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 키움 히어로즈 코치가 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선수 은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의 훈련은 오전 6시에 시작합니다."
치열했던 21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쳤다. 오랜 기간 쉼 없이 달려온 자신에게 휴식을 주거나 비교적 수월한 방송계 진출을 고려할 법도 했지만, 박병호(40)의 선택은 '현장'이었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오랜 꿈을 안고, 지름길 대신 잔류군(3군)부터 시작하는 밑바닥 고행길을 자처했다. 이른 새벽부터 훈련에 나서는 선수들과 호흡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KBO리그 역대 최다인 6차례 홈런왕(2012~2015, 2019, 2022년)에 오른 '최고의 홈런타자' 박병호는 유니폼을 벗자마자 지도자의 길에 뛰어들었다. 키움 히어로즈의 잔류군 코치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한 그는 매일 오전 6시에 시작되는 훈련 일정에 맞춰 일찌감치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화려했던 1군 스타 플레이어의 삶과는 거리가 먼 일과지만, 박 코치는 이 시간을 "즐겁고 재밌다"고 표현한다.
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자신의 은퇴식을 앞두고 만난 박 코치는 현 지도자 생활에 대해 "처음 코치를 시작할 때, 선수들에게 많은 칭찬과 응원을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며 "선수들이 잔류군을 거쳐 2군에 올라가 잘하길 바라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내게 털어놓거나 스스로 훈련 영상을 찍어 보여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1군 무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유망주들과 스킨십을 늘리면서, 미국 메이저리그(MLB) 시절 경험한 지도자와 선수 간의 수평적인 리더십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박병호 잔류군 타격코치. IS 포토
그가 어린 선수들에게 각별히 신경 쓰는 이유는 본인 역시 기나긴 고난의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2005년 큰 기대 속에 LG 트윈스에 입단한 그는 상무 시절을 포함해 6년 넘게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펼쳤다. LG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리던 2011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로 트레이드된 이후에야 자신의 진가와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박 코치는 후배들에게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뭐라도 해보고 후회는 남기지 말자'고 자주 조언한다고.
지도자가 되겠다는 오랜 꿈을, 잔류군 코치라는 고행길로 시작했다. 그는 "밑에서 힘들게 야구하며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과 지도자로서 함께 성장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은퇴 후 해설위원 등 방송 활동을 거치는 최근의 트렌드와 달리 '현장 직행'을 고집했다. 박 코치는 "방송 일을 하더라도 결국엔 지도자가 하고 싶어 현장에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곧바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했다"며 "은퇴 후 바로 코치를 하면서 선수들과 빠르게 다시 호흡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도움이 필요한 선수에게 힘이 돼주고, 그들의 성장을 기대하며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감정이 즐겁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26일 삼성 선수들에게 축하를 받는 박병호. 삼성 제공
절친한 동료인 삼성 라이온즈 최형우, 강민호와의 일화도 공개했다. 박 코치는 "예전에 '은퇴 후 방송 대신 곧바로 지도자를 하자'고 약속했다. 내가 먼저 코치로 그 약속을 지켰으니, 두 선수도 언제 은퇴할지는 모르겠지만 꼭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 다시 가장 낮은 곳에서 후배들과 땀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박병호. 초보 지도자로서 내딛는 그의 두 번째 야구 인생이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