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6월이었다. 당시 22세였던 손흥민(32·토트넘)은 경기장 안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벨기에전에서 0-1로 패배한 직후다. 조별리그 1무 2패, 첫 월드컵에서 허무한 본선 탈락에 손흥민은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막내’ 손흥민에게 다가가 그를 위로한 건 홍명보(55)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이었다. 홍 감독은 손흥민을 조별리그 전 경기에 선발로 출전시켰고, 손흥민도 2차전 알제리전에서 월드컵 첫 골을 넣었다. 그러나 세계의 벽 앞에 둘 모두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다.
홍명보 감독은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재신임을 받았지만, 거센 비판 여론에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홍 감독과 손흥민의 동행도 그렇게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랬던 홍명보 감독과 손흥민이 사령탑과 선수로서 대표팀에서 재회했다. 홍 감독이 10년 만에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다.
10년 새 많은 게 달라졌다. 눈물을 쏟던 막내 손흥민은 대표팀의 주장이 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의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성장했다. 2018 러시아 대회, 2022 카타르 대회 등 두 번의 월드컵도 더 경험했다. 카타르 대회에선 처음으로 16강 무대도 누볐다.
손흥민은 홍명보호의 주장으로서 홍 감독과 소통하고,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홍명보 감독이 부임 직후 유럽 출장길에서 가장 만난 선수도 손흥민이었다. 홍 감독은 “손흥민을 계속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신뢰할 것이다. 다만 너무 많은 부담을 갖게 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10년 만에 재회한 홍명보 감독과 손흥민의 시선은 2026 북중미 월드컵으로 향한다. 홍 감독은 10년 전 실패의 한을 풀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손흥민 역시 나이를 고려하면 북중미 대회가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여정을 10년 전 월드컵 당시 감독과 대표팀 막내가, 이제는 감독과 주장으로서 다시 이어간다.
여정의 시작은 5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팔레스타인과의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차전이다. FIFA 랭킹은 한국이 23위, 팔레스타인은 96위로 격차가 크다. 홍명보호가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출항하는 대표팀인 만큼, 결과는 물론이고 내용까지 확실하게 잡아야 할 경기다. 홍 감독은 "많은 득점이 나오도록 준비했고, 경기에서도 그걸 바라겠지만 일단 팔레스타인전의 목표는 승리다"라고 말했다.
홍명보 감독이 쓴맛을 봤던 10년 전의 실패는, 이번 감독 부임 과정과 관련된 비판과 맞물려 월드컵 준비 과정 내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결국 홍 감독은 전술과 리더십으로 지도력을 거듭 증명해야 하고, 손흥민 역시 그 중심에 서야 한다. 10년 전의 한을 함께 풀 수도, 아니면 두 번째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홍명보 감독은 4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10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된 손흥민에 대해 "지금 모습이 그때 우리가 바랐던 모습 그대로 이뤄진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손흥민은 "10년이란 시간이 말도 안되게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감독님은 '선장'이기 때문에 부드러워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을 잘 존중하고 따르고, 규율에 잘 맞춰 훈련하면 운동장 밖에서 생활하는데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