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에 “요리 좀 배우러 왔다”며 들어온 신입한테서 묘한 향기가 난다. 최소 경력 20년 차 베테랑에게서나 볼 수 있는 센스와 칼 실력, 게다가 성실함까지 갖췄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이 ‘잠입수사’ 같은 이야기는 드라마가 아니다. 지난달 21일 첫 방송을 시작한 tvN 예능 프로그램 ‘언더커버 셰프’의 다큐보다 더 다큐 같은 이야기다
‘언더커버 셰프’에는 샘 킴, 정지선, 권성준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스타 셰프들이 출연한다. 이들은 외국 레스토랑의 막내로 들어가 경력과 신분을 숨긴 채 5일 안에 메인 셰프 자리까지 진출해야 한다. 더불어 현지인들에게 자신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선보여야 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사실 잠입수사를 뜻하는 ‘언더커버’는 대중매체에서 이미 검증된 단골 소재다. 흔히 범죄 수사극이나 느와르 드라마의 핵심 장치로 쓰이는데, 정체가 탄로 날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서사를 극대화하고 몰입도를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언더커버 셰프’는 이 설정을 예능 프로그램에 영리하게 접목했다. 샘 킴은 이탈리아 파르마, 정지선은 중국 청두, 권성준은 이탈리아 나폴리의 식당에 각각 위장 취업했다. 이들은 가명을 쓰는 것은 물론 전직 농부나 복싱선수, 야구선수 등으로 직업까지 속였다. 제작진 역시 식당 측에 “은퇴한 유명인들이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다큐멘터리”라고 전하며 프로그램의 실제 기획 의도를 감췄다.
철저한 위장 뒤에는 제작진의 남다른 노력도 있었다. 제작진은 이력서 사진 AI 제작과 관련해 기획 단계부터 저작권, 방송심의 및 관련 규정을 담당하는 내부 부서와 사전 협의를 충분히 거쳤다고 한다. 자칫 기술의 오남용이나 저작권 침해 등의 법적·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프로그램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강궁 CP는 “최근 선보이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들이 셰프의 화려한 세계를 보여줬다면, 우리는 그 시작이 어땠는지 궁금했다”며 “그걸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다시 막내로 돌아가는 것이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공동 연출을 맡은 홍진주 CP 역시 일간스포츠에 “특히 미션 완료 후 정체를 어떻게 공개할 것인가에 대해서 셰프님들과 많은 논의를 거쳤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사진=tvN 제공
이같은 준비 덕분에 방송에서는 흥미로운 그림들이 연출됐다. 넷플릭스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우승자인 권성준은 업무 시작부터 디저트 담당자에게 잔소리 폭격을 당했고, 25년 경력의 베테랑 샘 킴은 밀려드는 주문 정보를 처리하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식계 전설’로 통하는 정지선 역시 미숙한 조리사인 척 연기하며 주방의 눈치를 살폈다.
짜릿한 장면이 나올수록 화제성도 고공행진 중이다. 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 1회 2.3%로 시작한 시청률은 2회 3.2%, 3회 3.9%까지 치솟으며 지상파를 제외한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지난달 29일 공개된 샘 킴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조회수 55만 회를 돌파하는 등 온라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현장 분위기도 리얼함 그 자체였다. 홍진주 CP는 “세 분 모두 5일 동안 촬영이라는 사실을 잊고 위장 막내 신분에 몰입한 순간을 지켜봤다”며 “식당 사람들과의 케미도, 순간순간 발휘되는 베테랑 셰프들의 내공도 억지 없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러나 누리꾼들은 ‘언더커버 셰프’의 매력으로 단지 ‘재미’만을 꼽지 않는다. 이미 정점에 오른 셰프들이 타인의 주방에서 겸손하게 일을 배우는 자세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울림을 안겼다는 평이다.
휴식 시간에도 메뉴판을 보며 복습하는 정지선, 자신이 손질한 재료가 폐기 처분되자 곧바로 사과하고 열등생 모드로 돌아간 샘 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집에 오자마자 고꾸라져 잠드는 권성준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는 아무리 뛰어난 고능력자라도 낯선 환경에서는 실수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위로를 건넨다. 실제로 유튜브 등지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태도는 역시 다르다”, “초심을 돌아하게 만든다” 같은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tvN 제공
물론 모든 셰프가 진지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권성준 셰프의 경우 ‘흑백요리사’ 시절부터 이어진 특유의 당돌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 때문에 일각에서는 “요즘 MZ 막내 같다”는 호불호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오히려 샘 킴이나 정지선 셰프의 묵묵한 태도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언더커버 셰프’만의 또 다른 화제성을 만들어내는 차별화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다.
‘언더커버 셰프’는 ‘텐트 밖은 유럽’, ‘바퀴 달린 집’, ‘아빠! 어디가?’ 등을 연출하며 리얼리티와 해외 로케이션 예능에서 독보적인 강세를 보여온 강궁 CP의 신작이다. 사회적으로 이미 명예와 부를 이룬 스타들의 흔한 ‘성공담’이나 ‘자랑’에 그치지 않고, 날것 그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통해 예능의 본질인 웃음과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을 모두 붙잡았다. 이 신선한 프로그램의 탄생이 유독 반가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