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엠넷플러스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래퍼 여친상’, ‘래퍼 여친 되는 법’, ‘래퍼 여친 패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심심찮게 보이던 유행어가 연애 예능의 간판으로 내걸렸다. 제목부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엠넷플러스 오리지널 예능 ‘래퍼 여친 구함 : 키스 오어 디스’(이하 ‘래퍼 여친 구함’)가 뜻밖의 몰입감을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래퍼 여친 구함’은 엠넷 힙합 서바이벌 예능 ‘쇼미더머니’ 출신 래퍼들이 한 명의 여성 출연자 ‘뮤즈’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6부작 연애 리얼리티다. 로얄44, 정준혁, 노윤하, 더블다운, 바이스벌사, 포기앳더바텀, 영슈러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3000여 명의 지원자 중 선발된 3명의 뮤즈가 차례로 등장하며, 각 뮤즈와 단 하룻밤 동안 첫 만남부터 최종 선택까지 직진하는 과감한 포맷을 취했다.
이 낯선 조합은 예상 밖의 재미를 만든다. 무대 위에서 거침없던 래퍼들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을 더듬고, 서로의 눈치를 보며 엉뚱하게 마음을 표현한다. 로얄44/사진=엠넷플러스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로얄44/사진=엠넷플러스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태도 역시 래퍼답다. 일반적인 연애 예능 출연자라면 삼켰을 속내도 거침없이 꺼낸다. 로얄44는 뮤즈의 선택을 기다리다 “제가 왜 초이스를 받아야 되죠? 제가 고르는 게 아니라?”고 되물었다. 호감을 얻기 위해 경쟁하면서도 선택받는 위치는 못마땅해하는 자존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다.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갑작스럽게 볼에 입을 맞추는가 하면, 익숙하지 않은 요리에도 나서며 잘 보이려 애쓴다. 자신만만하게 나섰다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당황한 기색도 숨기지 못한다. 자신감과 어설픔이 뒤섞인 행동은 시청자에게 이른바 ‘공수치(공감성 수치)’를 안긴다.
구성 면에서는 ‘쇼미더머니’식 서바이벌 구조를 연애 예능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뮤즈가 데이트 도중 래퍼를 교체하거나 방출하는 ‘콜아웃 데이트’로 긴장감을 더했고, 최종 선택을 받은 래퍼에게는 뮤즈와 인연을 이어갈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받을지 결정하게 했다. 사랑과 물질적 보상을 저울질하게 만들며 마지막 순간까지 출연자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호불호는 극명하다. “민망해서 차마 못 보겠다”는 혹평이 잇따르는가 하면, 역설적이게도 그 낯 뜨거운 맛 때문에 방송을 찾아본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우선 프로그램의 설정 자체가 재미있다. ‘쇼미더머니’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래퍼들이 여기서는 선택받기 위해 구애하는 입장이 되는데, 그 간극에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연애 예능은 기본적으로 시청자의 대리 연애 욕구를 채워준다. 현실에서는 부끄러워서 쉽게 하지 못할 행동을 출연자들이 대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감성 수치를 느끼지만, 정작 자신이 겪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웃으며 볼 수 있다”며 “그 민망함 자체가 계속 보게 만드는 시청 포인트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엠넷플러스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물론 재미와 별개로 짚어볼 한계도 있다. 한 명의 여성 출연자에게 선택 권한을 집중시키고 여러 남성이 경쟁하도록 한 구성을 두고 일각에서는 ‘여왕벌 콘텐츠’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성 출연자가 주체적 서사 없이 단지 경쟁을 유발하는 장치로 소비되거나, 자극적인 플러팅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위험은 제작진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그럼에도 ‘래퍼 여친 구함’은 처음의 황당했던 기획을 나름의 기발한 재미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멋을 지키려는 자존심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충돌할 때 생기는 어설픔마저 프로그램 특유의 색깔로 안아 들인 덕분이다. “지독하게 민망하다”면서도 결국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예측 불가능성, 그것이 시청자를 매료시킨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