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이야기장수
가수 이랑이 자신의 가족사를 기록한 신간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를 펴냈다. 이 책은 개인의 회고록이라기보다 한국 사회에서 반복돼온 여성들의 삶을 추적하는 기록에 가깝다.
책의 출발점은 2021년 겨울이다. 이랑의 언니가 세상을 떠난 날, 그는 장난감 보석 왕관을 쓰고 상주를 맡았다. 언니가 준비하던 크리스마스 공연을 대신하듯 장례식장에서는 언니의 자리를 비워둔 채 춤이 이어졌다. 이랑은 언니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소진사(消盡死)’로 규정한다. 가족과 사회의 요구 속에서 돌봄과 관계를 감당해온 끝에 기력이 다한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죽음에서 출발해 이전 세대의 여성들로 시선을 확장한다. 전쟁과 가난, 가부장적 가족 구조, 남아선호사상 속에서 여성들은 종종 ‘이상한 여자’ 혹은 ‘미친 여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랑은 그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가족 여성들의 삶을 다시 들여다본다. 왜 어떤 여성들은 ‘미친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놓인 역사와 감정을 기록한다.
저자가 원고를 쓰는 데는 4년이 걸렸다. 고통 속에 집필한 이 글은 오랫동안 일부 지인들과만 공유되던 사적인 기록이었다. 한국에서 출간 계획이 없었던 탓에 책은 일본과 대만에서 먼저 출간됐다. 일본 독자들 사이에서는 “읽는 게 고통스럽지만 멈출 수 없다” “가족과 죽음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쓰는 책은 드물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고 초판은 빠르게 소진됐다. 이후 한국판 출간이 결정되면서 저자의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이랑 엄마 김경형의 역사’가 미니북 형태로 함께 묶였다.
책이 다루는 이야기는 개인의 경험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반복돼온 가족 서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전쟁 이후의 상실, 장손 중심의 가족 구조, 딸에게 요구된 돌봄과 희생 같은 문제들이 세대를 거쳐 이어진다. 이랑은 이 과정을 비난의 언어보다 이해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한다. 가족의 역사를 드러내는 일은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반복됐는지 질문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미친년’이라는 단어는 보통 낙인의 언어이지만, 책에서는 이를 뒤집어 사용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가족과 사회의 압력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상태를 가리키는 동시에, 그 삶을 기록하려는 저자의 자기 호명에 가깝다.
결국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는 한 가족의 기록이면서 한국 사회 여성 서사의 사적인 아카이브에 가까운 책이다. 슬픔과 상실을 중심에 둔 이야기지만, 기록의 끝에는 관계와 사랑에 대한 기억이 남는다.
이랑은 정규 앨범 ‘욘욘슨’, ‘신의 놀이’, ‘늑대가 나타났다’ 등을 발표했다.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상,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상과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으며 뮤직비디오, 단편영화, 웹드라마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30代가 됐다’, ‘대체 뭐 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오리 이름 정하기’,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기타를 작게 치면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