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사건의 진실을 파고드는 장르적 쾌감은 선명하고, 그 너머에 남는 질문은 묵직하다. ‘암살자(들)’이 외화가 독식한 극장가에 한국영화의 저력을 보여준다.
1974년 8월 15일 제29회 광복절 경축식.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부인이 저격당한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용의자는 즉각 체포된다. 사건은 국가적 비극으로 서둘러 종결되지만, 현장 경호를 담당했던 형사 철구(유해진), 사건 이면을 응시하던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그날의 혼란을 목격한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은 발표된 수사 결과와 실제 정황 사이, 지워지지 않는 의문을 품는다.
‘암살자(들)’은 육영수 여사 총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사건 9일 전부터 이후 90일을 통과하며 공식 기록에서 사라진 탄환 2개의 행방을 쫓는다. 미덕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미스터리의 소재로만 소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연출을 맡은 허진호 감독은 범인이나 배후를 밝혀내는 것에 몰두하지 않는다. 사건 자체가 아닌 그 안에 머문 사람들을 응시하고, 그들의 행동과 정서를 통해 시대의 공기를 재현한다.
과정의 설계도 치밀하다. 영화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사건을 마주한 세 인물의 시선을 병렬 배치하고, 각자가 포착한 정황을 포개가며 사건에 접근한다. 이들의 시선이 맞물릴 때, 서사는 단선적인 추적극에서 벗어나 당시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로 외연을 넓힌다. 결말 또한 하나의 답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허 감독은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이 교차하는 지점에 관객이 개입할 여지를 남긴다.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을 낯선 각도에서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 ‘암살자(들)’은 실화 바탕의 작품이 지닌 힘과 매력을 온전히 드러낸다.
‘암살자(들)’ 스틸 / 사진=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서사를 지탱하는 세 주연 배우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의 연기는 견고하다. 그중에서도 재환을 연기한 박해일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극 후반부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사건의 진상을 좇는 데서 진실을 기록하려는 이들의 분투로 옮겨가면서, 자유언론실천선언처럼 메시지를 직선적으로 전달하는 장면이 더러 등장한다. 박해일은 이를 절제된 표정과 건조한 호흡으로 밀어붙인다. 특유의 담백한 연기는 자칫 관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캐릭터의 신념을 한 인간의 태도로 구체화한다.
반면 중후반부에 쏟아지는 화려한 조·단역진은 영화가 쌓아온 긴장에 미묘한 균열을 낸다. 박정민을 필두로 김대명, 류경수, 류혜영, 박성훈, 박지환, 박해준, 박훈, 배성우, 심은경, 신현빈, 엄지원, 엄태웅, 오달수, 오정세, 유연석, 정우성 등 익숙한 얼굴의 존재감은 종종 관객의 시선을 영화 바깥으로 밀어낸다. 특히 개인의 논란이 캐릭터보다 먼저 연상되는 배우들의 등장은 영화가 공들여 구축해온 서사의 몰입을 방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