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설경구 / 사진=일간스포츠 DB
오랜 시간 여러 얼굴을 지나온 배우의 힘은 다층적 인물을 만났을 때 더욱 선명해진다. 배우 설경구가 신작 ‘들쥐’를 통해 이를 증명했다.
9일 넷플릭스 공식 집계 사이트 투둠에 따르면 ‘들쥐’은 공개 2주차(8월 31일~9월 6일) 440만 시청수(시청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글로벌 톱10 영화(비영어) 부문 정상에 올랐다. 톱10 진입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인도, 멕시코, 브라질,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45개국이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는 ‘쥐가 손톱을 먹으면 사람이 된다’는 설화를 모티브로 한 동명 웹툰이 원작인 작품이다. 의문의 존재 들쥐에게 이름과 얼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소설가와 잃어버린 돈을 회수하려는 사채업자, 그리고 형사가 들쥐의 정체를 쫓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중 설경구는 사채업자 노자를 연기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폭력과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로, 잃어버린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해 문재(류준열)가 휘말린 기이한 사건에 발을 들인다.
얼핏 빌런처럼 보이는 노자는 극이 본격화되면서 문재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자 절대적인 지지자로 돌아선다. ‘슈킹당한’ 돈을 되찾겠다는 분명한 목적 아래 움직이지만, 행동 곳곳에서 인간미가 묻어난다. 일테면 쉴 새 없이 욕을 내뱉으면서도 문재의 공황 증상을 살피고 약까지 구해다 먹인다. 그를 부르는 호칭인 노자 역시 자신이 ‘묻은’ 사람에게 노잣돈을 준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드라마의 긴장 조율도 그의 몫이다. “노자 형”만 외치며 대책 없이 사고를 치는 문재를 다그치고, 이내 능청스러운 반응으로 분위기를 환기한다. 시청자가 답답함을 느낄 만한 순간에는 직접 해결사로 나선다. 빠릿빠릿한 행동력과 두뇌를 앞세워 위기를 벗어나고, 누구보다 부지런히 들쥐를 쫓는다.
‘들쥐’ 스틸 / 넷플릭스 제공
노자의 이같은 면모는 ‘들쥐’를 단순한 장르물 이상의 재미로 이끄는 힘으로, 그 중심에는 설경구가 있다. 설경구는 노자의 거친 면모를 날것의 호흡으로 밀어붙이는 한편, 그 안에 자리한 인간적인 구석을 놓치지 않는다. 그간 다양한 장르와 인물을 거치며 보여준 특유의 인간미는 보다 투박하고 유쾌하며, 직선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장르적 긴장과 코미디, 인물 간 정서가 맞물리는 지점마다 설경구의 노련함은 힘을 발휘한다. 설경구로 인해 작품은 몰입도를 얻고 노자는 전형성을 벗어난다.
중반부에 진입하면서는 액션 연기도 두드러진다. 매회 뛰고 구르고 달리던 설경구는 조폭 출신답게 곧잘 반격에 나선다. 주로 야구방망이, 도끼, 드럼통 등 주변의 사물을 무기처럼 활용하는 식인데, 몸을 사리지 않는 거침없는 움직임과 묵직한 타격감은 ‘들쥐’가 지닌 스릴을 극대화한다.
류준열과의 호흡은 작품의 또 다른 재미다. 설경구는 극의 중심에 류준열을 두고 관계의 밀도를 세밀하게 조절한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거리를 좁히고 또 물러서며 관계의 온도를 맞춘다. 두 사람 사이에 쌓이는 갈등과 신뢰는 이러한 호흡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축된다.
류준열 역시 설경구와의 작업을 돌아보며 “정말 편하고 무슨 말을 해도 열린 상태로 다 들어준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동료를 만나 어떤 작업을 하느냐가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깊어지는데, 선배와 작업은 내 남은 연기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채워주고 본이 되어줄 것 같다. 함께해 행복했고 감사했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