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는 한 번도 부끄러운 형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저한테 용기를 주려고 얘기했다는 걸 아니까요."
우슈 국가대표 이용문(28·충남체육회)은 26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구아리체육관에서 열린 우슈 남자 남권·남곤에서 총점 19.472점으로 인도네시아 해리스 호라티우스(19.506점)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딴 데 이어 2회 연속 메달 수상에 성공했다.
한국 우슈 최초의 동반 입상 가능성도 보였다. 지난 2014년에도 함께 아시안게임에 나서 투로 도술·봉술 종목 은메달을 수상한 형 이용현(29·충남체육회)이 함께 출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용현은 2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구아리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슈 투로 도술·봉술 경기에서 8위에 그치며 수상에 실패했다.
어릴 때부터 동생과 함께 우슈를 해온 이용현은 경기가 끝난 후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당시 그는 "동생한테 미안하다"라며 "다음엔 동생에게 창피하지 않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용현은 "동생은 당연히 내가 메달을 딸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라며 "만약 기회가 된다면 다음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동생과 함께 형제 동반 메달을 재도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다음 대회까지 목표로 한 건 다소 의외였다. 지난 6월 진천선수촌에서 만났을 때 두 형제는 후배들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동생 이용문이 군 복무를 마쳐야 한다며 다음 대회 목표는 미뤄두겠다 했다. 이용현과 동갑내기 서희주가 이미 지난 대회부터 은퇴를 시사해 온 점까지 고려하면 30대가 되는 다음 나고야 아시안게임 때도 출전이 가능할지 궁금했다.
형의 다짐에 대해 동생에게 물었다. 본지와 통화 인터뷰에 응한 이용문은 "나가 (국가대표로 갈 만한) 힘이 된다면, 몸 상태가 괜찮다면 당연히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형의 각오에 답했다. 다만 그는 "아직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웃으면서 "곧 결혼도 해야 한다. 당장은 해야할 의무가 너무 많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확실하게 답은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동생에게 미안하다, 창피하다고 말한 형의 말에는 고개를 저었다. 이용문은 "형은 항상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형이 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한번도 형을 부끄럽다고 느낀 적이 없다. 형도 알 것"이라며 "국제대회에 나갈 때면 항상 형이 나보다 성적이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형이 나한테 용기를 주기 위해 더 그렇게 얘기했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목표했던 금메달은 아니지만,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수상 하루 뒤 통화한 이용문은 "지금은 어제(26일)보단 흥분했던 게 살짝 낮아졌다. 어제는 상당히 흥분했다. '여태까지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을 어떻게 버텼을까'라고 생각했다.나한테는 그 과정들이 너무 뿌듯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시간들은 금메달을 따려고 버텨왔던 거긴 하지만, 은메달도 굉장히 값진 것 같았다. 정말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용문은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돌아가면 곧 결혼식을 치른다. 그는 아내에게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동안 결혼 준비 얘기를 안 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더라. 그런 모습들이 참 고마웠다"며 "가장 좋았던 건 아내가 경기에 내가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올 거라며 기대해주고, 압박은 전혀 주지 않는다. 긴장하는 성격도 아니라 날 편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항상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용문은 우슈를 시작하게 했고, 계속하게 해준 부모님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두 형제는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우슈를 시작했고, 어머니의 지원 덕에 국가대표가 될 때까지 우슈 수련을 이을 수 있었다. 이용문은 "어머니, 아버지께서 이번 경기도 응원해주러 항저우까지 오셨다. 그런데 역시 떨려서 저희 경기를 보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기도만 하시더라.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울컥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부모님께서 응원해주신 덕에 이번 아시안게임도 정말 든든했다"고 감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