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엠피엠지뮤직 제공 사랑에 빠진 설렘도, 이별 뒤 엉킨 마음도 소란의 노래에서는 한결 가볍게 흘러간다. 슬픔을 억지로 짜내지 않는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말에 산뜻한 리듬을 붙이고, 고영배의 선명한 목소리로 툭 건넨다. 소란은 16년 동안 이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려왔다.
2010년 미니앨범 ‘그때는 왜 몰랐을까’로 데뷔한 소란은 ‘리코타 치즈 샐러드’, ‘살빼지 마요’, ‘퍼펙트 데이’, ‘너를 공부해’ 등을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다. 촘촘한 연주와 귀에 붙는 멜로디, 일상을 재치 있게 비트는 노랫말이 소란 음악의 뼈대다. 라이브 무대에서도 강점을 보이며 ‘페스티벌의 황제’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소란의 사랑 노래를 들으면 이들의 장점은 더욱 또렷해진다. 2016년 10CM 권정열과 함께 부른 ‘너를 보네’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면서 연애와 고백을 상상하는 마음을 노래했다. 고영배와 권정열의 개성 있는 음색이 번갈아 나오고, 경쾌한 멜로디가 막 사랑에 빠진 들뜬 마음을 전한다. 거창한 표현 대신 상대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자신을 가끔 생각하는지 궁금해하는 순간을 포착한 점도 소란답다.
지난해 발표한 ‘사랑한 마음엔 죄가 없다’는 소란에게 흔치 않은 이별 노래다. 떠난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끼니를 걱정하고, 결국 사랑했던 자신까지 미워하는 마음을 따라간다. 하지만 노래는 끝내 “사랑했던 마음엔 아무 잘못도 없다”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미디엄 템포의 모던 록 사운드와 담백한 보컬 덕분에 이별은 처절하기보다 차분한 여운을 남긴다.
올해 2월 공개한 ‘사과 하나를 그려’도 무거운 마음을 다루는 소란의 방식을 잘 보여준다. 시작조차 겁나는 순간에서 출발해 일단 작은 것부터 해보자고 용기를 준다. 통통 튀는 리듬과 힘 있는 멜로디 위로 불안과 응원이 교차한다. 고영배가 노랫말을 쓴 이 곡은 1인 체제가 된 소란이 처음 선보인 신곡이었다. 사진=엠피엠지뮤직 제공 소란은 2025년 10월 이태욱과 서면호가 2026년 1월 단독 콘서트를 끝으로 팀 활동을 마친다고 알렸다. 앞서 드러머 편유일이 팀을 떠나면서 3인조로 활동해온 소란은 지난 1월 16일부터 18일까지 열린 단독 콘서트 ‘드리머’를 끝으로 고영배 1인 체제로 전환했다. 새로운 멤버를 채우는 대신 ‘소란’이라는 이름을 고영배가 이어가는 길을 택했다.
한 명이 된 뒤 소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변화는 함께하는 사람들의 폭이다. ‘사과 하나를 그려’에서는 작곡가 황현과 작업했고, 가수 10CM와 서로의 곡을 바꿔 부른 프로젝트에 이어 ‘딜리버리’, 그룹 아이들 미연이 참여한 ‘세리머니’까지 잇달아 선보였다. 오랫동안 고정된 멤버들의 합으로 곡을 완성해온 데서 나아가 이제는 곡마다 다른 연주자와 가수가 소란에 합류한다. 고영배의 목소리와 노랫말을 중심에 두되 만드는 방식은 한층 유연해졌다.
오는 18일 발매하는 새 미니앨범 ‘레이어’는 소란의 2026년을 집약한 음반이다. 1인 체제 전환 후 처음 내놓는 미니앨범으로, 올해 발표한 싱글들과 신곡을 한데 묶었다. 서로 다른 순간이 포개져 하나의 결과물이 된다는 앨범명처럼 지금의 소란을 이루는 여러 층을 보여준다.
고영배는 일간스포츠에 “1인 체제로 전환한 뒤 올 한 해 부지런히 싱글을 발표했다. 이번 미니앨범 ‘레이어’는 그중 세 곡과 신곡 두 곡을 묶은 앨범”이라며 “열심히 달려온 한 해를 잘 마무리한 것 같아 뿌듯하고, 팬분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계속 활동하겠다는 약속도 지킨 것 같아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멤버들과 함께할 때나 지금이나 소란이 밴드로서, 또 공연을 잘하는 뮤지션으로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같다. 그걸 계속 이어가기 위해 ‘소란’이라는 이름을 지키기로 했다”며 “기존 소란의 색을 이어가면서도 음악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이 이번 앨범에 담겼다고 봐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