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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레인보우 리포트] 야구 기록, 얼마나 쌓여야 믿을 수 있나요

얼마 전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에서 일하는 친구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자기가 하는 연구를 신뢰하려면 어느 정도의 데이터가 쌓여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피자 커터’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러셀 칼튼의 방법을 소개해줬다. 15년 가까이 된 글이지만, 야구에서 ‘데이터의 안정화’에 관련해 자주 인용되곤 한다. 타율을 예로 들어보겠다. 1년에 주전 선수들은 대개 650타석 정도의 기회를 얻는다. 이 정도면 타율이 안정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칼튼의 방법을 사용해보자. 선수별로 1300타석을 잡아, 무작위로 A와 B로 나눈다(칼튼은 타석을 시간순으로 정렬한 후 홀수 번째 타석을 A에, 짝수 번째 타석을 B에 넣었다). 그리고는 모든 선수를 아울러 A와 B의 상관관계를 본다. 칼튼은 사회과학에서 쓰이는 것처럼 이 상관계수가 0.7이 넘는다면 650타석의 타율은 안정화가 된 것이라고 봤다. 참고로 타율은 다른 연구의 결과, 910타수의 표본을 취한 후에야 상관계수가 0.7을 넘는다는 것이 확인됐다. 데이터의 안정화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 수치가 안정화되려면 최소한 이만큼의 데이터가 쌓여야 하고, 그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식이다.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많이 쌓인 데이터의 신뢰성이 더 높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미 없는 데이터가 일정 타석 수를 채우는 순간 갑자기 의미 있게 변하는 건 아니다. 5타석의 결과로 선수를 평가하는 건 어렵지만, 100타석의 결과라면 그 선수의 실제 능력치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타석이면 더더욱 좋다. 타율이 910타수에서 안정화가 되었다는 말은 ‘910타수 이상의 타율만이 선수의 능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라기보다 ‘910타수를 기록한 선수의 타율은 그가 올린 또 다른 910타수의 타율과 상관관계가 매우 깊다’의 의미에 가깝다. 적은 타석 수를 놓고 보더라도 원래 잘 치는 선수 타율이 높을 확률이 높은 건 맞다. 하지만 그 적은 타석에서 타율이 높은 선수가 잘 치는 선수라고 판단하기에는, 즉 다음에 그만큼 타석에 섰을 때도 역시 높은 타율을 기록할 확률이 높다고 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100타석의 타율과 1000타석의 그것은 신뢰도에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데이터를 모으는 데 10년이 걸린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선수의 기량이 10년 후에는 바뀔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칼튼의 연구 결과는 어떤 수치가 언제 안정화되는지 알려준다는 의미가 있지만, 여러 수치 중 어느 것이 빨리 안정화가 되는지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 더 큰 매력이 있다. 운과 같은 외부 요인이 작용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큰 타율보다는 출루율이, 출루율보다는 볼넷 비율이 더 빨리 안정화 된다. 선수 본인의 능력으로 오롯이 결정되는 트래킹 데이터는 당연하게도 더욱 빨리 안정화가 된다. 오늘 빠른 공을 던진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이 내일도 빠른 공을 던진다. 이번 주 빠른 발로 2루를 훔쳐낸 트레이 터너(LA 다저스)가 다음 주에도 빨리 뛸 것이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분석팀장을 거쳐 현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부사장으로 있는 마이크 패스트는 특정 투수의 공 회전수를 알기 위해서는 딱 3개만 보면 된다고 했다. 야구 분석가들이 트래킹 데이터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방대한 데이터가 쏟아지는 야구에서 선수의 고유한 능력을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빨리 안정화되는 수치를 찾기 위한 노력과 궤를 함께해왔다. 며칠 전 MLB는 베이스볼 서번트를 통해 야수들의 송구 속도를 측정하는 'Arm Strength Leaderboard'를 공개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거대한 유격수 오닐 크루즈(2m1㎝·99㎏)가 내야수 중 독보적인 1위(시속 93.9마일)에 올라 있다. ‘송구 능력이 좋다’는 평에 그치지 않고 ‘압도적인 송구 속도를 갖고 있다’는 데이터가 함께 한다면 크루즈의 유격수 수비를 한층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로 크루즈는 키가 큰데도 최상위급의 주력(초속 9.11m의 스프린트 스피드·MLB 전체 12위)을 갖고 있다. 올 시즌 MLB에서 가장 빠른 타구(시속 197㎞)를 기록하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크루즈는 ‘몸이 크고 달리기도 곧잘 하지만, 삼진이 너무 많고 600타석에서 0.235의 타율만을 기록한 괜찮은 신인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를 평가할 객관적인 데이터가 마땅치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기술 발전 덕에 크루즈는 더 구체적이며,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듣게 됐다. 그를 ‘MLB 12번째로 빠른 최상급의 발과 내야수 중 가장 압도적인 어깨를 갖고 있으며 리그에서 가장 빠른 타구를 때려낼 수 있는 익사이팅한 유망주’라고 설명할 수 있다. 홍기훈(야구공작소 칼럼니스트) MIT와 조지아텍에서 수학 전공. 덴마크 트랙맨 본사 근무. 2022.10.1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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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굿바이 김별명

10년여 전 김태균(38·한화)에게 그의 별명에 관해 물었다. "어느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는 질문에 그는 "다 마음에 든다"고 답했다. '김고자(鼓子)' 같은 괴상한 별명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낄낄 웃었다. 지금은 박용택(41·LG)의 별명도 많지만, 얼마 전까지 KBO리그의 별명왕은 김태균이었다. 대표 별명이 '김별명'이다. 심지어 김태균은 부모님이 지어준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그는 22일 은퇴 기자회견을 끝으로 20년 프로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 그는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태어난 김태균은 2001년 한화에 입단했다. 올 시즌까지 통산 타율 0.320(5위), 안타 2209개(3위), 홈런 311개(11위), 출루율 0.421(1위), 볼넷 1141개(2위), 타점 1358개(3위)를 기록했다. 이승엽·양준혁 등 왼손 타자들이 점령한 순위표에서 오른손 타자 김태균의 성적이 특히 돋보인다. 그는 수많은 별명도 남겼다. 주루하다 넘어지면 김꽈당, 강습 타구에 급소를 맞고 쓰러지면 김고자가 됐다. 김비켜·김우쭐·김뱃살·김우울·김음흉 등 하루에도 몇 개씩 별명이 만들어졌다. 이전까지 스포츠 스타의 별명은 스포츠 미디어의 몫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2000년 초, 야구팬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유희의 대상은 김태균이었다. 그도 인터넷을 보며 즐거워했다. 김태균은 2010년 FA(자유계약선수)가 되어 일본(지바 롯데)에 진출했다.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올 때 다시 FA가 된 그는 처음부터 "한화와만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김태균 잡아올게"라고 팬들과 약속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말이 있었다. 김태균은 2012년 당시 프로스포츠 최고 연봉(15억원)을 받았다. 그 시즌 중반까지 4할 타율을 기록하더니 타격왕(0.363)에 올랐다. 김태균에 대한 별명은 계속 늘어났다. 2012년 이후에는 부정적인 별명도 많이 생겼다. 한화는 반짝 상승했던 2018년(정규시즌 3위)을 제외하고 긴 암흑기를 보냈다. 팬들의 실망감과 분노는 사장·감독뿐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쏟아졌다. 팀 최고 연봉자이자 4번 타자인 김태균이 집중적으로 공격 받았다. 매년 3할 넘는 타율과 20개 안팎의 홈런을 쳐도 '김똑딱'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볼넷을 얻어도 "팀 성적이 아닌 개인 기록만 챙긴다"는 모함도 받았다. 팀 성적과 개인 기록은 반대 개념일 수 없다. 타순이 명확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개인 성적과 팀 기여도의 상관관계가 크다. 선수의 가치를 가장 잘 표현한다는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에서 김태균은 KBO리그 타자 중에서도 역대 4위(스탯티즈 기준 69.10)다. 2017년 이후 팬들의 기대만큼 홈런을 많이 때리지 못했다. 특히 공인구 반발력이 높았던 '홈런 인플레' 시대여서 더 그래 보였다. 김태균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잘하려 했다. 나쁜 공에 스윙 하지 않았고, 히팅 포인트를 최대한 뒤에 만들어 정확하게 타격했다. 중심이동을 최소화한, 장타(長打)보다 정타(正打)를 치는 메커니즘이었다. 김태균은 자신이 가진 능력 안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스윙을 만들어 유지했다. 그가 2012년 올스타 홈런더비에서 우승하자 한 외국인 투수는 "놀랄 일이 아니다. 김태균이 마음만 먹으면 더 많은 홈런을 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스트라이크존 앞에서 때리기도 하지만 존을 통과한 공도 때려내는 타자"라고 말한 바 있다. 김성근 전 한화 감독 등의 이론가들도 김태균의 타격을 리그에서 가장 높게 평가했다. 김태균은 지난 2년 동안 부상과 부진에 시달렸다. 올해도 왼 팔꿈치 충돌 증후군을 참고 뛰다가 지난 8월 재활군에 내려갔다. 이 기간 김태균의 장타력은 많이 감소했다. 재활군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그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때라고 판단했다. 김태균은 이승엽이나 박용택처럼 '은퇴 시즌'을 미리 정하지 않았다. 지난겨울 구단의 2년 FA 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1년 계약을 선택했다.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김태균을 대체할 중심타자를 한화가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게 한화가 지금도 고전하는 이유, 김태균에게 악플 같은 별명이 생긴 까닭이다. 은퇴 발표와 함께 김태균의 20년 기록이 멈췄다. 그의 야구인생과 함께한 별명도 더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김태균은 "쿨하게 마무리하려 했지만, 막상 은퇴 발표를 하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은퇴 기자회견은 예상과 달랐다. 김태균은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한동은 울음을 참지 못했던 그는 "천안 출신이여서 항상 한화를 보며 꿈을 꿨다. 한화 선수로 뛰어 정말 행복했다.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며 "우승을 해서 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약속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다. 후배들이 내 한을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균의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우선 내년부터 단장 보좌 어드바이저로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한다. 후배들에게 생생한 경험을 전하는 게 그의 첫 임무다. 김태균은 "우리 팀에는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많다. 그들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줘야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가 예상보다 이른 은퇴를 결심한 것, 그리고 은퇴경기를 거절한 것도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기회를 더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뜻에서 김태균은 웃으며 기자회견을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다양한 별명만큼 여러 감정이 북받쳤던 것이다. 아쉬움과 미안함, 고마움, 외로움, 괴로움이 범벅된 눈물이었다. 마지막으로 김태균에게 어떤 별명을 가장 좋아하는지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한화의 자존심"이라고 말했다. 그 답지 않은, 재미없는 답변이었다. 한화의 원클럽맨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그게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김식 스포츠팀장 2020.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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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학]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일간스포츠가 창간 51주년 특별기획 ‘선동열 야구학’을 연재합니다. ‘선동열 야구학’은 야구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야구를 새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국보 투수로, 프로야구 감독으로, 국가대표 코치·감독으로 지낸 과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40년 넘게 축적된 ‘선동열 야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인 투수 파트 외에도 타격과 수비, 작전 등을 폭넓게 경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프런트 오피스 미팅을 통해 구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할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연수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온택트(ontact)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MLB를 공부했고, 오프라인에서 야구장 밖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수개월 동안 야구를 공부하면서 선동열 전 감독은 새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봤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았던 정보를 데이터를 통해 재해석 했습니다. 그의 여정을 일간스포츠가 따라갑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메이저리그(MLB)에 강속구 투수들이 대거 등장하자 많은 이들이 “야구의 매력인 투수와 타자의 균형이 깨졌다”고 말했다. 투수의 힘이 타자를 압도하고 있으며, 타자는 힘겹게 투수를 따라잡기 바쁘다는 것이다. 지난해 MLB 전체 삼진 기록은 9이닝 평균 8.78개였다. 이 기록만 보면 MLB 타자들은 로저 클레멘스 같은 투수를 매 경기 상대했다고 볼 수 있다. 1984년부터 2007년까지 MLB에서 354승(MLB 역대 9위)을 올린 클레멘스는 ‘로켓맨’이라고 불릴 만큼 위력적인 공을 던졌다. 그가 기록한 탈삼진은 통산 4672개(MLB 역대 3위), 9이닝 평균 8.55개였다. 타자들의 체격과 기술도 향상됐지만, 갈수록 빨라지는 패스트볼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투수가 타자를 압도하려는 순간, 타자도 반격 무기를 찾았다. 투수의 공격, 그리고 타자의 반격은 150년 야구 역사에서 늘 반복된 일이다. 그게 야구의 묘미다. 강속구의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한 타자들의 인식 변화를 MLB에서는 ‘플라이볼 혁명(fly ball revolution, 타구의 발사 각도를 높이는 움직임)’이라 부른다. 이 단어를 처음 보고 조금 놀랐다. 야구팬들에게 플라이볼(뜬공)이 낯선 단어도 아닌데, 혁명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플라이볼 혁명은 2017년 전후로 MLB에 등장한 이론이다. 요즘에는 KBO리그와 일본에서도 화제다. 어느 리그를 막론하고 홈런 선두권에 있는 타자들은 대부분 어퍼컷(uppercut, 투구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스윙을 한다. 중심타자가 아닌 선수들도 유행처럼 따라 하고 있다. 타자들이 어퍼컷 스윙을 하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수비 시프트가 발전하면서 땅볼을 쳐봐야 아웃될 가능성이 커졌고 ▶투수들이 투심 패스트볼, 체인지업 등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많이 던지고 있어 타자의 스윙 궤적이 달라질 필요가 있었으며 ▶어느 때보다 강해진 투수를 이겨내기 위해 타자는 연속 안타가 아닌 장타를 노리는 전략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구속과 홈런의 동시 증가 지난해 워싱턴을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끈 맥스 슈어저는 “강속구 투수를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펜스를 겨냥하고, 홈런을 노리는 것이다. 요즘 투수들은 너무 빠른 공을 던진다. 그리고 끔찍한 변화구를 갖고 있다. 6타자 연속 안타 같은 장면은 더는 나오지 않는다. 연속 안타를 기대하는 건 최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야구는 그렇게 변했다. 땅볼이 아니라, 뜬공을 날려야 타자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여러 데이터가 입증하고 있다. 타자들은 어떤 대가(삼진)를 치르더라도 타구를 띄워야 한다는 게 플라이볼 혁명의 핵심이다. MLB의 최근 데이터를 보면 이런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자들이 삼진을 더 자주 당하고 반면, 홈런 또한 증가하는 것이다. 2015년 MLB 타자들은 한 타석에서 삼진을 당할 확률이 20.4%였다. 이 수치가 점점 올라 지난해에는 23.0%를 기록했다.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스피드와 비례해 삼진률이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MLB의 홈런이 늘어난 건 놀라운 변화였다. 2015년 0.027개였던 타석당 홈런이 점차 증가해 지난해 0.037개가 됐다. 2019년 MLB 정규시즌 2430경기에서 6776홈런이 쏟아졌다. 마크 맥과이어가 70홈런, 새미 소사가 66홈런을 때린 1998년(5064홈런)보다 훨씬 더 많은 홈런이 나오고 있다. 단축 시즌으로 치러지는 올해는 타석당 홈런이 0.035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적잖은 MLB 타자들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약물의 시대’보다 ‘강속구의 시대’에 홈런이 더 많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MLB 전문가들은 여러 시각으로 이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공인구의 변화다. 공의 가죽이 매끄러워졌고, 솔기 높이가 낮아져 타구가 공기저항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MLB 사무국은 “공의 반발력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해명했다. 여기에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홈런만 늘었을 뿐 MLB 타자들은 투수에게 여전히 밀리고 있다. 2015년 0.254였던 리그 전체 타율은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2017~18년 KBO리그에서는 홈런과 타율이 동시에 늘어났다. KBO는 이를 공인구 반발력을 낮추는 정책으로 불균형을 해소했다. MLB에서 홈런이 급증한 것이 공인구의 반발력 때문이었을까. MLB 전체 타율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으니, 이 주장의 설득력은 떨어져 보인다. 따라서 플라이볼 혁명이 홈런의 증가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우리 세대는 지도자들로부터 “다운 스윙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가장 까다롭게 생각한 타자 고(故) 장효조 선배도, 팀 동료여서 든든했던 이종범도 공을 벼락같이 내려쳤다. 타자들은 보통 어깨 높이에서 배트를 쥔다. 여기서 최단 거리로 투구를 때리려면 다운컷(downcut, 투구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스윙을 해야 한다. 그래야 투구 속도와 변화에 잘 대응할 수 있다고 배웠다. 반면 어퍼컷을 하려면 스윙 궤적이 내려왔다가 올라와야 한다. 과거에는 비효율적인 타격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뜬공을 강조하는 최근의 흐름은 꽤 낯설다. 이는 MLB에서 감독이나 코치를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모양이다. 발사각과 홈런의 상관관계 타자 입장에서는 삼진을 많이 당하더라도 어퍼컷을 날려야 한다. 아주 잘 맞으면 홈런이 된다. 2루타나 3루타가 나올 수 있다. 외야가 내야보다 넓으니 수비 실책도 나올 가능성도 커진다. 리그 전체의 타격 성적과 타구 발사각(launch angle) 사이에는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보인다. 데이터를 보고 나서야 나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발사각이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게 연구의 대상인 적은 내 기억에 없었던 것 같다. 발사각은 말 그대로 배트에 맞은 타구가 발사되는 각도다. 그라운드와 수평으로 날아간 타구의 발사각은 0도이고, 땅볼이면 마이너스 값이 나온다. 유명한 야구 서적 『야구의 물리학』은 타구가 최대 비거리를 낼 수 있는 발사각이 35도라고 썼다. 그러나 2015년 MLB 팬들에게 공개된 타구 추적 시스템 ‘스탯캐스트’는 최대 비거리를 낼 수 있는 발사 각도가 25~30도라는 걸 데이터로 보여줬다. 스탯캐스트의 레이더 기술을 통해 MLB 경기에서 나오는 타구를 여러 전문가가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이로 인해 선수와 코치들은 어떤 타구가 가장 효율적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스탯캐스트의 원년인 2015년 MLB 타구의 평균 발사각이 10.9도였다. 땅볼은 마이너스 값이 나오기 때문에 평균 발사각이 이 정도인 것이다. 타구의 발사각은 2016년 11.6도, 2017년 11.8도로 올라갔다. 올해는 13도에 육박하고 있다. 홈런과 비례해 함께 늘어나고 있다. 이 변화는 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플라이볼 혁명기에 성적이 갑자기 향상된 타자들이 있다. 2015년 다니엘 머피의 평균 발사각은 11.1도였는데, 2016년 16.6도로 크게 높아졌다. 타율 0.281, 14홈런이었던 그의 성적이 1년 만에 타율 0.347, 25홈런으로 좋아졌다. 앤서니 랜던, 코디 벨린저 등 MLB 슈퍼스타들도 발사각을 올려 큰 효과를 봤다고 한다. 저스틴 터너(LA 다저스)는 플라이볼 혁명을 지지하는 가장 대표적인 선수 중 하나다. 지난해까지 류현진의 동료였기에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그의 기록을 찾아봤다. 2013년까지 뉴욕 메츠에서 주전 선수가 되지 못한 터너는 2014년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이 시기에 스윙을 어퍼컷으로 교정한 후 다저스의 간판타자로 성장했다. 2016년 터너는 전년보다 발사각을 3도 높였다. 2017년에는 1.4도 더 높여 그의 평균 발사각은 18.4도가 됐다. 리그 평균(11.8도)보다 6.6도 높았다. 이 과정에서 터너의 홈런과 삼진이 함께 늘었다. 이후 삼진이 줄고 타율과 장타율이 상승했다. 기록을 보면 아주 이상적인 진화 과정을 거쳤다. 터너가 외신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플라이볼 혁명에 대한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터너는 “땅볼을 때려서는 장타를 칠 수 없다. 장타를 원하면 일단 공을 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심지어 터너는 “한 경기에 네 번 타석에 들어서 모두 플라이아웃을 당했다면, 난 좋은 경기를 한 것이다. 왜냐면 땅볼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것도 맞는 말일까. 여러 기사와 기록을 볼수록 플라이볼 혁명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 다음 편에도 이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관련기사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②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2020.09.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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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로읽다]수비 시프트, 그리고 마인드 시프트

"상태 안 좋지… 원래 자원도 많지 않은데, 최근 몇 년 간 체력까지 완전 저질됐잖아. 미국과 중국에서 흔들어대는데, 대선판에서는…, 완전 '노답'이야."얼마 전 술자리에서 만난 정책 전문가는 암울한 한국 경제를 비관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썰렁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나는 야구로 주제를 돌려봤다.오늘날 한국 경제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야구팀이 있었다. 1993년부터 2012년까지 패배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였다. 뒷심 부족으로 2011년과 2012년연달아 시즌 후반부에 무너지며 20 년 연속 루징(승률 0.500 이하) 시즌을 기록한 파이어리츠는 재정난으로 재기는 고사하고 재건의 가능성조차 없어 보이는 팀이었다.2012년말 피츠버그의 닐 헌팅턴 단장과 클린트 허들 감독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들이 다음 시즌 FA(자유계약선수)에 쓸 수 있는 재원은 고작 1500만 달러였다. 중상급빅리거 두 명도 구할 수 없는 ‘껌값’이었다. 드래프트에 의존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신인들은 최소 몇 년의 숙성기간이 필요해 2013년 전력에 기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마이너리그에서 데려와 투입할 수 있는 유망주들 역시 변변치 않았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팀 전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파이어리츠는 2012년 로스터의 90%를 그대로 2013년에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궁지에 몰린 파이어리츠 사령탑은 결국 기존 수비력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모색했다. 선수들의 DRS(Defense Runs Saved·수비실점방어력)를 올릴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묘수를 찾아야 했다. 수비는 마운드에서 시작한다. 사령탑은 일단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살펴보기로 했다.2008년부터 메이저리그 전 구장에 도입된 모션트래킹 기술인 PITCH f/x는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포수에게 전달되는 전 과정의 투구 속도, 궤적, 위치를 3차원 이미지로 세밀하게 나눠 실시간으로 재생해냈다. 초창기에 주로 주심 판정과 투수를 평가하는 데 사용된 PITCH f/x 데이터에 파이어리츠 분석팀은 흥미로운 기록을 접목했다.2002년부터 2012년까지 메이저리그의 타구 기록에 의하면 타자들은 땅볼의 73%를, 라인드라이브의 55%를 그리고 플라이볼의 40%를 당겨쳤다. 분석팀은 이 원천 자료를토대로 각 타구 분류에 해당되는 투구 유형의 상관관계를 찾아냈다. 그리고 얼마 후 분석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사령탑에게 보고했다.‘파이어리츠가 수비 시프트를 과감하게 추진한다면 DRS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파이어리츠가 PITCH f/x 데이터를 통해 얻은 수확은 또 있었다. 분석팀은 포수의 ‘숨겨진 가치’인 피치프레이밍(Pitch-Framing)에 주목했다. 경계선에 있는 공을 볼이 아닌 스트라이크로 만들어내는 포수의 미묘한 재능은 팀 전체의 DRS를 높였다. 피츠버그는 뉴욕 양키스 포수 러셀 마틴을 영입했다. 전해 타율 0.211인 '퇴물'을 2년 1700만 달러에 계약하며 파이어리츠 여유자금 반 이상을 써버리자 언론과 팬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객관적으로 보면 도발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2012년 시즌에 마틴의 피치프레이밍이 양키스에게 23점의 득점 저지를 가져다 줬다고 파악한 사령탑은 확신했다. 마틴이 2013 년 파이어리츠의 ‘초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도박에 가까운 실험으로 2013년 시즌을 돌파할 계획을 굳힌 사령탑은 투심 패스트볼에 능숙한 투수들을 줄줄이 영입했고, 기존 투수진에게도 인사이드 피치와 땅볼 유도형 투구를 훈련시켰다. 인사이드 피치는 단순히 당겨치는 타구를 유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타자들은 몸쪽 공 직후에 나온 바깥쪽 공을 칠 때에도 땅볼을 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구단의 문화 역시 달라져야 했다. 사령탑은 선수와 ‘비선수’ 간의 벽을 완전히 허물고 원활한 소통과 협업을 주문했다. 수비 시프트라는 ‘새로운 야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단의 모든 구성원들은 서로 각 분야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신뢰해야했다. 평생 프로야구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샌님들이 만들어낸 파격적인 전략을 고액 연봉을 받는 자부심 강한 야구선수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는 계량화된 수학공식이나 모델에 당연히 익숙치 않았고, 필드에서 플레이로 보여지지 않는 가상 작전을 납득하지 못했다. 즉 보이지 않는 개념을 믿게 하는 게 프런트의 숙제였다.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이들을 믿게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보여주는 것이었다. 분석팀은 선수들을 (가르치지 않고) 설득하기 위해 그래픽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보여줬다. 시각인지력이 뛰어난 야구선수들에게는 숫자와 개념보다는 영상 정보가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분석팀은 다양한 작전 가안들을 코칭스태프와 논의해 실전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첨부했다. 그렇게 수정을 거듭해 보완된 수비 시프트 모델은 현역 선수들의 훈련에서 응용하며 조율했다. 파이어리츠의 수비 시프트는 그렇게 총체적인 노력으로 완성됐다.야구 역사상 수비 시프트를 시도한 팀이 파이어리츠가 처음은 아니었다. 20 세기초부터 ‘윌리엄스 시프트’로 불리며 사용된 변형 수비는 야구사학자들에 의하면 19세기 말에도 쓰인 적이 있다고 한다. 2013년 피츠버그 이전에 시프트의 중요성을 인식한 팀들은 있었다. 2013년에도 다섯 개 팀이 피츠버그보다 많은 시프트를 시도했다. 하지만 피츠버그는 경기 상황에 맞는 ‘전술’이 아닌, 팀 변화의 핵심 ‘전략’으로 매 경기마다 포수와 투수의 지휘하에 수비 시프트를 체계적으로 구사한 팀이라는 게 중요하다. 파이어리츠의 혁신은 대성공이었다. 2013년에서 2015년까지 파이어리츠 상대팀의 인플레이 타구가 땅볼로 이어진 확률은 64.3%였다. 같은 기간 메이저리그 평균은 59%였다. 논란 속에 영입됐던 포수 마틴은 2013년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 4.1 을 기록했고, 수비 시프트를 조정하는 역할 역시 안정적으로 수행했다. 2013년 시즌에서 5명의 올스타, 내셔널리그 MVP 와 ‘올해의 감독’까지 배출한 파이어리츠는 94승 68패로 플레이오프에 안착했다. 그 기세를 몰아 피츠버그는 2014년과 2015년에도 포스트시즌에 연달아 진출했다. 적극적인 수비 시프트는 이제 메이저리그와 세이버매트릭스의 최대 화두가 됐다.세상이 빠르게 변하듯 야구도 진화한다. 타율과 평균자책점 같은 전통적인 기록과 진단은 오늘날 큰 의미가 없다. 야구를 오래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실이 있다. 그 어떤 팀도 다른 팀과 유사하지 않다는 것이다. 각 팀은 각자의 고유한 문제를 자신만의 해법으로 풀어야 한다. 2013년 파이어리츠는 '얼리 어댑터'였다. 기존 체제가 몰랐던 기회를 포착해 적절하게 활용했다.절박한 위기상황과 악조건 속에서도 ‘파이어리츠식’ 수비 시프트를 창조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여건과 환경이 만들어낸 그들만의 체화된 방식이었다. 야구를 분석하는 관점이 달라지면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 역시 달라진다. 새로운 관점은 늘어진 관성이 아닌 주의 깊은 관찰에서 나온다. 기존에 없던 데이터를 채굴해 신기술과 창의적으로 융합하면 흔히 말하는 혁신이 이뤄지고, 사소한 발견에서 얻은 통찰력이 어려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신선하게 해석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다르게 생각해야 다르게 보인다. 다른 길이 없다면 새 길을 만들어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한국 경제가 지금 필요한 것은 ‘마인드 시프트’인지도 모른다. 정승구 영화감독·작가.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하버드 대학에서 정책학을 공부했다 [야구로읽다]대세론 따위 개도 안 먹는다 [야구로읽다]'괴물투수'는 사회가 만들어낸다 [야구로읽다]바트만을 용서한다고? [야구로읽다]월급쟁이 사장, 테오 엡스타인 2017.03.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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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인플레이]외국인 타자가 '타고' 현상에 미친 영향

2014시즌부터 시작된 '타고'는 올해도 계속됐다. 꼽을 수 있는 이유는 많다. 어떤 이들은 투수와 타자 사이 불균등한 경기력 요인을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은 스트라이크존이나 공의 반발력 같은 경기력 외적 조건을 말한다. 그런데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동안은 투고에 더 가까웠다. 경기당 득점이 9.06점→8.23점→9.29점이었다. 2012시즌은 심한 투고였고, 2011시즌과 2013시즌도 KBO리그 역대 평균 언저리다. 그런 추세가 2014시즌부터 갑자기 변했다. 투수들의 전반적 수준 하락이 타고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야구에서 득점이란 투수와 타자의 상대적 대결의 결과다. 따라서 다득점을 투수의 부진 혹은 타자의 우세로 설명하는 건 순환 논리에 빠질 소지가 있다. 하지만 최근 3시즌 동안 타고는 너무 갑자기, 또 급격하게 나타났다. 투수와 타자의 기량발전 속도 차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변화가 너무 단절적이다. 어느 한 해를 기점으로 타자가 갑자기 강해졌다거나 투수가 갑자기 약해졌다고 가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그런데 2014년 KBO리그에서 중요하게 변한 환경이 하나 있다.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 확대다. 이전 2시즌 동안 각 팀의 외국인 선수는 모두 투수였다. 보유한도가 3명으로 늘었지만, 경기 출전은 2명으로 제한됐다. 결과적으로 제도 변화는 외국인 타자 1명 추가라는 의미가 된다.이들은 KBO리그의 득점환경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주고 있을까. 2016시즌 리그 OPS(출루율+장타율) 톱10에 든 외국인 타자는 2명이다. 2위 테임즈(OPS 1.106)와 10위 에반스(OPS.975)다. 외국인 타자 11명은 올 시즌 중 4595타석을 채웠다. 리그 전체 5만7614타석의 7.9%다. 안타 1212개와 홈런 221개를 쳤다. 타율 0.301, 출루율 0.375, 장타율 0.538이다. 올 시즌 리그 평균은 타율 0.290, 출루율 0.364, 장타율 0.437이었다. 타율과 출루율보다는 장타율에서 외국인 타자의 역할이 두드러졌다.2016시즌의 리그 평균 OPS는 0.801이었다. 외국인 타자 11명의 평균은 0.914다. 외국인 타자를 제외한 내국인 타자들의 평균 OPS는 0.791이다. 두 그룹 사이에 꽤 큰 격차가 있다. 시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외국인 타자들은 내국인 타자보다 OPS가 0.100 에서 0.150 정도 높다.하지만 리그 평균 OPS는 내국인 타자 OPS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외국인 타자가 휠씬 높은 득점 생산성을 가졌다 해도, 그들이 차지하는 전체 타석 비중은 7.9%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리그 전체에 주는 영향은 제한된다. 최근 3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각 팀당 1명씩인 외국인 타자의 존재는 리그 OPS를 0.010 정도 끌어올린 것에 그친다. 2016시즌 내국인 타자들은 한 타석 당 0.252안타, 0.358출루, 0.374루타를 만들었다. 반면 외국인 타자들은 한 타석 당 0.263안타, 0.375출루 0.472루타를 기록했다. 이들의 타격 성적에 해당하는 타격 이벤트별 득점 가치를 적용하면 기여한 득점의 크기도 추정할 수 있다.외국인 타자가 나선 전체 4595번의 타석에 평균 수준의 내국인 타자가 대신 섰다면, 2016시즌의 경기당 득점은 11.21점에서 10.98점으로 0.23점 낮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5 시즌은 이보다 차이가 더 크다. 10.55점보다 0.4점 낮은 10.15점으로 추산된다.이 계산은 외국인 타자를 대체한 내국인 타자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리그 평균보다 강한 타자가 자리를 메운다면 차이는 줄어든다. 그보다 약한 타자들이 대신한다면 차이는 커진다. 물론 어느 쪽이라 해도 외국인 타자의 타석 비중은 낮기 때문에 리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될 것이다.외국인 타자의 수준은 내국인 타자에 비해 확실히 높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로 인해 2011~2013년에 비해 타고 성향이 강화된 정황도 있다. 하지만 그 영향의 크기는 제한된다. 경기당 0.2득점에서 0.4득점 정도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외국인 선수 보유 확대와 최근 3시즌의 타고는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둘 사이의 상관관계도 있다. 하지만 비중의 크기는 좀 제한돼 있었다. 더 많은 요인에 대한 더 정교한 분석이 필요해진 셈이다.득점이 많은 경기와 적은 경기 중 어느 한쪽이 수준이 높거나 낮은 것은 아니다. 다득점을 즐기는 팬들도 있지만 반대도 있다. 취향의 문제다. 현재의 타고 성향이 다소 낯설다고 해서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시도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게다가 야구의 역사에서 득점 환경은 늘 변해왔다. 투수와 타자 어느 한쪽의 기술적 발전에서 기인하기도 하고, 마운드의 높이, 스트라이크존의 넓이, 공과 배트의 반발력, 그라운드의 규격 같은 조건 변화로 인한 것도 있다.변화가 생기면 투수와 타자 사이에는 생존을 건 일종의 '군비 경쟁'이 시작된다. 1990년대 타자들의 파워 증가로 장타 위주의 타고 성향이 생기자, 투수들은 투심패스트볼이나 체인지업 같은 새로운 구종을 개발하고 훈련하며 맞섰다. 야구 통계의 활용이 늘어나고 적극적인 수비 시프트로 인플레이 타율이 낮아지면서 타자들의 타석당 홈런 비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정확한 컨택트로 수비를 뚫는 것보다, 위험 부담은 있지만 큰 스윙으로 홈런을 노리는 것이 더 유리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군비경쟁'의 과정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야구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 왔다.다만 변화의 속도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환경 변화는 종의 다양성 증대가 아닌 종의 멸망을 가져온다. 야구에서도 득점 환경이 너무 가파르게 변할 때는 군비 경쟁이 촉진되기보다 기술과 전략의 다양화가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최근 3시즌의 KBO리그가 그렇다. 치밀한 투수전, 세밀한 작전야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오프시즌 중에 KBO리그가 타고 성향을 다루게 된다면 핵심은 이것이다. 야구의 다양성을 회복시킬 변화 방향이 뭘까. 신동윤(한국야구학회 데이터분과장)데이터는 신비로운 마법도 절대적 진리도 아니다. 대신 "당신 야구 얼마나 해봤는데?" 라고 묻지도 않는다. 그것은 편견 없는 소통의 언어이며 협력의 플랫폼이다. 2016.12.13 06:00
야구

SK, 팀 타선에 2루타가 필요한 이유

과연 타율과 2루타의 상관관계가 있을까.SK는 25일까지 13승7패로 리그 2위다. 중위권으로 분류됐던 시즌 전 예상을 깨고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팀홈런으로 승기를 잡거나 추격을 시작해 승부를 뒤집은 경기가 유독 많다.개막 후 20경기에서 21개의 팀홈런을 기록해 이 부분 리그 3위. 공동 1위 kt, LG와 단 하나 차이다. 리그 평균인 18개를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팀장타율은 0.398로 7위다. 리그 평균인 0.413보다 밑이다. 홈런이 많은데도 장타율이 낮은 이유는 바로 2루타에 있다.SK는 팀2루타가 27개로 리그 공동 8위다. 최하위 LG에만 앞서 있을 뿐 다른 팀과 비교했을 때 수가 적다. 1위 KIA와의 격차는 12개. 팀타율마저 리그 공동 8위에 처져 있어 점수 뽑기가 수월하지 않다. 홈런으로 인한 득점 비율이 높지만 2루타를 섞어 만드는 대량득점이 거의 없다. 정경배 SK 타격코치가 "2루타가 없다"고 푸념을 할 정도다.2루타가 필요한 이유는 있다. 정 코치는 "2루타는 타구가 세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타구 스피드가 빨라야 한다. '툭' 대고 맞춘다고 2루타가 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공이 힘을 받지 않으면 타구가 뻗어나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하지만 SK 타자들은 소극적인 타격을 하고 있다. 타율이 전반적으로 낮다보니 풀 스윙보다는 컨택트 위주의 스윙을 하는 중이다. 2루타가 만들어지려면 기본적으로 타구에 힘을 실어야 하지만 컨택트 스윙은 이와 정반대다.맞추는데 급급하다보니 타구가 2루타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좌중간과 우중간을 갈라야 하는 타구가 번번이 잡히는 이유다. 현재 리그에서 3루타가 없는 유일한 팀도 SK. 2루타 이상의 인플레이 타구가 거의 없어 3루타로 연결을 시키지 못하는 셈이다.2루타는 대량 득점의 물꼬를 터준다. 정 코치는 "홈런은 1점이 될 수 있지만 2루타는 많으면 많을수록 대량 득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중요성을 언급했다.이어 "타율은 낮더라도 의식하지 말고 자기의 스윙을 다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SK 타선의 컨디션은 '2루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직은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ins.com 2016.04.26 10:00
야구

NPB의 신무기, '이동식 스윙 스피드 측정기'

야쿠르트 스왈로스 캠프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올해 야쿠르트의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는 블라디미르 발렌틴(32)의 재기다. 2013년 일본프로야구 시즌 최다 기록인 60홈런을 날린 슬러거. 그러나 지난해에는 발목과 허벅지 부상 등으로 15경기 출전에 그쳤다. 발렌틴이 재기에 성공하면 지난해 우승팀 야쿠르트의 전력은 더 강화된다.스포츠니혼 17일 보도에 따르면 야쿠르트 스프링캠프에서 발렌틴의 스윙스피드는 시속 158km로 측정됐다. 2014년 발렌틴의 기록은 시속 151km. 예상보다 훨씬 빨라진 스윙 스피드는 고무적이다. 발렌틴은 인터뷰에서 “(홈구장인) 메이지진구구장에서 (홈런을) 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표정은 밝았다.야쿠르트를 포함해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프로야구 6개 구단은 SSK사의 ‘멀티스피트테스터Ⅱ’ 기기를 사용 중이다. 투수의 초속과 종속에 타자의 스윙 스피드를 계측할 수 있는 포터블 제품이다.타격 성적은 좋은 타구를 날리는 데 달려있다는 관점에서 중요한 건 타구 속도와 각도다. 이 중 타구 속도는 스윙스피드와 상관관계가 크다. 이 점에서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최근 타구 스피드가 중시되고 있다.SSK사는 “프로야구 구단에서는 스윙 스피드 수치를 선수 지도와 동기 부여를 위해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한 구단 코칭스태프의 말을 빌어 “스윙 스피드를 올리려면 공을 몸 가까이에 붙여 때려내야 한다. 공을 정확하게 볼 수 있어 타율과 출루율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최민규 기자 2016.02.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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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 혼전, 시즌 판도 리트머스다

2014년 시범경기는 최근 몇 년간 보지 못했던 혼전이었다. 시범경기 분위기가 정규시즌 판도로 이어질까. 시범경기와 정규시즌은 별 상관관계가 없었지만 올해는 다를 조짐이다. 두산은 4승5무2패(승률 0.667)로 1994년 이후 20년 만에 시범경기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5위 한화(4승4무4패)와 승차는 불과 1경기이다. 최하위 롯데(4승1무6패, 승률 0.400)와도 2경기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한화는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9위에서 5위로 점프할 수 있었다.시범경기가 올 시즌 판도의 일정 부분을 예고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김경문(56) NC 감독은 "올 시즌은 9중이라고 봐야하지 않겠나"라고 예상했다. 김인식(67)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은 "지난해 약했던 팀들이 저마다 전력을 보강했다. 올해는 4강을 점치기 힘들다. 다들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스토브리그에서 지난해 하위권이었던 한화와 NC는 FA(프리 에이전트)와 수준급 외국인 선수로 전력을 보강했다. 한화와 NC는 시범경기에서 투수력의 안정, 장타력 보강, 향상된 뒷심 등을 보여줬다. 반면 지난해 4강권이었던 삼성(오승환·배영섭 공백)과 두산(이종욱 손시헌 최준석 등 FA 3명 이적), LG(리즈 재계약 불발) 등은 전력에 마이너스가 생겼다. 상하위 팀간의 전력 차이가 좁혀졌다. 시범경기여서 팀마다 이것저것 테스트해보는 성격도 많았지만, 핵심 선수들은 빠지지 않고 꾸준히 출장했다. 승부처에서는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5차례 불과했던 무승부는 올해 10경기로 두 배가 됐다. 그만큼 힘겨루기가 팽팽했다는 뜻이다. 또 하나, 타고투저 현상도 더해졌다. 외국인 선수 보유가 3명으로 늘어나 팀마다 외국인 타자 1명씩 가세해 예상됐던 것이 실제로 드러났다. 올해 시범경기는 타율과 평균자책점, 경기당 안타, 홈런에 심지어 도루까지 최근 4년간 최고 수치를 보였다. 경기당 평균 17.7개의 안타가 터졌고, 그 중 1.7개는 홈런이었다. 지난해 시범경기(0.8홈런)의 두 배를 넘겼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피에(한화·4홈런)와 스캇(SK·2홈런)은 장타력을 뽐냈다. 전체 타율이 0.264로 올라가면서, 평균자책점은 최근 3년간 넘어서지 않았던 4점대(4.83)로 치솟았다. 저마다 기동력을 앞세워 도루도 2.4개로 지난해 2.2개보다 많았다. 시범경기를 통해본 올 정규시즌은 타고투저와 함께 초반부터 치열한 순위 다툼이 예상된다. 어느 해보다 4강 경쟁은 치열할 것으로 점쳐진다. 한용섭 기자 orange@joongang.co.kr 2014.03.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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