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는 관중 육성 응원 없이 설명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육성 응원이 금지됐는데, 이를 다시 허용하느냐가 관중 수에 영향을 끼칠 정도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야구장을 찾은 팬이라면, 선수의 등장곡과 응원가가 많이 변했음을 체감했을 것이다. 2016년부터 시작된 응원가 저작권 분쟁으로 많은 응원가가 바뀐 탓이다.
응원가 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8년 3월 21일이다. 당시 21명의 작곡가·작사가들은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가합516867), 이들은 2019년 2월 패소했다. 3월 항소(서울고등법원 2019나2016985)한 이들은 지난해 10월 일부 승소했다. 삼성 구단은 이에 상고했다가 취하하면서 판정이 확정됐다. 삼성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고, 이는 실제로 치열한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그전까지 KBO는 사단법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계약을 통해 응원가 원곡을 이용해왔다. KBO의 마케팅 자회사가 각 구단을 대표하고, 협회는 음악 저작권의 신탁·관리 권한을 받아 이용료 계약을 맺었다. 당시 협회는 삼성과 계약에서 무단으로 저작자명 및 제명을 변경하거나 개작하여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약정했다.
그런데 당시 삼성은 이 부분을 위반했고, 원곡자들은 이를 지적했다. 저작권법상 원곡자들의 저작권은 크게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구별된다. 저작인격권은 저작물의 원본 또는 공표 매체에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할 수 있는 성명표시권,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인 동일성 유지권을 포함한다. 이어 저작재산권 중에는 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 저작물을 작성해 이용할 권리인 2차적저작물작성권도 존재한다. 노래를 무단으로 고치고, 원작자 이름을 전하지 않았던 구단들이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는 게 원곡자들의 주장이었다.
판결은 어땠을까. 1심은 원곡자들의 주장을 전부 인정하지 않았으나 2심은 음악저작물이 악곡과 가사로 구성된 결합저작물이라는 전제로 작곡가와 작사가 각자의 저작권침해를 판단했는데, 이중 작곡가의 '성명표시권'의 침해를 인정했다. 2심이 확정됐기 때문에 현재 법원의 판단도 같다고 해석하면 된다.
가사의 경우 기존 가사에서 창작성 있는 표현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가사 또는 상당 부분을 변경한 가사의 경우 실질적 유사성이 없는 독립된 저작물로 봤다. 이 때문에 법원은 이 경우 ‘동일성유지권’이나 ‘2차저작물작성권’의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악곡의 경우, 반대 의미에서 권리 침해가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응원가 악곡이 원곡과 같거나 거의 유사해 오히려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성명표시권’ 침해는 법원의 인정을 받는 데 일부 성공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가사는 독립적 저작물로 판단돼 성명표시권 침해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법원은 작곡가들의 성명표시권은 침해됐다고 인정했다. 구단은 야구장 환경 특성상 저작자의 성명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사유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성명표시권을 준수할 수 있는 세 가지 예시를 들었다. 첫 번째, 선수 입장 시 응원가를 부를 때 전광판에 저작자의 성명을 표시한다. 두 번째, 경기 종료 후 경기 중 사용된 응원가 저작자 성명을 열거한다. 세 번째, 구단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또는 유튜브 채널에서 응원가 영상을 제공할 때 해당 응원가 저작자의 성명을 표시한다.
법원은 성명표시권 침해로 인해 작곡가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므로 삼성 측에 배상 의무가 있다고 봤다. 그 결과 삼성은 작곡가들에게 사용단위(사용된 음악저작물 개수에 사용연도 수를 곱한 값) 당 5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단을 받으며 소송이 마무리됐다.
응원가 원곡자와 삼성 라이온즈의 소송은 작년에 종료됐다. 팬들은 저작권자와 구단 사이 분쟁과 소송이 있었다는 건 기억하지만, 응원가 교체 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명표시권 문제는 작지만 의미 있는 야구장 내 풍경의 변화를 만들었다. 올해 KBO리그 일부 구단들은 당시 2심 법원의 결정에 따라 원곡자의 ‘성명표시권’을 존중하고 있다. 서울 잠실구장을 사용하는 LG 트윈스가 대표적이다. LG는 홈 경기 중 투수의 교체 출장 때 등장곡 재생과 함께 전광판에 원곡자들의 성명과 이명을 표시하고 있다.
저작권과 함께 달라진 풍경은 단순한 권리 행사에 그치지 않고 뜻깊은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난 7월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경기 종료 후 열린 박용택의 은퇴식 때 구장에는 그를 상징했던 응원가 ‘New Ways Always’가 다시 울려 퍼졌다. 의미 있는 은퇴식을 맞아 원곡자가 사용을 허락한 덕분이다. 단순히 좋은 응원가를 팬들이 다시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구단과 원곡자 간의 상호 존중이 빛난 순간이었다. 구단과 저작자가 저작물의 사용과 관련하여 의미를 되새겨야 할 좋은 선례였다.
저작권은 저작자의 창작에 대한 인정이자 저작물 창작의 원동력이다. 팬들은 그동안 익숙하게 불러온 응원가를 부르지 못해서 낯선 느낌을 받고 서운함과 안타까움이 든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할 때, 프로야구가 더 모범적인 준법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