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가 10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홀에서 열린 '2026 K게임 포럼'에서 '이재명 출범 1년, K게임호 순항 중인가?'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이재명 정부의 게임 정책 평점은 결코 후하게 줄 수 없다. 아무리 잘 줘봐야 C+ 정도다."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열린 '2026 K게임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시동이 꺼져가는 K게임 진흥 시계추를 향해 날카로운 일침을 날렸다. 적어도 5배의 예산 증액과 파격적인 세액 공제 혜택을 뒷받침해야 침체기에 접어든 국내 유망 게임사들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선 공약 이행 낙제점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10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홀에서 열린 '2026 K게임 포럼'에서 현 정부가 내걸었던 게임 분야 대선 공약의 이행 상황을 정조준했다.
김 교수는 "배가 잘 가면 순항하고 있다고 하고, 안 그러면 암초를 만났다고 한다"며 "K게임호는 몇 개의 암초를 만난 정체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게임인들이 느끼는 정책 효능감은 냉정하게 C+ 수준"이라며 "질병코드 등재 저지나 e스포츠 대선 공약 등 핵심 과제들이 의료계의 강한 반발과 주무 부처의 소극적 대응으로 인해 현장의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K게임이 위기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투자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산업 정책의 대전환(PX)'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정부 투자를 지금보다 5배에서 10배 이상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영상 콘텐츠 등 다른 문화 산업에 비해 게임 산업만 오랜 기간 세제 혜택에서 배제돼 역차별을 당해왔다는 점을 강하게 질타했다. 김 교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으로 '게임 제작 세액 공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조세 감면이 가져올 현장의 변화를 펄어비스의 신작 '붉은사막'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김 교수는 "대형 신작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2000억원을 벌었다고 가정할 때, 법인세 세액 공제 혜택으로 30%만 감면받아도 약 600억원에 달하는 재원을 확보하게 된다"며 "이 막대한 자금을 온전하게 사람을 뽑거나 콘텐츠에 집중해서 투자를 늘리고, 신작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R&D)에 재투입한다면 개발사들의 비용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한국 게임 산업은 국가 수출의 핵심 보루임에도 정부 정책에서 늘 소외돼 왔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그동안 K게임은 다른 문화 콘텐츠 산업에 비해 철저히 '서자 취급'을 당해왔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진흥책을 실행해 지금의 C+ 평점을 적어도 B 등급 정도로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준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신기술본부장이 유망 게임사 지원 사업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과거 틀 벗고 데이터 기반 진흥으로
매서운 쓴소리가 쏟아졌지만, 그간 정부의 노력이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제 막 시장에 뛰어든 개발사들이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의 지원 사업을 등에 업고 많게는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차세대 주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율 선택형 해외 직접 진출 서비스인 '게임더하기' 사업의 경우, 지난 2022년 지원 대상에 선정된 한 기업이 콘진원으로부터 2억5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글로벌 시장에서 무려 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러한 결실을 확장하기 위해 콘진원은 지원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김성준 콘진원 게임신기술본부장은 향후 지원 사업 방향에 대해 과거의 단순 자금 교부 방식에서 벗어나 철저한 데이터 기반과 사후 관리 중심으로 나아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지원 업체들의 데이터에 근거해서 사업을 만들고 수혜 기업들의 성과를 지속해서 추적 관리(팔로업)하는 동시에, 게임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킹으로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청사진이다.
현장과의 긴밀한 호흡을 바탕으로 한 진흥 기관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약속도 이어졌다. 김성준 본부장은 "게임 지원 사업은 시장 트렌드에 맞춰 변화를 줄 것"이라며 "기존에 지원했던 업체들의 데이터에 근거해서 사업을 만들고, 지원 업체들의 성과를 팔로업하겠다"고 말했다.
또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가 한국에 와서 엔씨와 크래프톤을 만난 이유는 물리적인 환경을 학습하는 '피지컬 AI(인공지능)'가 게임과 굉장히 유사하기 때문"이라며 "아직은 지원 사업에 담지는 못했지만, 이와 관련한 업계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진흥 기관이 이처럼 체질 개선과 지원책 고도화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최근 국내 게임 산업이 직면한 위기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이다. 콘진원 따르면 국내 게임 산업의 주 동력원이었던 모바일 게임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정체 구간에 진입했고, 고금리와 경기 둔화로 인해 초기 제작 자금 유치가 가로막혔다. 여기에 외산 게임의 무차별적인 공세까지 이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 체감도가 크게 악화한 상태다.
다만 침체기 속에서도 K게임이 가진 글로벌 시장에서의 본질적인 체급과 경쟁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라는 평가다. 전 세계 게임 시장 규모는 약 334조원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삼성전자의 1년 매출액과 맞먹을 정도로 거대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2025년 콘텐츠 수출액은 약 149억 달러(약 22조원)를 기록했는데, 이 중 게임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0%에 달했다.
김정태(왼쪽) 교수의 진행으로 임진묵(가운데) 스트리머, 임일빈 SOOP e스포츠콘텐츠사업본부장이 '스타크래프트 K팬덤은 어떻게 살아남았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K게임 새로운 무기 '쌍방향 팬덤'
이번 포럼의 마지막 세션에서는 K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할 수 있는 핵심 동력으로 '플랫폼'과 '팬덤'을 제시했다. 30년 가까이 된 IP(지식재산권)인 '스타크래프트'를 활용해 선수부터 스트리머까지 모두 경험하고 있는 임진묵은 '스타크래프트'가 오랜 시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로 팬덤의 깊이를 꼽았다.
임진묵은 "응원해 주는 팬들이 없다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성립할 수 없다"며 "여전히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있어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0년 된 게임인 만큼 시청자들의 내공도 남다르다. 임진묵은 "'리그 오브 레전드'는 신규 캐릭터가 출시되고 지속적인 패치가 이뤄지지만, '스타크래프트'는 별도의 밸런스 패치가 없다"며 "대신 심리전과 피지컬, 컨트롤을 보는 시청자들의 눈이 함께 높아졌고, 이러한 높은 수준의 조화가 이뤄졌기에 종목이 장수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역 프로게이머 시절과 현재 스트리머 입장 간 팬들을 마주하는 환경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도 언급했다. 임진묵은 "현역 시절에는 숙소나 경기장에서만 제한적으로 팬들을 접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실시간 스트리밍을 진행하며 온라인 대회를 치르고, ASL 같은 오프라인 대회에도 참가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ASL 오프라인 무대에 설 때는 개인 방송을 켜지 않고 실시간 채팅도 볼 수 없어 오히려 긴장이 덜하다"며 "반면 온라인 대회에 참가할 때는 팬들의 반응이 실시간 채팅으로 즉각 올라오기 때문에 훨씬 더 큰 긴장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김은구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김성준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신기술본부장, 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임일빈 SOOP e스포츠콘텐츠사업본부장, 임진묵 스트리머(앞줄 왼쪽 4번째부터)가 포럼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이처럼 K게임 팬덤은 단순히 하나의 IP를 넘어 플랫폼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 국내 대표 e스포츠 플랫폼인 SOOP(숲)도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임일빈 SOOP e스포츠콘텐츠사업본부장은 "e스포츠를 논할 때 스트리머와 팬들을 빼놓을 수 없다"며 "과거에는 제작사가 중계진을 두고 공식 방송을 진행하는 형태가 주를 이뤘지만, 요즘은 스트리머들이 공식 중계 자체를 함께 방송하는 '코스트리밍(같이 보기)'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임 본부장은 "동일한 종목의 콘텐츠일지라도 어떤 스트리머의 팬덤이냐에 따라 방송이 완전히 새로운 2차 창작물로 재탄생하며,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이용자 참여도 엄청나다"고 진단했다.
SOOP은 이러한 팬덤 중심의 생태계에 AI 기술을 접목해 '체감형 플랫폼'으로 진화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임 본부장은 "앞으로의 e스포츠는 단순히 시청하는 형태를 넘어 직접 체감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며 그 중심에는 AI가 있다"며 "모바일 시청 환경에서 진동 기능, 화면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연동, 텍스트 기반 인터랙션 등을 활용해 유저들에게 즉각적인 액션을 줄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르면 올해 말 체감형 e스포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임 본부장은 e스포츠 스트리머나 중계자를 꿈꾸는 학생들을 향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본인만의 번뜩이는 기획력만 있다면 누구나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라며 "SOOP은 소속 스트리머 간의 '크루 문화'가 굉장히 강한 만큼, 신입 스트리머들과 프로 선수 출신들을 매끄럽게 엮어줄 수 있는 연계 시스템도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 방송을 켜고 먼저 시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만의 확실한 콘셉트를 잡고 도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