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김경란 역으로 출연한 배우 안소요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에서 진행된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2023.03.27.
“많은 분들이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를 통해 학교폭력을 비롯한 사회의 여러 이슈에 관심을 가져주시게 된 것 같아요. 그걸로 감사하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경란을 연기한 배우 안소요는 27일 서울 중구 일간스포츠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더 글로리’는 10대 시절 당한 학교폭력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여자 동은(송혜교)이 자신의 인생을 걸고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안소요는 이 작품에서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경란을 연기했다.
경란은 복잡한 인물이다. 10대 시절 자신보다 앞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단짝 동은을 두려운 마음에 외면했고, 그러다 자신이 다음 타깃이 됐다. 이후 사회에 나와서도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이들의 밑에서 일하며 산다. 안소요는 경란의 이 같은 심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오랜 세월이 쌓였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경란의 곁엔 아무도 없었고, 나름대로 벗어나려고 애쓴 적도 많았겠지만 아마 좌절했겠죠. 그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어떻게 벗어나야할지 엄두가 안 나서 자기감정을 스스로 외면하며 살았던 것 아닐까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김경란 역으로 출연한 배우 안소요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에서 진행된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2023.03.27. 누군가는 이런 경란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자립이 가능한 성인이 돼서도 청소년기 자신에게 감정적, 육체적 상처를 남긴 이들의 곁에 남는 선택을 한 것인지 상식적이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폭력에 익숙해진다는 건 본래 그런 것이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지속되면 사람은 무너진다. 안소요는 “괴롭힘이 심한 날이 있으면 덜한 날도 있고 그러지 않았겠나. 아마 경란이는 그나마 조금 괜찮은 날들에 위안을 삼으면서 버티고 있던 게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경란의 변화는 동은과 만나면서 시작됐다. 동은은 도무지 자신이 겪은 피해와 그로 인해 무너진 감정을 외면하며 살 수 없었다. 자신에 앞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친구에 대한 부채 의식도 동은을 붙들었다.
여전히 가해자들의 곁에 있었던 경란은 동은의 복수 과정을 지켜봤다. 처음엔 애써 동은을 외면하고 차갑게까지 대하던 경란은 뚝심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동은을 보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연대가 이뤄진 것이다.
“경란에게 동은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큰 파도였을 거예요. 동은이를 만나기 시작한 시점부터 경란이의 마음에는 파도가 일었을 거고, 그때부터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자신의 감정을 마주했을 거예요. 애써 마음 깊이 감춰뒀던 동은에 대한 죄책감과 괴로움이 일었겠죠. 그러다 결국 자신이 느끼기에 바닥을 찍고 난 후에야 경란이는 동은이에게 손을 내밀고 미안하다고 할 수 있었어요.”
‘더 글로리’에는 동은이 자신의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가 바로 내 첫 번째 가해자”라고. 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학교폭력을 비롯한 사회의 많은 폭력은 고립과 방치에서 이뤄진다는 것. 만약 동은에게 우산이 돼 줄 수 있는 다른 엄마가 있었다면 그는 그토록 지독한 학교폭력에는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고, 경란이 보다 일찍 동은과 손을 잡았다면 진작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단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진작에 경란이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 줬더라면 경란이의 삶이 더 일찍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제라도 동은이가 나타나준 게 정말 다행이었던 거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김경란 역으로 출연한 배우 안소요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에서 진행된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2023.03.27. ‘더 글로리’ 이후 사회 곳곳에서는 자신의 실제 학교폭력 경험을 공개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폭행죄 5년, 상해죄 7년, 물건을 사용한 특수상해죄 1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학교폭력에 대한 공소시효를 늘려야 한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 이 같은 움직임은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안소요는 ‘더 글로리’가 자신에게 “영광인 작품”이라면서 “이렇게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져올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당장 학교폭력을 비롯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순 없겠죠.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밖에는요. 저는 다만 경란이가 만약 ‘더 글로리’를 본다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길 바라며 연기했어요. 만약 경란이를 만날 수 있다면, 혹은 세상에 살아 있을 다른 경란이에게 한 마디를 할 수 있다면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언젠가는 괜찮아 질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