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APG) 한국 선수단 결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 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참, 진짜 좀 답답합니다."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이 중증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의 열악한 훈련·재활 환경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패럴림픽에서 10회 연속 금메달을 수확한 한국 보치아 대표팀조차 선수촌에 전문 수중 재활시설이 부족해 외부 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시설 확충을 위한 예산을 꾸준히 요청해 왔지만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정 회장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시작은 지난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였다. 당시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은 중증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이 전문 수중 재활시설 부족으로 간이욕조를 이용해 온 현실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장애인 국가대표들도 국위선양과 메달을 위해 눈물겨운 훈련을 한다. 몸 풀 곳도 없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에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희룡 대한장애인체육회 사무총장은 "중증장애인 훈련시설 구축을 위해 2004년부터 예산을 요청했지만 정부 예산에 반영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2027년도 수중 회복시설 관련 예산으로 신청한 1억2500만원이 정부 예산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서 보치아 10회 연속 금메달을 달성한 정호원이 헹가레를 받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정 회장 역시 예산 문제에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4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APG) 한국 선수단 결산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 회장은 "파리 패럴림픽 전후로 정부와 여야가 다 협의했는데, 예산만 올라가면 기획예산처에서 반영이 안 돼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치아다. 중증장애인 선수들이 참가하는 보치아는 한국이 1988 서울부터 2024 파리 패럴림픽까지 10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한 전통의 효자종목이다. 하지만 이번 아이치·나고야 APG에서는 금메달 없이 은메달과 동메달 각 1개에 그쳤다. 정 회장은 이번 대회 부진의 원인으로 기존 기술과 전략의 노출을 지목했다. 다만 경기 성적과는 별개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게 충분한 훈련·회복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 회장은 "보치아 선수들은 대개 경련이나 신경성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몸을 풀어주지 않으면 본인이 원하는 대로 손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경기력에도 엄청난 지장이 있다"라며 "물속에서 재활하는 게 가장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파리 패럴림픽을 준비할 때도 보치아 선수들이 근처 복지관에 가서 치료를 받았고, 선수들의 폐활량과 호흡 운동도 많이 시켰다"고 전했다.
지난 24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APG) 한국 선수단 결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장민호. 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러면서 정 회장은 이천선수촌의 훈련·재활 환경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보치아 대표팀은 지난 3월부터 이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의 수중재활운동실과 전문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주 2회 수중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이천선수촌과 복지관이 관련 지원을 이어가기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외부 기관의 도움으로 회복 운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선수촌 자체의 전문 시설 확충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천선수촌의 시설 개선은 보치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국가대표의 훈련 환경을 모두 경험한 선수도 시설 격차를 지적했다. 이번 대회 육상 100m·400m에서 2관왕에 오르고, 400m 세계신기록까지 작성한 장민호(29·안양시청)다. 한국 선수 최초로 한 해에 비장애인 아시안게임과 APG에 모두 출전한 그는 두 선수촌의 환경 차이를 직접 체감했다고 밝혔다.
장민호는 "(비장애인 선수 훈련장인) 진천선수촌에는 실내 트랙도 있고 훈련·재활시설도 잘 갖춰져 있는데, 이천선수촌은 차이가 있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 역시 "육상 선수나 사이클 선수들도 진천선수촌에 가면 수중 재활까지 다 한다"라며 "스포츠과학 시설들을 빨리 보완해 보치아 선수들과 중증장애인 선수들, 또 부상당한 선수들이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 선수촌에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6일 경기도 이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에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 육상 장민호가 훈련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설 확충을 위한 구상은 이미 마련했다. 정 회장은 "스포츠과학 지원 시설을 만들기 위해 여러 선진국의 시설을 둘러보고 설계까지 마련했다"라며 "실내 80m 트랙에서 영상 분석을 통해 육상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시설까지 계획돼 있다. 예산만 반영된다면 세계적인 수준의 시설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환경 문제가 공론화된 데 대해 감사의 뜻도 전했다. 그는 "문체위에서 의원님들이 중증장애인 선수들의 재활 문제를 말씀해 주시는 걸 보면서 마음이 고마웠다. 우리 아시안패러게임을 응원해 주고 계시는구나 싶어 든든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