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면세업계가 K팝 스타를 전면에 내세우고 다시 고삐를 잡고 있다. 침체된 면세 업황과 고환율로 고전 중이지만, 최근들어 증가세인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 그룹을 잇따라 모델로 발탁하며 ‘K컬처 효과’ 극대화에 나선 배경도 이 때문이다.
12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주요 면세점들이 최근 K팝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글로벌 모델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하츠투하츠와 킥플립을 모델로 기용한 데 이어 에스파를 글로벌 모델로 재발탁했다. 서울 명동 본점과 잠실 월드타워점 등 핵심 매장을 중심으로 옥외 광고와 디지털 캠페인을 전개, 글로벌 팬덤을 관광객 유치로 연결한다는 전략이다.
신라면세점도 지난해 말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그룹 에이티즈를 홍보 모델로 기용해 콘텐츠 마케팅을 강화 중이다. 단순한 광고를 넘어 팬덤을 기반으로 한 체험형 이벤트와 프로모션을 통해 젊은 해외 관광객 유입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면세업계가 스타 마케팅에 다시 힘을 싣는 것은 업황 부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면세점들은 ▲매출 감소 ▲객단가 하락 ▲수익성 악화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고환율과 글로벌 경기 침체·소비 패턴 변화 등의 영향으로 면세 쇼핑 수요가 예전만 못해졌기 때문이다.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K-WAVE존’에서 한 외국인 관광객이 BTS 굿즈를 구경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면세점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 수는 증가했지만 매출은 오히려 감소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방문객은 1091만명으로 전년 대비 16.9% 늘었으나 매출은 9조3333억원으로 약 16% 줄었다. 과거 매출을 떠받치던 중국 보따리상(다이궁) 수요가 크게 줄어든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방한 관광객 증가세는 업계의 주요 희망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1850만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올해는 2000만명 돌파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개인 자유여행객(FIT)이 늘면서 면세점 방문객 수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1~2월 주요 면세점의 FIT 매출도 전년 대비 20~30%가량 증가했다. 신세계면세점은 같은 기간 FIT 매출이 25% 늘었고, 롯데면세점과 현대면세점도 각각 31%, 26%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단체 관광객 중심 구조에서 자유여행객 중심 구조로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면세점들은 쇼핑 중심 공간에서 벗어나 체험형 관광 플랫폼으로 변신하는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명동 본점의 ‘스타에비뉴’를 미디어아트 기반 체험형 공간으로 개편했고, 잠실 월드타워점에는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KMUSEUM & GIFT’ 매장을 조성했다. 민화 작가 작품을 전시하고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갤러리형 매장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롯데면세점이 글로벌 모델로 4세대 걸그룹 '에스파'를 발탁했다. 신세계면세점은 명동점에서 K패션과 푸드 중심으로 매장을 재단장하고, 뷰티 플랫폼인 화해와 협업해 성분 중심 K뷰티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면세점 역시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체험형 콘텐츠 확대에 나섰다. 무역센터점에서는 인공지능(AI) 기반 피부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뷰티 트립’ 체험존을 운영하며 맞춤형 뷰티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면세점 경쟁력이 상품 가격보다는 ‘경험 콘텐츠’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유여행객 중심으로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과거처럼 대량 구매에 의존하기 어려워졌다”며 “K팝과 K뷰티, 전통문화 등 K컬처 콘텐츠를 결합해 관광객이 오래 머무르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