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사장이 세계 최대 영화 축제 칸국제영화제에서 BIFF의 변화와 과제를 짚었다. 박 이사장은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KOFIC 파빌리온에서 진행된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과거를 그대로 지키고 유지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의 가장 큰 화두는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오스카) 연계 자격 획득이었다. BIFF는 최근 경쟁부문 최고상인 ‘부산 어워드 대상’ 수상작이 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자동 출품되는 자격을 얻었다.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전 세계 단 6개 영화제의 최고상 수상작에만 부여된 것으로, 아시아에서는 BIFF가 유일하다.
“저희도 몰랐어요. 얼마 전 아카데미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내부 선정 위원회가 철저한 자료 조사를 거쳐 전 세계 6개 영화제를 선정했다고 했죠. 그들과 대화하며 미키 리(이미경 CJ그룹 부회장)와 봉준호 감독, K팝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K컬처 위상을 실감했고, 이러한 문화적 영향력이 선정 배경에 중요하게 작용했지 않았나 해요. 또 검열이 없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축제를 즐기고 입장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강점이 됐을 거예요.”
이번 성과는 지난해 BIFF를 비경쟁에서 경쟁 영화제로 전환하지 않았다면 이루지 못했을 결과다. BIFF는 내부 이견 충돌과 외부의 의심 섞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경쟁 영화제로 전환하고, 본격적인 체제 개편에 나섰다.
“시대가 바뀌었으면 영화제도 변화해야죠.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몇 달 동안 치열하게 내부 토론을 거쳤고, 결국 뉴 커런츠와 지석상을 없애고 통합 경쟁 부문으로 전환하기로 했죠. 처음에는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영화제의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해 필요한 결정이었어요. 다만 현재 구조상 월드 프리미어로 좋은 작품을 초청하는 건 한계가 있어서 아시아 프리미어를 적극 활용하고자 하죠.”
이 같은 변화의 연장선에는 OTT 작품 수용도 있다. BIFF는 그간 꾸준히 OTT 콘텐츠를 초청하며 시대에 발맞춰 왔다. 다만 2024년 개막작까지 넷플릭스 영화 ‘전, 란’으로 선정하면서 대중성 편향이라는 거센 비판과 뭇매를 맞았다. 이와 관련, 박 이사장은 개막작이 지녀야 할 대중적 성격을 분명히 했다.
“개막작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일 뿐이지, 그해 초청작을 대표하는 게 아니죠. 개막식이 열리는 영화의전당이 5000석 규모라 개막작은 어느 정도 대중적인 요소도 갖춰야 합니다. 영화에 전문 지식이나 관심이 없는 대중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선정하는 게 맞죠. 우리 사회의 이슈를 담고 있고, 문화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면 플랫폼과 무관하게 선정할 생각이예요.”
“BIFF의 라이벌은 칸국제영화제 뿐”이라며 장난스레 웃은 박 이사장은 언제나처럼 올해도 칸 곳곳을 둘러봤다고 했다. 특히 눈여겨 본 것은 칸국제영화제의 시민 참여 유도 방안으로, 이를 부산에 적용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올해 칸에서 보고 배운 점들이 꽤 많았습니다. 특히 좋았던 건 시민 대상 티켓 배부죠. 영화제 기간에는 아무래도 시민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시청에서 극장 티켓 100장가량을 추첨해서 배부합니다. 당첨된 시민들도 ‘행운이다, 명예롭다’고 생각하고요. BIFF에서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것이죠.”
아울러 박 이사장은 칸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유럽의 주요 영화제들이 국가적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것을 언급하며, 한국 정부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실제 BIFF는 최근 몇 년 정부 예산이 삭감되며 열악한 재정 상황에 직면해 있다.
“칸국제영화제의 위상은 영화제 자체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에요. 프랑스란 국가가 총력전을 펼치며 밀어줘서 가능한 거죠. 지자체는 극장 공간만 빌려줄 뿐, 실질적인 운영과 재정은 모두 중앙정부가 책임져요. 정부 차원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거예요. 반면 우리 영화제는 정부 예산이 줄어들고 있죠. 그럼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어요. 이제는 영화제를 지역 축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화행사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박 이사장은 BIFF가 진정한 세계적 영화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내부 시스템의 고질적인 한계를 깨고 글로벌 기준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원도 문제지만, 냉정하게 내부 역량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하죠. 객관적으로 우리 조직은 운영 면에서 아직 미숙해요. 채용 방식이 대표적이죠. 인력을 뽑을 때 ‘상근직’, ‘부산 거주 가능자’ 등 조건을 거는데, 이런 폐쇄적인 방식으로는 발전할 수 없어요. 당장 베를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만 보더라도 영국 거주 미국인이에요.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려면 인재 채용의 문이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하죠. 이에 내부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습니다.”
한편 올해 BIFF는 오는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