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패션 하우스 프라다(Prada)를 이끄는 미우치아 프라다는 그룹 산하의 또 다른 명품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Miu Miu)의 브랜드 철학을 이 같이 설명했다. 자신의 어릴 적 애칭을 딴 미우미우를 통해, 절제되고 세련된 브랜드인 프라다와는 또 다른 결의 시도들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즉, 미우미우는 그녀 안에 자리한 창의성과 반항성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놀이터였다.
현대카드가 카드사 최초로 상품과 서비스, 디자인, 서체 등 전 영역에서 다른 정체성을 담은 독자브랜드 ‘알파벳카드’를 선보인 것은 프라다의 미우미우 론칭과 비견된다. 금융업계에서는 상품이나 브랜드를 론칭할 때 일반적으로 상위 브랜드 이름을 얹어 신뢰를 공유하는 ‘엔도스드 브랜드’(Endorsed Brand) 전략을 사용한다. 그러나 ‘알파벳카드’는 고유의 정체성이 강하고 정제된 ‘현대카드’와 달리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담아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정체성을 보여준다.
미우미우의 실험은 프라다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프라다 본연의 정체성을 더 뚜렷하게 했다. 나아가 프라다 그룹 전체의 스펙트럼을 개성과 트렌드를 중시하는 2030세대까지 확장시켰다.
‘알파벳카드’는 어떤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 결과의 단초가 될 알파벳카드의 ‘달랐던 상상’을 5회에 걸친 브랜드 스토리로 풀어본다. <편집자 주>
‘브랜드의 목소리는 반드시 소리로만 전달되지 않는다. 때로는 말의 내용보다 글자의 모양이 먼저 브랜드를 설명한다.’
알파벳카드가 새로운 플레이트와 함께 전용 글자를 선보인 이유다. 일찍부터 서체를 브랜드의 주요 자산으로 다뤄 온 현대카드인 만큼 카드의 얼굴이 되는 알파벳 한 글자 역시 다른 곳에서 빌려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현대카드는 20여년 전 기업 전용 서체 ‘유앤아이’(Youandi)를 만들었다. 브랜드의 메시지를 일반적인 글꼴이 아니라 직접 설계한 서체로 전달하겠다는 시도였다. 기업이 전용 서체를 만든다는 것은 보기 좋은 글꼴 하나를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광고와 상품, 인쇄물과 디지털 화면 등 고객이 브랜드를 접하는 모든 공간에서 같은 어조와 분위기를 유지하는 일이다.
현대카드는 “유앤아이가 국내 최초의 기업 전용 서체”라고 설명했다. 유앤아이가 현대카드라는 기업의 목소리였다면, 알파벳카드 전용 서체는 하나의 카드 브랜드를 위한 새로운 말투에 가깝다.
[사진 현대카드 제공] 현대카드에 따르면 알파벳카드 전용 서체의 설계도는 카드 자체에 있었다. 사람들이 손에 쥐는 카드의 가로 1, 세로 1.58 비율을 글자의 기본 구조로 가져왔다. 플레이트에 놓인 알파벳은 카드 위에 우연히 얹힌 장식이 아니라 카드의 비례를 다시 타이포그래피로 번역한 결과다.
글자의 모서리는 사선으로 잘라냈다. 둥근 카드 외곽과 각진 글자의 끝이 대비를 이루며 시각적인 긴장감을 만든다. 부드러운 플레이트 안에 단단한 구조를 가진 글자를 세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인상을 완성했다. 카드를 위해 글자를 고른 것이 아니라 카드의 형태에서 글자를 꺼낸 셈이다.
알파벳카드 전용 서체에는 가변 폰트 기술이 적용됐다. 하나의 서체 안에서 획의 굵기를 가늘게 또는 굵게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방식이다. 굵기별 글꼴을 각각 따로 제작하는 대신 하나의 축 안에서 다양한 인상을 만들 수 있다. 같은 알파벳도 플레이트에서는 강하게, 디지털 화면이나 작은 인쇄물에서는 보다 가볍게 표현할 수 있다.
현대카드와 라바는 더치 디자인의 미니멀한 구조를 가변 폰트 기술과 결합했다. 브랜드 전체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상품별 개성과 매체별 활용성도 확보하려는 설계다. 한 글자가 고정된 로고에 머무르지 않고 상황에 맞춰 표정을 바꾸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전용 서체는 카드 플레이트만이 아닌 패키지와 인쇄물, 광고 영상, 디지털 서비스와 간판 등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며 “매체의 크기와 비율이 달라져도 같은 브랜드로 인식되도록 글자의 형태와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손에 쥔 카드에서 본 알파벳이 모바일 화면과 광고물로 이동해도 같은 목소리로 읽힌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유롭게 굵기를 조절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은 플레이트와 패키지, 디지털 서비스 사이의 경계를 낮춘다. 카드 한 장에서 출발한 디자인 문법이 브랜드가 등장하는 모든 공간으로 뻗어 나가는 구조”라며 “형태와 비례, 기술을 하나의 체계로 엮은 전용 서체는 알파벳카드를 설명하는 동시에 현대카드가 디자인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알파벳카드는 혜택을 설명하기 전에 글자의 모양으로 먼저 말을 건다. 한 장의 카드가 브랜드의 얼굴이라면, 그 얼굴이 어떤 목소리로 세상과 대화할지는 서체가 결정한다.
2003년 카드의 이름으로 출발한 알파벳은 이제 전용 서체와 색, 플레이트를 관통하는 브랜드 언어가 됐다. 현대카드는 그렇게 한 글자를 상품명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으로 확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