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열린 제25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호주전에서 역투하는 이건욱의 모습. 이건욱은 당시 대회 4~5위전에서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와 선발 맞대결을 펼쳐 화제였다. IS 포토
오른손 투수 이건욱(31·SSG 랜더스)에게 오타니 쇼헤이(32·LA 다저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 검색어'와 같다. 동산고 에이스였던 이건욱은 2012년 제25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5~6위전에서 일본 간판 오타니와 선발 맞대결을 펼쳐 3-0 승리를 이끌었다. 8이닝 7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7이닝 12탈삼진 2실점을 기록한 오타니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그 대회에서 기록한 이건욱의 평균자책점은 0.48이었다.
하지만 두 선수의 프로 입단 후 궤적은 크게 엇갈렸다. 이건욱은 입단 직후인 2014년 3월 오른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았다. 이듬해 겨울에는 미국 교육리그에서 발가락 골절 부상까지 당했다. 2020년 개인 한 시즌 최다인 6승(122이닝)을 거두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상승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시즌까지 1군 통산 승수는 8승에 그쳤다. 2025년에는 1군 등판 기록마저 없었다.
2014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 지명된 이건욱. IS 포토
반면 오타니의 커리어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투수와 타자를 병행하는 '이도류'로 일본 프로야구(NPB)와 미국 메이저리그(MLB)를 평정하며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역사를 써 내려갔다. 특히 2017년 12월 MLB에 진출한 이후에는 양대 리그를 통틀어 최우수선수(MVP)만 네 차례 수상하는 등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올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건욱은 '잊힌 존재'에 가까웠다. 개막전을 퓨처스(2군)리그에서 맞이한 그는 5월 중순이 돼서야 1군의 부름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건욱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스스로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기회가 많이 남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며 "어린 선수들에게 다섯 번 정도 기회가 간다면, 나에게는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잡아야 했다"고 말할 정도로 절박한 마음이었다.
올 시즌 불펜에서 제2의 야구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이건욱. SSG 제공
이건욱은 2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883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되는 기쁨을 맛봤다. 5-6으로 뒤진 8회말 마운드에 오른 그는 1이닝을 퍼펙트로 막아냈다. SSG 타선은 9회초 4점을 뽑아내며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이건욱에게 이날 승리는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한때 오타니 쇼헤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목받았던 유망주였지만, 이후 긴 부상과 부침을 겪으며 좀처럼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그렇게 멀어졌던 1군 무대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한 것이다. 이숭용 SSG 감독은 "이건욱이 불펜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흡족해했다.
2014년 1차 지명으로 입단해 올 시즌 불펜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이건욱. 광주=배중현 기자
최근 10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간 이건욱은 "오랜만의 승리라 더욱 뜻깊다. 앞으로도 팀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등판해 팀 승리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