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기쁨도 잠시였다. 12년 만에 금메달을 찾아왔지만 유재학(51)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한참을 경기 기록지를 살피던 그는 작심한 듯 한국 농구를 걱정하며 쓴 소리를 쏟아냈다.
한국은 3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에서 이란을 79-77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지난 1970년 방콕과 1982 뉴델리, 2002년 부산 대회에 이어 통산 4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만가지 수를 갖고 있다고 하며 '만수'라 불리는 유재학 감독의 용병술이 빛났다. 울산 모비스를 프로농구(KBL)에서 두 시즌 연속 정상으로 이끈 감독다웠다. 그러나 기자회견장 분위기는 애매했다. 처음에는 화기애애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농구에 대한 걱정이 이어졌다. '
유 감독은 금메달 소감을 묻는 질문에 "행복하다. 말이 필요없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기적이었다. 10%의 확률이라고 봤다. 이를 위해 우리 선수들이 근성과 열정을 갖고 뛰었다"며 "이런 큰 기적을 쓰기 위해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에게 감사하다"고 금메달을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유 감독은 모비스에서 2연패를 한 것보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 더 큰 감동이라고 했다.
한국 대표팀은 2013-2014시즌을 마친 뒤 소집돼 조직력을 쌓았다. 그러나 지난달 스페인에서 열린 농구월드컵에서는 전패의 수모를 당했다. 세계의 벽은 높았고 한국 농구는 한계점을 보였다. 유 감독은 "세계선수권에 다녀와서 힘들었다. 의지는 강했지만 월드컵에서 전패해 분위기가 떨어져 있었다"며 "몇몇 선수는 농구에 대한 회의까지 가질 정도로 침체된 분위기였다"고 떠올렸다. 이때 힘이 된 것이 고참들이었다. 유 감독은 "이를 끌어올려 아시아 정상으로 올리는 게 힘들었다. 팀의 고참 선수들이 노력했고 금메달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란과 일본의 감독에게 질문이 이어졌다. 시간이 나자 유 감독은 손에 들고 있던 기록지를 유심히 살펴봤다. 표정은 이내 심각해졌다. 기쁨도 잠시였던 것이다. 유 감독은 "2년 동안 대표팀을 맡으면서 한국 농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카자흐스탄·이란·필리핀 등이 무조건 올라올 것이다"며 "이제 한국 농구를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없다. 한국에서는 1대1 돌파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고 쓴 소리를 했다. 이어 "10년 이상 계획을 갖고 학원스포츠부터 농구의 기본을 가르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방안으로 유소년 대표팀에 전임지도자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감독은 "성인 대표팀보다 청소년 대표팀에 전임 감독이 필요하다"며 "세계농구 흐름도 알아야 하고, 연속성도 필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장단점을 파악해 체계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의 축하인사가 쏟아졌지만 유재학 감독은 가벼운 웃음만 머금고 빠르게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만수'는 금메달 이후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