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대표팀 중심축도 이른바 '92라인(1992년생 선수들)'에서 '96라인'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성과를 이룬 지난 벤투호의 중심축은 단연 92라인이었다. 주장 손흥민(토트넘)을 필두로 황의조(FC서울) 김진수(전북 현대) 이재성(마인츠05) 등이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의 굳건한 신임 속에 대표팀을 이끌었다. 이들은 팀 전력의 핵심인 것은 물론 분위기를 주도하는 등 대표팀 구심점 역할까지 맡았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동안 한국 축구를 가장 대표하는 세대였다.
다만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의 부임과 맞물려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이제는 3년 뒤 북중미 월드컵을 준비하는 사이클에 접어들었는데, 손흥민 등 92라인 선수들은 다음 월드컵에선 전성기가 지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대표팀의 중심축이 될 새로운 세대를 찾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시선은 단연 96라인에 쏠린다. 김민재(나폴리)를 필두로 황희찬(울버햄프턴) 황인범(올림피아코스) 등 벤투호에서도 주축으로 자리 잡았던 이들을 비롯해 나상호(FC서울) 조유민(대전하나 시티즌) 등도 모두 1996년 태어난 선수들이다.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합작했던 이들은 대표팀에서도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면서 대표팀에 힘을 보태고 있다.
김민재와 황희찬, 황인범은 앞서 벤투호에서도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만큼 클린스만호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나상호도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데다, 앞서 클린스만 감독이 관전한 K리그 경기에서 득점포까지 가동하며 눈도장도 찍어 적잖은 기회를 받을 전망이다. 조유민 역시 김영권(울산 현대)을 대신할 장기적인 김민재 파트너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실력으로 이미 대표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거나 점점 비중이 높아질 자원들이 유독 96라인에 많다. 특히 김민재는 손흥민의 뒤를 이을 대표팀 차기 주장 후보로도 첫손에 꼽히고 있다. 벤투 체제에서 손흥민을 앞세운 92라인이 대표팀의 주축이 됐던 것처럼 김민재가 주축이 된 96라인이 이어받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배경이다.
특히 96라인은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될 뿐만 아니라 자극제이자 동기부여이기도 하다. 나상호도 “다른 1996년생 친구들이 모두 잘하고 있다. 그만큼 나도 많은 노력을 하려고 한다. 친구들의 활약에 책임감도 그만큼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96라인뿐만 아니라 대표팀 전반에 걸친 시너지 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24일 오후 8시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리는 콜롬비아전은 클린스만 감독의 데뷔전이자, 92라인에서 96라인으로 대표팀 중심축이 옮겨가는 시기를 가늠할 첫 경기가 될 전망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카타르 멤버를 주축으로 1기 명단을 꾸린 만큼 당분간 라인업은 92라인과 월드컵 멤버가 주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조규성(전북)을 필두로 손흥민이나 이재성, 정우영(알 사드) 등 기존 주축 선수들에 이강인(마요르카)이 깜짝 선발 기회를 받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정도다.
황희찬이 부상으로 소집되지 못한 가운데 96라인 중 우선 선발 자리를 꿰찰 선수는 김민재, 황인범이다. 김민재는 김영권, 황인범은 정우영과 각각 수비와 중원에서 호흡을 맞출 전망이다. 나상호와 조유민은 우선 선발보다 교체를 통한 출전 시간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부터 96라인에 속한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클린스만 축구에 녹아드느냐에 따라 대표팀 중심축의 이동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96라인이라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클린스만호는 자칫 손흥민 등 92라인에 대한 의존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을 새로운 세대가 일찌감치 등장한 데다 꾸준히 성장한 덕분에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준비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축구로서는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