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방송 캡처 “그깟 독립이 뭐라고, 다들 정말 미친 것 같아요.”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에서 김유정이 조선총독부 밀정으로 잠입한 뒤, 종로경찰서 취조실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들을 보며 내뱉은 말이다. 김유정이 연기하는 이가경은 거대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대의명분보다 당장의 생존이 절실한 인물이다.
‘100일의 거짓말’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경성의 소매치기였던 이가경이 조선총독부 밀정이 되면서 벌어지는 첩보 로맨스다. 가경은 한마디로 억척스럽다.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본래 ‘억척스럽다’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끈덕지게 일을 해 나가는 태도를 뜻한다. 김유정은 바로 이 ‘억척스러움’을 이가경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삼았다.
경성 최고의 소매치기가 된 것도 함께 사는 여동생과 자신의 밥벌이를 위해서였고, 밤낮으로 영어를 악착같이 파고든 것도 조선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일본인 남자를 따라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때조차 가경은 스스로를 연민할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에게 억척스러움은 타고난 성격이자, 가혹한 시대에 맞서 자신을 지켜온 생존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가경의 행동은 때때로 이기적이고 얄밉다. 부부로 위장한 구국단 일원 유소란(김현주)과 유필립(이무생)의 사토 신이치(진선규) 암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도 따지고 보면 가경의 책임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그를 마냥 미워할 수 없는 건 가난과 결핍으로 점철된 지난 삶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김유정은 자칫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는 인물에게 묘한 애틋함을 불어넣으며 시청자의 마음을 붙든다. 사진=tvN 제공 상황에 따라 능청스럽게 바뀌는 표정과 목소리, 극에 생동감을 더하는 부산 사투리도 빼놓을 수 없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돈타령을 하며 악다구니를 쓰다가도, 자신 때문에 유산했다고 여기는 소란에게 미역과 소고기를 챙겨준다. 겉으로는 제 잇속만 챙기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여린 마음이 자리한다. 김유정은 이처럼 상반된 면모를 과장 없이 오가며 가경을 단순한 생존형 인물 이상의 존재로 빚어냈다.
김유정은 “20대 초반의 가경이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꿈꾸는지도 모르는 젊은 친구인데, 그 시기에 겪는 내면의 성장 과정이 궁금했었다”며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그동안 독립운동에 별다른 뜻을 두지 않았던 가경에게도 변화의 순간이 찾아왔다. 소란의 남편 금석중(감우성)이 눈앞에서 사토 신이치의 총에 맞아 숨지면서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독립이 자신의 삶과 맞닿는 순간, 가경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가 향후 전개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시대극에서 가경은 능수능란하고 천연덕스러운 인물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유일한 캐릭터”라며 “현재 ‘100일의 거짓말’이 이야기의 반환점에 접어든 가운데, 가경에게 독립을 향한 의지와 명분이 생기면서 김유정의 연기도 한층 깊어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흥행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100일의 거짓말’은 6회에서 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 9.5%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웠다. 업계에서는 이번 주 방송에서 두 자릿수 시청률에 진입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실제 10%를 돌파한다면 올해 tvN 토일드라마 흥행작 ‘언더커버 미쓰홍’이 10회에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것보다 빠른 성과다. 사진=tvN 제공 김유정이 웃으면 코미디가 되고, 울면 시대의 비극이 된다. 박진영(김태웅 역)과 눈을 맞추는 순간에는 애틋한 첩보 로맨스가 펼쳐진다. 이처럼 ‘100일의 거짓말’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데에는 김유정의 힘이 크다. 이제 가경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아가는 길목에 섰다. 그 변화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올지는 아역 시절부터 쌓아온 김유정의 연기 내공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