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인데, 마운드 위에서는 좀처럼 속을 읽을 수가 없다. 공이 원하는 곳에 들어가지 않아도, 주자를 내보내도 얼굴이 그대로다. 젊은 투수라면 흔들릴 법한 순간에도 장찬희(19)의 표정은 덤덤하다.
지난 8일 대구 KIA 타이거즈전이 특히 그랬다. 삼성이 6-2로 앞선 8회 등판한 그는 첫 타자 해럴드 카스트로를 잡은 뒤 나성범에게 2루타, 김선빈에게 내야 안타를 허용하며 1사 1·3루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하주석을 2루 땅볼로 유도한 뒤 김태군을 1루수 파울 플라이로 처리하며 실점 없이 자신의 이닝을 끝냈다.
장찬희가 돌아본 당시 상황은 담담했다.
삼성 장찬희. 삼성 제공
“점수 차가 4점 나는 상황에 올라갔으니까 빨리빨리 존 안에서 승부해서 타자를 잡아 나가려고 했어요.”
아무리 4점 차라지만, 올 시즌 삼성 마운드를 상대로 강했던 KIA 타자를 상대한 건 신인 투수에겐 큰 부담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상대한 선수들은 KIA의 중심타선이었고, 두 명이나 주자를 내보냈다.
하지만 장찬희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는 “KIA가 리그 전체로 봐도 타선이 좋은 편인 것 같다”면서도 “오히려 나는 우타자보다 좌타자에게 더 강한 것 같다. KIA라고 해서 엄청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이 장찬희를 높이 평가한 것도 바로 이런 부분이다. 그는 “젊은 선수답게 마운드에서 자신감 있는 모습과 공격적인 투구가 돋보인다”라면서 “젊은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흔들리면 표정에서 티가 나는데 장찬희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정작 장찬희는 자신의 무덤덤함을 특별한 장점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중요한 상황에 등판하는 것 역시 아직은 ‘부담’보다 ‘배움’에 가깝다고 했다.
삼성 장찬희. 삼성 제공
“타이트한 상황에 나갔을 때와 점수 차가 있을 때 나갈 때는 조금 다르게 투구하려고 해요. 그것만 머릿속에 넣어두지, 부담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프로 첫해부터 장찬희는 꽤 많은 것을 경험했다. 롱릴리프로 긴 이닝을 소화했고, 선발 마운드에도 올랐다. 다시 불펜으로 돌아와서는 승부처와 비교적 여유 있는 상황을 오가며 공을 던졌다. 지금은 필승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신인에게 보직 변화는 쉽지 않은 일이다. 준비 방식부터 다르다. 선발은 자신의 등판일을 알고 몸을 만들 수 있지만, 불펜 투수는 언제 호출을 받을지 모른다. 장찬희는 오히려 이 모든 경험을 성장의 자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시즌 초부터 롱릴리프도 해보고 선발도 해보고, 불펜에서 타이트한 상황에도 나가봤다”며 “이런 것들을 다 경험하면서 ‘이런 보직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구나’, ‘몸 관리는 어떻게 하고 경기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구나’를 많이 배우고 있는 시즌인 것 같다”고 돌아봤다.
삼성 장찬희-원태인. IS포토지난달 29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배찬승-원태인의 불펜 피칭을 지켜보고 있는 장찬희-이승민(왼쪽). 잠실=윤승재 기자
조력자들도 많다. 선발 땐 원태인이 장찬희의 적응을 도왔고, 최근엔 같은 불펜 자원인 이승민의 준비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다.
장찬희는 “승민이 형이 어떻게 몸 관리를 하는지 보고 따라 배우려고 한다”며 “불펜 투수는 매일 언제 공을 던질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그런 상황에 맞게 운동하는 방법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만 감독은 장찬희가 다양한 구종을 갖춘 만큼, 장기적으로는 선발 투수로 성장해야 할 자원이라고 말했다. 최일언 코치 역시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선발 투수가 될 자질을 모두 갖췄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박 감독은 “구종이 다양하기 때문에 중간보다 선발이 더 잘 어울린다. 체력을 강화하고 경험을 쌓으면 좋은 선발 투수가 될 수 있다"라고 전했다.
과거 원태인 역시 데뷔 첫해인 2019년 불펜에서 경험을 쌓은 뒤 선발로 자리를 잡았다. 박 감독은 장찬희와 배찬승 역시 장기적으로 삼성 선발진을 책임져야 할 투수들로 바라보고 있다.
삼성 장찬희. 삼성 제공
장찬희에게도 선발은 분명한 목표다. 다만 서두르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저도 꼭 좋은 선발 투수로 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아직은 몸이라든지 기술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아직은 선발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안다. 선발도 해보고, 긴 이닝도 던져보고, 불펜의 긴박한 순간도 경험했다. 결과 하나에 표정부터 변하기보다 그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다.
마운드 위에서 좀처럼 얼굴을 바꾸지 않는 신인. 그 무덤덤한 표정 뒤에서 장찬희의 프로 첫 시즌은 빠르게 쌓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