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노르웨이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무대로 돌아왔다. 엘링 홀란(맨체스터 시티) 마르틴 외데고르(아스널) 등 이른바 '황금 세대'를 앞세운 노르웨이는 17일(한국시간) 이라크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르며 장대한 여정의 서막을 연다.
오랜 침묵을 깨고 돌아온 노르웨이가 본선 무대만큼이나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곳이 있다.
월드컵을 앞두고 노르웨이축구협회가 공개한 사진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데이비드 야로우가 촬영한 이 화보에서 노르웨이 선수들은 피오르 해안의 장엄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실제 바이킹 의상과 방패, 무기를 든 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엘링 홀란 SNS 캡처
'괴물 공격수' 홀란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이 사진과 함께 1994 미국 월드컵에 출전했던 아버지의 사진을 나란히 게재하며 “28년의 꿈이 이뤄졌다”고 환호했다. 팬들 역시 경기장에서 일제히 노를 젓는 퍼포먼스인 '바이킹 노 젓기(Viking row)' 응원을 예고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노르웨이가 내세운 '바이킹'은 '강인하고 용맹한 선조'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선택으로 읽힌다. 국가적 축제를 앞두고 정체성을 결집하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과거의 어두운 역사적 맥락은 사라진 채 '힙한 콘텐츠'로만 소비된다는 점이다. 타자에 대한 침탈의 역사가 '우리'의 결속을 위한 유희로 변모할 때, 스포츠는 때때로 배타적 민족주의와 맞닿을 위험성을 드러낸다. 화보를 촬영한 작가 야로우 역시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정도 비판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고 시인한 바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노르웨이 일간지 모르겐블라데트의 평론가 마르쿠스 슬레트홀름은 이 화보를 두고 "쇼비니즘(맹목적 국수주의)적이며, 과거 네오나치 세력들이 탐닉했던 상징들을 연상시킨다"며 날 선 비판을 제기했다. 8~10세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바이킹의 역사는 침략과 약탈,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현대 스포츠의 마케팅 수단이자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비판 없이 소비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반면 스톨레 솔바켄 노르웨이 감독은 "세상엔 이보다 더 크고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그런 논란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며 비판을 일축했다.
마침내 월드컵에 복귀한 노르웨이. 관중석의 거대한 '바이킹 노 젓기' 응원과 함께 화려한 복귀 신고식을 치를 예정이다. 바이킹의 후예들이 보여줄 피치 위에서의 돌풍만큼이나, 이들이 촉발한 논쟁 역시 이번 월드컵을 바라보는 흥미로운 관전 요소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