 한층 깊어졌다. 사진제공=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진짜 재미는 이 음악이 완성된 영상의 단 한 프레임도 고치지 않고 제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볼 때 터져 나온다. 미세한 멈춤이나 배우의 시선 처리에 음악이 기막히게 맞물리는 순간을 발견하는 쾌감이 상당하다. 영상이라는 틀 안에 음악을 정교하게 끼워 맞춘 과정을 상상하며 감상하는 색다른 재미다.
장기하의 역발상은 단순한 형식적 실험에 그치지 않는다. 15초에 열광하는 숏폼 시대에 어떻게 해야 앨범 전체의 서사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창작자의 해답이다. 33분 분량의 직관적인 시각적 서사로 청중을 몰입시킨 뒤, 끊어 듣기 힘든 긴 음악적 흐름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로써 앨범 제목 ‘산산조각’은 이중적인 비유로 읽힌다. 숏폼을 타며 조각조각 소비되는 요즘 음악의 현실을 꼬집는 동시에, 대중음악 시장의 굳어진 공식을 깨부수겠다는 장기하의 선언처럼 들린다.
‘산산조각’은 음악이 조각조각 나뉘어 소비되는 요즘 가요계에서, 앨범 한 장이 가진 온전한 이야기를 지켜내려는 시도다. 알고리즘과 차트에 끌려다니는 시장에서 창작자가 주도권을 쥐고 호흡이 긴 음악을 설득해 낸 보기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 그의 묵직한 도전이 요즘 음악 시장의 관성을 뒤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