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교통사고를 당해 뇌동맥류 진단을 받은 그는 서초노인요양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 대체 복무를 마쳤다. 뇌동맥류는 몸 속의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혈관이 부풀어 터지면 급사할 수도 있기 때문. 건강을 되찾고 있지만 꾸준한 몸 관리가 필요하다.
생각보다 의연했다. "처음 한 달은 저도 너무 힘들었죠.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며 자책도 했지만 한 달이 지났나. 그런 마음이 사라지고 열심히 살아보자는 결심을 했어요.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죠. 마음 먹기가 힘들었으니깐요. 아프면서 얻은 것도 많아요. 하루하루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데뷔 14년차인 정일우의 대표작은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아직도 회자되는 최고의 시트콤으로 데뷔하면서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당시 힘들었을 정도. "'하이킥'이 늘 따라다니는 건 알지만 꼬리표를 떼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배우에게 대표작이 있다는 건 영광이잖아요. 물론 '하이킥'이 끝나고 부담감이 꽤 컸어요. 그래서 차기작도 신중히 골라 오래 걸렸고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고요. 그래도 그때 나문희·이순재 선생님의 말씀을 여전히 깊이 새기고 연기하는 중이에요."
많은 과정이 그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해치'를 끝내고 스페인 순례길을 다녀온 정일우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건강한 생각을 담아왔다. "20대에도 한 번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어요. 이번에도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타이밍이 좋았어요. 사람들과 섞여 연예인 딱지를 떼고 만나는 그 감정이 좋았어요."
술잔을 기울이며 그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감탄이 나왔다. 많지 않은 나이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처럼 여유가 느껴졌다. 건강한 정신이라는게 이런 것이랄까.
1편에 이어... -잡지 소개 좀 해주세요. "정일우의 생각을 공유하는 매체죠. 제가 바라보는 문화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월간지 개념은 아니고 분기나 상·하반기로 구상하고 있어요."
-요즘 브이로그 많이 하던데 꼭 잡지를 고집한 이유가 있나요. "말 주변이 좋지 않은 걸 너무 잘 알아요.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게 아직 낯설어요. 그래서 차분히 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막상해보니 어떤가요. "스페인 순례자의 길을 다녀온 것도 다루고 싶은데 잡지니깐 사진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면 또 다른 스태프들과 같이 해야하고 일이 커지죠. 개인적인 걸 담기엔 모호해요. 쉽지 않은 작업이에요."
-직접 인터뷰도 하나요. "창간호에 나문희 선생님을 인터뷰했어요. 인터뷰이가 꼭 연예인이 아니래도 드라마 감독님이나 작가님 등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담고 싶어요."
-왜 시작했나요. "배우가 작품으로 보여주는 건 한계가 있다고 봐요. 요즘이 예전처럼 신비주의도 아니잖아요.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다른 점도 궁금해하고요. 데뷔한지 14년 됐는데 색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팬들과 공유요."
-개인 투자인가요. "그렇죠. 인건비랑 제작비는 다 사비로 진행하죠고 있어요.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웃음)"
-인터뷰하는 건 재미있나요. "이번에 알게 됐어요.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옮긴다는게 쉽지 않더라고요. 인터뷰이가 하는 말 그대로를 옮기는게 아니라 인터뷰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도 녹여야하잖아요. 인물 섭외나 질문지 작성, 장소를 찾아보는 것도 다 제 몫인데 쉽지 않아요."
-나문희 씨와 인연이 계속 되나봐요. "명절 때마다 나문희 선생님을 꼭 봬러 가요. 선생님도 항상 응원해주고 제 드라마 모니터도 해주세요." -요즘은 시트콤이 없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요즘 '하이킥' 같은 작품 하나 있으면 다들 웃을 수 있을텐데요. 무겁고 잔인한 드라마보다 TV를 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한 시기잖아요. 다들 스트레스 받는데 웃음을 주는 것도 좋잖아요. 늘 그런 생각은 하는데 제가 제작자는 아니니깐…."
-시트콤 제안이 온다면 할 건가요. "김병욱 감독님이 불러준다면 무조건 해야죠. 다른 시트콤도 내용이 좋으면 하고 싶어요."
-'하이킥' 꼬리표를 떼고 싶나요. "전혀 아니에요. 배우에게 대표작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잖아요. 대표작이 있으니 정일우가 있고 그걸 기본으로 두는 거니깐요. '하이킥'을 해서 '일지매' '해를 품은 달'도 잘 해낸 거니깐요."
-그래도 부담일 수도 있는데. "배우가 인생작을 만나는게 쉽진 않아요. 못 만나고 끝나는 경우도 많고요. 굳이 그걸 지우고 뛰어넘고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하이킥'과 반대되는 캐릭터를 하고자 노력을 많이 했던 건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