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장난처럼 얄궂다. 5년 전 1위 결정전에서 각각 삼성 라이온즈(우규민)와 KT 위즈(김재윤)의 뒷문을 책임졌던 두 선수가 이번엔 서로 유니폼을 바꿔 입고 혹시 모를 두 번째 타이브레이커를 준비하고 있다.
8일 기준 1위 삼성과 2위 KT는 1.5경기 차로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 팀 모두 22~25경기를 남겨둔 가운데 현재의 팽팽한 양상이 이어진다면 2021년 이후 KBO리그 역대 두 번째 1위 결정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두 팀의 무승부 횟수가 같아 최종 승률마저 동률이 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2021년 1위 결정전의 주인공 역시 이 두 팀이었다. 정규시즌 승률 0.563(76승59패9무)으로 동률을 이룬 양 팀은 상대 전적에서 앞섰던 삼성의 안방 대구에서 피 말리는 단판 승부를 펼쳤다. KBO 사상 최초의 1위 결정전은 팽팽한 투수전으로 전개됐다. 삼성 소속이던 우규민은 선발 원태인에 이어 구원 등판해 1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KT 마무리였던 김재윤은 8회 1사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 1⅔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팀의 1-0 승리를 매조지으며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을 견인했다.
"KT 위즈와 삼성 라이온즈가 31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2021년 KBO리그 정규시즌 1위를 놓고 단판승부를 펼쳤다. KT가 1-0으로 삼성을 제압하고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마무리 김재윤이 포효하고있다. 대구=정시종 기자
그로부터 5년 뒤, 두 선수는 유니폼을 맞바꿔 입었다. 우규민은 2024시즌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T로, 김재윤은 같은 해 자유계약선수(FA)로서 삼성으로 이적했다. 이제 김재윤은 5년 전 짜릿한 세이브의 기쁨을 삼성에서 재현하려 하고, 반대로 우규민은 5년 전의 아쉬움을 떨쳐내고 KT의 1위 결정전 승리를 이끌겠다는 각오다.
입장이 정반대가 된 두 선수지만, 1위 결정전 성사 여부에 대해서는 "무조건 피하고 싶다"며 입을 모았다. 단 한 경기가 주는 극도의 압박감과 스트레스 때문이다.
우규민은 2021년 1위 결정전에 이어 2024년 KT와 SSG 랜더스의 5위 결정전까지 타이브레이커만 두 번을 경험한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144경기를 길게 준비하며 고생했는데, 단 한 경기로 순위가 결정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역대 두 번의 타이브레이커를 모두 뛰었는데, 긴 시즌이 자칫 허무하게 날아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승리의 도파민은 정말 짜릿하다. 만약 이번에도 성사된다면 우승이 달려 있으니 그 도파민은 더 짜릿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T 위즈와 삼성 라이온즈가 31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2021년 KBO리그 정규시즌 1위를 놓고 단판승부를 펼쳤다. 삼성 투수 우규민이 7회 선발 원태인에 이어 등판 역투하고있다. 대구=정시종 기자
김재윤 역시 "1위 결정전은 진짜 안 열렸으면 좋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5년 전을 떠올린 그는 "당시 전날 경기를 마치고 새벽에 도착해 잠도 제대로 못 잔 데다 긴장감까지 높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고 회상했다.
과거의 영광과 아쉬움은 교차한다. 2021년 당시 우승의 헹가래 투수였던 김재윤은 "우리가 잘했다기보다 선발 쿠에바스가 너무 잘 던졌다(7이닝 무실점). 단기전은 '미친 선수'가 한 명 나와야 이길 수 있는데 그때는 쿠에바스가 그랬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만약 올해 타이브레이커에서 KT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와 달리 팽팽한 타격전 양상이 될 것 같다"며 "마지막엔 우리 팀이 또 웃어야죠"라고 미소를 지었다.
반면 우규민은 유니폼을 바꿔 입은 현재 상황을 두고 유쾌하면서도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우규민은 "그때는 (김)재윤이가 KT 우승을 확정 짓고 나는 삼성에서 2등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입장이 반대가 됐으면 좋겠다"며 "마침 재윤이가 올 시즌 원정 경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니, 타이브레이커를 하게 된다면 차라리 삼성의 홈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며 웃어 보였다.
삼성 김재윤. 사진=구단 제공
피 말리는 순위 경쟁 속에서도 두 베테랑 투수의 시선은 철저히 '현재'를 향해 있다.
우규민은 "순위 싸움을 과도하게 의식하다 보면 선수들의 플레이가 무거워질 수 있다. 우리 팀 컬러대로 매 경기 집중하며, 지고 있더라도 언제든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데 집중하려 한다"며 투수조 고참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였다.
10일 오후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KT 와 SSG경기. KT 투수 우규민이 7회 등판 역투하고 있다. 인천=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2025.07.10.
삼성 이적 첫해 30세이브 고지를 밟은 김재윤은 팀 내 젊은 불펜진의 단단한 멘털을 칭찬했다. 그는 "어린 중간 투수들이 겉으로 긴장하는 내색 없이 정신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나만 흔들림 없이 내 역할에 끝까지 충실하면 될 것 같다"고 굳은 의지를 다졌다.
운명의 장난처럼 서로의 유니폼을 맞바꿔 입은 두 베테랑 투수가 올가을 마운드 위에서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야구팬들의 시선이 뜨겁게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