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관중에 주눅 들던 그 선수는 어디로? '첫 가을 야구에서 9K' 시라카와는 성장했다
한 편의 성장 드라마 아닐까. 낯선 응원과 만원 관중 앞에서 주눅 들던 투수가 가장 큰 무대에서 호투를 펼쳤다. 시라카와 케이쇼(25·KIA 타이거즈)의 이야기다.
시라카와는 2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준플레이오프(준PO) 3차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4피안타 9탈삼진 무사사구 1실점으로 호투했다. KIA는 시라카와의 호투와 화끈한 득점력으로 3연승을 거두며 PO 진출을 확정했다.
경기 전만 해도 우려가 적지 않았다. 이범호 KIA 감독은 시라카와의 조기 교체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이 감독은 "시라카와가 1·2회 던지는 모습을 보고 좋지 않으면 빠른 교체를 단행할 수 있다.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고 마운드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시라카와는 올 시즌 정규시즌 18경기에서 4승 5패 평균자책점 4.75를 기록했다. 특히 LG를 상대로는 두 차례 등판해 1패 평균자책점 7.71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LG 타선을 상대로, 그것도 처음 나서는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제 몫을 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시라카와에게 이날은 단순한 한 경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2024시즌 SSG 랜더스의 부상 대체 선수로 KBO리그에 입성한 그는 두산 베어스에서도 단기 대체 외국인 선수로 뛰었다. 이후 2026시즌 KIA의 아시아쿼터 선수로 다시 한국 무대를 밟았지만, 가을야구 경험은 없었다.
일본 독립야구 출신으로 KBO리그에 발을 들인 시라카와에게 모든 것이 처음부터 익숙했던 건 아니다. 만원 관중이 들어찬 경기장과 상대 팬들의 견제 응원에 주눅 든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팀 동료 이형범이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자 눈물을 쏟았다. 트레이드로 동료와 갑작스럽게 이별하는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라카와가 이제는 포스트시즌 선발 마운드에 섰다. 준PO 3차전 선발 등판 소식을 들은 뒤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시라카와는 경기 후 "조금 더 책임감을 느꼈다.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더 공격적으로 승부하자는 마음으로 굳게 다짐하고 경기에 임했다"고 돌아봤다.
각오는 마운드 위에서 결과로 이어졌다. 시라카와는 LG 타선을 상대로 삼진 9개를 솎아내며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경기 전부터 긴장을 풀어주려는 동료들의 격려도 힘이 됐다. 그는 "경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선수단 모두가 절대 긴장하지 말라고 계속 이야기해 줬다"고 전했다.
팬들과 동료들의 시라카와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그는 "팬분들의 성원도 있었고 (한)준수의 좋은 볼 배합도 있었다"며 "타자들이 초반부터 점수를 많이 내줬기 때문에 긴장감이 조금 덜했던 것 같다. 물론 긴장은 했지만, 그중에서도 조금 덜했다"고 웃었다.
이날 호투는 기록으로도 남았다. 시라카와는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의 승리투수가 됐다. 그는 "이렇게 좋은 구장에서 내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게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KIA의 아시아쿼터 선수이자 일본 국적 선수로서 포스트시즌 첫 승리를 거뒀다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시라카와의 시선은 이미 다음 무대를 향했다. 그는 "그 부분도 기쁘지만 다음 경기가 있다. 다음에도 승리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첫 가을야구의 부담을 이겨낸 시라카와의 성장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수민 기자 bysumin@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