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서의 스윙맨]첫 30-30맨, 박재홍을 추억하다
일간스포츠

입력 2015.08.07 06:01

1996년 9월 3일 현대와 LG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에서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30-30클럽에 가입한 현대 신인 박재홍이 대기록 달성 후 환호하고 있다.




KBO 리그 태동 이래 최초의 업적이 쓰여질까. 테임즈의 40-40 클럽이 가시권 안에 들었다. 5일 현재 테임즈는 32홈런 28 도루를 기록 중이다. 즉, 홈런 8개와 도루 12개만 추가하면 된다는 뜻이다. 48경기가 남은 소속팀 NC의 일정상 크게 달성이 어려운 모양새도 아니다. 테임즈가 전인미답의 경지에 성큼성큼 다가가자 함께 등장하는 이가 있다. 바로 호타준족의 대명사인 박재홍이다. 사실 그는 이 분야에서 만큼은 독보적이다. 최초 300-300 클럽을 목전에 둔 사나이(도루가 33개 모자랐지만), 최초이자 최다 30-30 클럽 가입자, 마지막 3할-30홈런-30도루 달성자 등등. 30-30 클럽 역시 2000년 박재홍 이후 명맥이 끊겼다. 박재홍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을까.




시작부터 달랐다. 1996년 프로야구판에 뛰어든 현대 유니콘스는 도박을 감행했다. 1994년 13승을 올리며 신인 최다승을 기록한 최상덕을 해태에 넘기고, 신인인 박재홍을 대신 받은 것이다. 박재홍은 당시 KBO리그 사상 역대 야수 최고액인 4억 3000만원을 받고 현대 유니폼을 입었다. “검증되지 않은 아마추어에게 거액을 썼다”는 우려도 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의 투자가 옳았음을 증명하는 데는 한 달도 채 필요하지 않았다. 박재홍은 그 해 4월 16일 대전 한화전에서 단타 하나가 빠진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홈런은 당대 최고의 투수인 송진우를 상대로 때려낸 것이라 더 값졌다. 마지막 타석에서 상대투수 김민태가 고의 사구에 가까운 연속 볼넷으로 피해가지만 않았어도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신인이 될 법도 했다.

1996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MVP 구대성(왼쪽)과 신인왕 박재홍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재홍은 5월 한때 일주일 동안 5개의 홈런포를 기록하는 등 대기록을 향해 다가갔다. 마침내 7월 17일 청주 한화전에서 20-20 클럽 가입에 성공했다. KBO 리그 사상 최단 경기(75)만에 이룩한 것이다. 9월 3일, 잠실 LG전 박재홍은 3회초 1,3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김용수의 포크볼이 오자 망설임 없이 배트를 휘둘렀고, 공은 그대로 잠실구장의 좌측 담장을 넘어갔다. 한국 최초의 30-30 클럽이 달성되는 순간이다. 신화를 쓴 괴물신인은 여전히 당당했다. 달성 소감을 묻자 박재홍은 짤막하게 답했다. “시원합니다!”

이듬해는 20-20클럽으로 숨 고르기를 하던 박재홍은 다시 괴물 모드로 들어섰다. 1998년 7월 27일 인천 쌍방울전에서 20호 홈런을 터뜨리며 가볍게(?) 3년 연속 20-20 클럽에 가입했다. 그 해의 박재홍은 더 진화했다. 훔칠 줄 알았다. 이종범이 일본으로 떠난 틈을 타 공석이 된 도루왕 자리까지 넘봤다. 박재홍은 유지현, 정수근 등 당대 최고의 대도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도루 싸움을 이어갔다. 박재홍이 그 해 기록한 43 도루는 이 부문 타이틀 홀더인 정수근(이후 2001년까지 4년 연속 도루왕에 성공했다)에 딱 한 개 모자른 기록이었다. 이제 홈런 하나만 나오면 된다.

2005년 7월 23일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200-200 클럽에 가입한 박재홍이 인천문학구장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번에도 LG였다. 이미 1996년 30-30클럽 당시 LG 김용수를 상대로 30호 홈런을 뽑아냈던 박재홍은 2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해 9월 28일 잠실 LG 전에서 구원투수인 차명석으로부터 또 다시 30홈런을 기록하며 생애 두 번째 30-30 클럽 가입에 성공했다. 그해 114경기만 나와 이룩한 업적이었다. 당시 박재홍은 경기당 0.26개의 홈런을 생산했다. 단순한 산술적인 가정이지만 144경기 체제의 올해였다면 40-40 클럽도 넘볼 수 있지 않았을까?

2012년 10월 5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롯데전에 앞서 박재홍의 300홈런 시상식이 열렸다. 주장 박정권이 대형 액자를 전달하고 있다.


2000년, 세 번째 클럽 가입을 노렸다. 이번엔 도루가 늦었다. 리그에서 가장 먼저 100타점 고지에 오르는 등 박재홍의 방망이는 뜨거웠다. 마침내 9월 5일 대구 삼성전에서 2회 2루 베이스를 훔치며 30호 도루에 성공한다.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한 박재홍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 그 해 최종 성적은 타율 0.309에 151안타 32홈런 30도루 115타점 101 득점. 야구 인생에서 정점에 올랐던 시기였다.

2013년 5월 18일 인천문학구장에서 열린 박재홍의 은퇴식.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2005년 7월 23일 롯데전,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200-200 클럽에 가입했다. 2009년 4월 23일 롯데전,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250-250 클럽에 가입했다. 데뷔 후 14 시즌, 1499경기 만에 달성한 것이다. 250-250은 메이저리그에서도 19명, 일본프로야구에서도 4명 밖에 나오지 않는 대기록이다. 2012년 10월 3일 LG전, 한국프로야구 7번째로 300홈런을 달성했다. 39세 26일이라는 최고령 달성자(올해 이호준에 의해 경신)란 훈장은 덤이었다. 2013년 1월 25일, “남은 33개의 도루는 해설가로서 시청자 마음을 훔치겠다”고 말했다. 박재홍은 은퇴를 선언했다. 17시즌 통산 성적은 타율 0.284 1732안타 300홈런 267도루 1081타점 1012점. 박재홍은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을 묻자 “데뷔 해인 1996년 잠실에서 첫 30-30을 달성했을 때”라고 대답했다.

온라인팀=이상서 기자 cod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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