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김광현(34)의 입단식. 류선규 SSG 랜더스 단장은 행사에 앞서 김광현이 받을 전례 없는 규모의 연봉을 발표했다. 2022년 SSG 우승의 서막이었다.
지난 4일 LG 트윈스가 KIA 타이거즈에 패하면서 SSG는 KBO리그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 1을 지웠다. SK 와이번스(SSG의 전신)로서 마지막 통합 우승을 거뒀던 2010년 이후 12년 만에 거둔 성과다.
사상 첫 대기록도 세웠다. 개막전 윌머 폰트의 NC 다이노스전 '9이닝 퍼펙트' 영봉승을 시작으로 개막 10연승(역대 최다 타이기록·종전 2003년 삼성 10연승)을 달린 SSG는 144경기 내내 1위를 수성했다. KBO리그 역사상 없었던 '와이어 투 와이어(골프나 레이싱 등 종목에서 대회 시작부터 끝까지 1위를 놓치지 않은 상황을 가리키는 말)' 우승이다.
2년째 SSG의 구단주를 맡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존재감이 여러 방면에서 컸다. 정 부회장은 시즌 중 홈구장을 자주 방문해 선수단을 격려했고, SNS(소셜미디어)를 이용해 팬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팬들은 그에게 '용진이 형'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구단주의 관심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투자'는 올 시즌 SSG를 상징하는 키워드였다. SSG는 2020년 9위, 2021년 6위로 주춤했다. 승률 0.357의 9위 팀이 승률 0.638(5일 기준)의 1위 팀이 되기까지 구단주인 정 부회장의 막대한 투자가 이뤄졌다.
김광현이 오기 전에도 SSG는 이미 가장 많은 연봉을 지불하는 팀이었다. 지난해 SSG로 인수되기 전 FA(자유계약선수)로 2루수 최주환(4년 최대 42억원)과 구원 투수 김상수(2+1년 최대 15억 5000만원)를 영입했다. 구단 인수 시점에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하던 추신수를 당시 역대 최고 연봉(27억원)으로 입단시켰다.
2022년 정용진 부회장의 투자는 더 크고 과감해졌다. FA(자유계약선수) 권리를 앞둔 문승원·박종훈·한유섬을 모두 연장 계약으로 붙잡았다. 세 사람의 계약 규모 총액만 5년 180억원에 달했고, 김광현 영입 전 팀 연봉은 146억400만원(외국인 선수 제외)에 달했다.
여기에 김광현이 합류했고, 시즌 중 대체 선수까지 총 5명의 외국인 선수들을 기용했다. 외국인 선수 계약 발표 금액을 단순 합산하면, SSG의 팀 연봉은 최대 288억원 안팎에 달한다. 샐러리캡을 대비하기 위해 김광현 등 장기계약자들의 연봉을 몰아준 결과라는 점을 고려해도 압도적인 규모다.
투자는 연봉에만 그치지 않았다. SSG는 지난겨울 약 40억원을 들여 인천 SSG랜더스필드의 선수단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선했다. MLB 구단 수준의 라커룸에는 선수단이 직접 요청한 사항들이 녹아들었다. 실내 타격 훈련장과 수면실·사우나 등까지 만들어졌다. 김광현은 "(MLB에서 뛰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못지않다. 사우나가 있어서 더 좋다"고 했고, 베테랑 고효준은 "빈말이 아니라 경기 전후로 사우나에서 휴식을 취하니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고 엄지를 세웠다.
정용진 부회장의 시설 투자는 서막에 불과하다. 그는 이미 청라 신도시에 돔 형태의 새 야구장을 짓기 위해 인천시와 대화를 나눴다. '첫 삽'부터 화끈하게 뜰 가능성이 크다.
과감한 투자가 이어지자 "우승해도 본전"이라는 말도 나왔다. 정용진 부회장은 그 본전을 건졌다. 투자는 성적으로 이어졌다. SSG는 지난해에도 공격력은 리그 1위였다. OPS(출루율+장타율) 0.775 185홈런 755득점으로 세 부문에서 KBO리그 1위를 기록했다. 대신 평균자책점 4.84(8위)에 그친 투수진이 문제였다. 문승원·박종훈이 시즌 중 팔꿈치 수술을 받아 규정 이닝을 채운 선발 투수가 폰트 한 사람에 불과했다. 시즌 내내 경기 초반에 무너지는 일이 잦았다.
올 시즌은 달랐다. 확실한 에이스 김광현은 몸값을 충분히 했다. 13승 3패 평균자책점 2.13(5일 기준)으로 평균자책점 1위가 유력하다. 지난해 145와 3분의 2이닝을 던져 8승 5패 평균자책점 3.46을 기록했던 폰트는 184이닝 동안 13승 6패 평균자책점 2.69로 김광현과 리그 최고의 원투 펀치를 구성했다.
첫 번째 숙제를 해결한 SSG는 이제 통합 우승을 정조준한다. 추신수와 후안 라가레스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져 있고, 노경은·문승원·김택형·서진용 등 필승조가 모두 지쳐 있다. 이런 상황에서 SSG가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건 단비와 같다. 시즌 막판 턱 밑까지 추격했던 LG, 디펜딩 챔피언 KT 위즈 등이 만만치 않다. SSG가 정규시즌 종료 후 투·타를 100% 재정비해야 정규시즌 우승이 12년 만의 통합 우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