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2020시즌을 돌아보며 "포수인 (강)민호형이나 정현욱 투수 코치님께서 체인지업이 잘 안 되면 던질 수 있는 구종이 없다고 하시더라. 승부구나 풀카운트에서 삼진 잡아낼 수 있는 구종이 없어서 경기가 어렵게 흘러가는 것 같다"며 "체인지업 말고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구종을 장착하는 걸 우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태인은 체인지업 마스터다. 삼성 투수 중 누구보다 체인지업을 잘 던진다. 빠른 공과 체인지업의 투구 폼까지 비슷하다. 그래서 타자들이 느끼는 체인지업 위력이 더 크다.
문제는 체인지업을 받쳐줄 수 있는 '서드 피치'에 대한 아쉬움이다. 직구와 체인지업 조합만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건 한계가 뚜렷했다. 한 경기에서 같은 타자를 반복해 만나는 선발 투수 특성에도 맞지 않았다. 단조로운 투구 레퍼토리는 매년 반복되는 후반기 부진의 이유 중 하나였다.
누구보다 자신의 문제점을 잘 파악했다. 그리고 준비했다. 원태인은 2020시즌 의도적으로 투구 레퍼토리에 변화를 줬다. 이따금 구사하던 커브 비율을 2%p(8%→6%) 낮추는 대신 '서드 피치' 슬라이더에 공을 들였다. 2019시즌 18%였던 비율을 지난해 21%까지 끌어올렸다. 구종 피안타율을 1할 가까이 낮추면서 효과를 봤다. 후반기 부진이 반복됐지만, 개인 최다 6승을 거둘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슬라이더였다.
원태인은 2020시즌에 대해 "30~40점 정도 줄 수 있다. 전반기에 반짝한 거 말고는 난 장점이 없는 투수였다. 후반기는 1점도 줄 게 없는 것 같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수확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슬라이더 활용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시즌을 마쳤다.
체인지업에 슬라이더를 섞는 2021시즌 원태인은 위력적이다. 그는 13일 열린 대구 한화전에서 6이닝 2피안타 1사사구 10탈삼진 1실점 쾌투했다. KBO리그 데뷔 후 개인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종전 6개)을 경신하며 시즌 첫 승을 따냈다.
눈여겨볼 부문은 구종 분포였다. 총 투구 수 91개 중 슬라이더가 22개로 체인지업(25개)과 큰 차이가 없었다. 더 흥미로운 건 구종 선택. 초구 21개 중 무려 12개가 슬라이더(체인지업 1개)였다. 반면 위닝샷으로 던진 결정구 21개 중 12개가 체인지업(슬라이더 3개)이었다. 슬라이더로 초구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한 뒤 위닝샷으로 체인지업을 활용했다. 한화전 탈삼진 10개 중 8개가 체인지업(슬라이더 1개, 직구 1개)으로 뽑아낸 거였다.
경기 후 원태인은 "체인지업으로 볼카운트를 잡고 위닝샷까지 체인지업을 던지면 눈에 익어서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더라. 올해는 민호형이랑 얘기한 게 슬라이더로 볼카운트를 잡고 결정구까지 체인지업을 안 보여주는 거"라며 "이렇게 하면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울 거 같아서 투 스트라이크 전까지 체인지업을 많이 안 쓰고 있다. 올해 삼진이 늘어난 이유 같다"고 웃었다. 지난해 5.01개였던 9이닝당 삼진이 올 시즌 12.27개까지 늘어났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원태인은 "슬라이더로 볼카운트 잡는 게 어려웠다.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슬라이더를 연마했고 볼카운트를 잡을 수 있으니까 경기하는 게 확실히 편해졌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서드 피치' 슬라이더가 손에 익으면서 체인지업과 시너지 효과를 낸다. 슬라이더를 장착 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서드 피치'를 향한 그의 고집이 결실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