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혁
“많은 분들이 사랑을 부활시키자는 언어에 공감해주고 사랑을 보내주셨다는 사실이 감동적입니다.”
명실상부 대중형 아티스트로 거듭난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이찬혁이 오랜 고민 끝에 내놓은 ‘멸종위기사랑’의 메시지에 대한 대중의 응답에 감격을 표했다.
이찬혁은 지난달 26일 열린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위드(with) 카카오창작재단’에서 3관왕에 올랐다. 그의 솔로 2집 ‘에로스’ 타이틀곡 ‘멸종위기사랑’은 쟁쟁한 후보작을 제치고 올해의 노래로 선정됐으며, 이 앨범과 곡으로 최우수 팝 음반/노래 부문도 휩쓸었다.
‘에로스’는 이찬혁이 2022년 10월 발표한 솔로 1집 ‘에러’ 이후 약 2년 9개월 만에 선보인 두 번째 솔로 앨범이다. 타인의 죽음과 그로부터 마주하는 다양한 감정을 총 아홉 곡에 펼쳐냈는데, 5번 트랙 ‘멸종위기사랑’이 특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곡은 발매된 지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음원차트 상위권에 붙박이 롱런 중이다. 멜론 일간차트 최고 순위는 롱런의 기폭제가 됐던 지난해 11월 청룡영화상 축하 무대 이후 달성한 8위이며,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5일 현재 12위를 달리고 있다. 이 곡은 해당 앨범의 타이틀곡은 아니었지만 무려 올해의 노래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찬혁은 해당 시상식에 영상으로 전한 수상소감에서 “‘에로스’는 개인적으로는 큰 가능성을 보여준 앨범이었고, 만들면서도 인간적으로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만족도가 높은 앨범이었는데 대중적으로도 과분한 사랑을 받고 큰 상까지 받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올해의 노래로 ‘멸종위기사랑’이 선정됐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힘을 믿고 기다리고 있다는 방증이 아닌가 싶다”며 “우리 모두 조금 더 배려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베풀 수 있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면 좋겠다. 이 상이 주는 숙제와 무게가 그런 것인 것 같다”고 말했다.
‘멸종위기사랑’은 흥겨운 가스펠 사운드에 ‘왔다네 정말로 아무도 안 믿었던 사랑의 종말론’,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사랑’ 등의 자조 섞인 가사가 대비를 이뤄 깊은 인상을 남긴다. 4차원적이면서도 직관적인 제목과 가사도 곡의 매력에 한 몫을 한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는 “멸종위기사랑이라는 키워드는 얼핏 어려운 말 같지만 사실은 너무 쉬운 말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의 나열인데, 그걸 붙여놨을 땐 상당히 낯선 느낌도 든다”며 “숏폼 시대에 즉각적으로 이해되는 키워드를 뽑아냈다는 측면이 탁월했다”고 짚었다. 이어 “이찬혁의 음악은 신나지만 사람들이 목말라했던, 뻔하지 않은 공감대 높은 가사가 있다. 대중적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즐길 수 있는 톤의 노래 중엔 그런 가사의 노래가 거의 없어 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앨범은 전반적으로 1980~90년대 레트로 풍에 신시사이저와 베이스를 적재적소에 사용해 팝 스타일이 강조된 점이 특징인데 한국 대중가요가 익숙한 이들에겐 90년대 초·중반을 풍미한 그룹 015B 류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 ‘빛나는 세상’까지 이어지는 서사는 흡사 1집이 타이틀곡부터 마지막 트랙 ‘장례희망’으로 이어지는 여정과도 오버랩된다.
이찬혁. (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찬혁은 2013년 SBS ‘K팝스타2’에 동생 이수현과 함께 남매듀오 악동뮤지션으로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고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대중에 강렬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듬해인 2014년, 팀명 악뮤로 정식 데뷔한 뒤엔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오랜 날 오랜 밤’, ‘200%’, ‘다이노소어’, ‘러브 리’, ‘후라이의 꿈’ 등 주옥 같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국민남매 가수로 사랑받았다.
이찬혁은 악뮤의 모든 곡을 작사, 작곡 및 편곡까지 직접 해내며 프로듀서이자 플레이어로 활약했고, 두 장의 솔로 앨범을 통해서 악뮤와 차별화된, 그 자신만의 사유와 취향이 담긴 음악들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 보였다. 10년을 훌쩍 넘어선 활동 내내 보다 넓고 깊고 견고해지는 음악 세계를 보여준 그의 여정은 그 자체로 천재 소년 뮤지션의 성장사였다.
임 평론가는 “‘K팝스타’라는 큰 경연 프로그램 출신이고, YG엔터테인먼트라는 아이돌 기획사에서 계속 활동했고, 또 대중적 히트곡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K팝 인기 가수로서의 이름값과 대중성을 갖고 있는데, 그런 음악가 중에서 이찬혁처럼 독특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현 주류 음악계에서 새롭고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의 음악이라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찬혁, 이수현.
임 평론가는 “스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 K팝 시장에서는 어린 나이에 데뷔한 뒤 나이 들어가면서도 음악으로써 자신의 고민을 표출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인데, 이찬혁은 오롯이 음악 그리고 음악 관련 퍼포먼스로 이를 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짚었다. 이어 “결국 음악가가 가장 멋있게,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기 안의 고민이나 변화를 음악으로 표현해내기 쉽지 않은데 이찬혁은 처음부터 자작곡으로 시작하기도 했고, 계속해서 음악이라는 콘텐츠로 표현해내고 있다. 이는 후배 뮤지션들에게도 굉장히 좋은 예가 될 것”이라 덧붙였다.
한편 이찬혁은 ‘에로스’ 앨범을 끝으로 오랫동안 몸 담았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난 이들은 신생 레이블 ‘영감의 샘터’를 설립하고 새 출발을 준비 중이다. 최근 정규 4집 발매 소식을 기습적으로 알려 기대를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