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 예능 판도에도 딱 들어맞는 요즘이다. 자극적인 폭로가 난무하는 토크쇼, 연예인들의 끼리끼리 여행, 우후죽순 생겨나는 먹방 예능 사이에서 tvN 표 ‘착한 예능’의 약진이 예사롭지 않다. 그 중심엔 ‘보검 매직컬’과 ‘방과후 태리쌤’이 있다. 두 프로그램은 진정성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들고 나왔다. 겉으로 보면 평온한 ‘힐링 예능’ 같지만, 그 속에는 색다른 재미와 공감의 포인트가 숨어 있다.
◇ 박보검은 무주로, 김태리는 문경으로 사진=tvN ‘보검 매직컬’ 방송 캡처. ‘보검 매직컬’과 ‘방과후 태리쌤’은 각각 배우 박보검, 김태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두 배우 모두 연예계에서 성실함으로 정평이 난 인물들이다. 박보검은 군 복무 중 취득한 이용사 국가 자격증을 활용해 이발소를 열었다.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따뜻한 화법은 그의 서툰 이발 실력마저 소박한 매력으로 만든다.
김태리는 방과후 연극반 선생님이 됐다. 전교생이 열여덟 명인 문경 용흥초등학교에서 7명의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친다. 평소 작품 선택에도 신중하기로 유명한 그는 1회 방송부터 적잖은 부담감을 드러내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tvN ‘방과후 태리쌤’ 방송 캡처. 이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뜻밖의 반전을 발견했다. 늘 당당하고 밝았던 김태리도 새로운 도전 앞에서는 긴장하고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러 SNS에서는 “유명 배우도 우리와 똑같은 부담을 느끼는구나”라는 공감이 이어졌고,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을 한층 더 가깝게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반응을 증명하듯, 2월 3주차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화제성 조사에서 김태리와 박보검이 나란히 비드라마 출연자 부문 1, 2위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 소외된 지역에 활기
사진=tvN 제공. ‘보검 매직컬’과 ‘방과후 태리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소외된 지역을 주 무대로 삼았다는 점이다. 최근 전북 무주의 앞섬마을은 ‘보검 매직컬’ 촬영지로 알려지며 새로운 관광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촬영에 사용된 미용실 건물이 철거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면서 주말에는 약 500명, 평일에도 200~300명의 관광객이 찾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리가 찾아간 용흥초등학교 역시 폐교 위기에 처했던 곳이다. 문경 시내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라 외부 강사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이 작은 학교는, 김태리가 연극반 선생님으로 합류하며 새로운 활기를 찾았다. 덕분에 소외됐던 교육 현장은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으로 다시 각인되기 시작했다.
‘방과후 태리쌤’을 기획한 박지예 PD는 “지방 소멸과 폐교 증가에 대한 기사를 많이 접했다”며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이런 현실에 조금이나마 의미를 보탤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 ‘보여주기’가 아닌 ‘진짜’의 힘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최근 배우들의 예능 출연이 익숙해진 흐름 속에서 이들 프로그램의 특징은 출연자에게 분명한 역할이 주어진다는 점”이라며 “단순한 일상 관찰을 넘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이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정서를 전달한다”고 짚었다.
이어 “방송을 위한 보여주기식 설정이 아니라 박보검이 미용사 국가 자격증을 따려하고 김태리가 고민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심’이 프로그램의 힘”이라며 “결국 어떤 장르든 진정성이 성패를 가르는 시대에 이런 흐름은 ‘착한 예능’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