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오늘날 방송 산업은 텔레비전이라는 단일 매체를 넘어 유튜브와 OTT로 무대를 확장했습니다. 기획부터 제작, 유통, 마케팅 등 전 과정이 유기적이고 복합적으로 맞물리고 시장의 구조가 다변화된 만큼, 현장에서 검토해야 할 변수와 위험 요소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가운데 ‘저작권’은 콘텐츠 비즈니스의 성공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리스크이자 핵심 자산으로 떠올랐습니다. 권리관계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해진 데다, 자칫 저작권 문제에 얽히면 콘텐츠 게시 중단(Takedown) 가능성도 현실화하면서 일선 제작 현장에서 저작권을 다루는 분위기가 더욱 신중해졌습니다. 저작권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강력한 무기도, 치명적인 리스크도 될 수 있습니다. 권리를 확보하면 그에 따른 부가가치를 누릴 수 있지만, 이를 소홀히 다루면 공들여 제작한 콘텐츠에 ‘저작권 침해 콘텐츠’라는 딱지도 붙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산업적 요구에 발맞춰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도 국내 중소 제작사를 위한 현장 맞춤형 저작권 지원에 적극 나섰습니다. 지난 25일, 콘진원은 상암 B 캠프에서 방송영상 제작사의 IP 개발 및 수출, 유통 역량 강화를 위한 성장 서비스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방송 포맷 저작권과 IP 보호’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개최했습니다. 색달랐던 점은, 단순히 기존의 법률 지식 나열을 넘어 복잡해진 콘텐츠 산업의 현실을 반영한 가상의 사례를 바탕으로 강연을 구성했다는 것입니다.
이날 강연은 방송사 채널에서 방영된 영상저작물의 공동제작 계약 종료 후, 제작사가 핵심 출연진을 그대로 섭외해 제목만 바꾼 유사한 주제의 콘텐츠를 제작·송출하면서 발생한 가상의 분쟁 사례를 다뤘습니다.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소속 허성훈, 박정호 변호사가 각각 방송사와 제작사의 대리인으로 나서 치열한 모의 공방을 벌였으며, 참석한 실무자들의 깊은 공감과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 ‘포맷’은 저작권법상 보호되는 표현인가?
모의 공방에 앞서, 두 변호사는 설정한 가상의 분쟁 사례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으며, 펼치는 주장 또한 개인적 견해와도 무관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 뒤 날카로운 설전을 이어갔습니다.
방송사 측 대리인 역할을 맡은 허성훈 변호사는 오디션, 연애 프로그램, 스포츠 예능 등 장르 자체는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며, 개별 소재나 기본 규칙 역시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인 ‘표현’에 닿지 못하는 아이디어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무대와 소품 혹은 경연·경기 방식, 세부 규칙, 연출 기법 등이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구체적으로 ‘선택·배열·조합’되는 순간,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독립된 ‘표현’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변론했습니다. 즉 여러 요소를 독창적으로 조합해 구축한 구체적인 ‘프로그램 포맷’은 저작권법상 독자적인 보호 대상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반면, 제작사 측 대리인 박정호 변호사는 장르 자체의 자유로운 이용 가능성에 동의하면서도, 후속 프로그램이 이전 프로그램과 유사한 장르나 기본 콘셉트를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맞섰습니다. 특히 과거 트롯 오디션 및 경연 프로그램 사이에서 발생했던 저작권 분쟁 사례를 들며, 단순한 장르적 유사성이나 보편적 구성 요소의 유사만으로는 법적 침해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피력했습니다.
이어서 두 변호사는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의 시초인 ‘짝’의 2017년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며, 당시 흔치 않은 ‘객관적 관찰 형식’, ‘애정촌’이라는 특유의 세계관, ‘남자 1호, 여자 1호’ 식의 호칭 및 도시락 선택, 데이트권 등 독특한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구체성을 갖춘 경우라면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건은 1·2심에서 구성 요소의 선택 및 배열에 따른 저작물성이 부정되었으나, 대법원에서 판단이 뒤집혔습니다. 다만 이는 ‘포맷성’이라는 별도의 권리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선택·배열되고 구체적으로 어우러져 독창적인 개성을 형성했다면 저작물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 고전적 저작자 VS 근대적 저작자
포맷의 저작물성을 넘어, 권리의 주체가 누구인지 가리는 것 역시 치열한 쟁점이었습니다.
허 변호사는 하나의 영상물 내에서도 누구에게 저작자 지위를 인정할 것인지부터 복잡한 문제라며, 학술적 개념인 ‘고전적 저작자’와 ‘근대적 저작자’를 제시했습니다. 고전적 저작자가 대본 작가나 미술·음악 창작자처럼 구체적인 표현물을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근대적 저작자는 PD나 연출자처럼 다양한 창작 요소를 선택·조정하며 작품 전체의 방향과 구성을 총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러한 창작 성과의 귀속과 관련해, 저작권법상 ‘업무상저작물’은 법인의 기획하에 업무상 작성되고 법인 명의로 공표된 경우, 계약이나 근무규칙에 별도 정함이 없다면 그 법인이 저작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결국 그 성과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가 중요하다고 짚으면서도, 외주 제작 구조에서는 ‘외주 PD가 과연 누구의 업무에 종사한 것인가’를 두고 새로운 쟁점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아가 저작권법상 ‘영상제작자’의 지위를 누구로 볼 것인가를 두고도 엇갈린 변론이 이어졌습니다. 박 변호사는 실제 제작을 수행한 외주 제작사가 영상 제작자이며 방송사는 투자자의 지위에 머물러야 한다는 논지를 세운 반면, 허 변호사는 제작비 부담과 비용 집행 및 회계 관리, 유통망 제공 역시 영상 제작 전체를 기획하고 책임지는 주체를 판단하는 핵심 요소라는 논지를 제시했습니다.
두 변호사는 저작권법상 업무상저작물이나 영상저작물 관련 규정만으로는 현실의 모든 분쟁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특히 저작권, 방송 포맷, 후속 시즌, 스핀오프 등 각각의 권리를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귀속시킬지 ‘계약’ 단계에서 명확히 정하는 것이 분쟁 예방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아직 국내에 방송 포맷 저작권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가 없는 만큼, 향후 명확한 법적 기준이 정립되기를 바라는 법조계의 기대감도 함께 전했습니다.
콘텐츠 산업이 성장할수록 창작의 기회는 늘어나지만, 권리관계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히게 마련입니다. 저작권을 단순히 분쟁 발생 후 대응하는 리스크 관리 항목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기획·제작 초기부터 다루어야 할 치밀한 ‘산업 전략’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IP 보호와 공정한 권리관계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가상의 분쟁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 현장의 실무자들과 깊이 있게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매우 뜻깊은 시도입니다. 이러한 현장 중심의 논의가 차곡차곡 쌓여, K콘텐츠가 단순히 ‘잘 만드는’ 단계를 넘어 창작자의 가치와 권리를 온전히 보전하며 더 거대한 산업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본 강연의 모의 공방에서 다루어진 가상의 분쟁 사례가 방송영상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계약 관련 쟁점을 교육 목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구성된 것으로, 각 변호사의 변론은 특정 사건이나 당사자에 대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입장 또는 법률적 판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