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선발 투수가 세이브왕을 노린다. 반대로 홀드왕 경력이 있는 불펜 투수는 더 많은 '선발 이닝'을 소화하고자 한다. 서로의 역할이 바뀐 것은 아닐까.
LG 트윈스는 지난 2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4-3으로 승리했다. '선발' 장현식이 5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가운데, '마무리' 손주영이 1⅓이닝을 실점 없이 막아내면서 1점 차 승리를 마무리 지었다.
사실 이 구도는 시즌 초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애초 장현식은 필승조, 손주영은 선발 요원으로 분류됐던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손주영은 지난해 27경기에 등판해 11승을 거둔 핵심 선발 자원이다. 장현식 역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불펜에서 활약한 계투 요원이었다. 2021년 34개의 홀드로 홀드왕에 오른 경력이 있는 데다, 2024년엔 16홀드로 KIA 타이거즈의 통합 우승을 견인한 덕에 이듬해 LG와 52억 원의 FA(자유계약선수) 대형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장현식은 지난해 다소 부진했다는 평가 속에서도 5홀드 10세이브를 기록하며 LG의 필승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LG 장현식. LG 제공
하지만 올해 판도가 바뀌었다. LG는 5월 중순 부상으로 이탈한 마무리 유영찬의 공백을 선발 자원인 손주영으로 메우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이어 6월에는 대체 선발 투수들이 연이어 부진하자, 롱릴리프 역할을 소화하며 가능성을 보인 장현식을 선발진에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워 성공을 거뒀다.
"멘털과 구위, 변화구 등을 고려할 때 손주영이 마무리로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염경엽 LG 감독의 호언장담은 손주영이 세이브율 100%로 16세이브를 기록하며 증명됐다. 또한 과거 풀타임 선발 경험이 있고 스태미나가 좋은 장현식을 선발로 투입한 결정은 5이닝 무실점 완벽투로 연결됐다. 이날 장현식은 NC 다이노스 시절인 2017년 9월 27일 대구 삼성전(6이닝 1실점) 이후 약 9년 만에 선발승을 거뒀다. 모두 LG의 두터운 투수층 덕분에 가능했던 장면들이다.
장현식은 "과거 불펜으로 어려운 상황에 나갈 때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렵게 승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닝을 더 길게 끌고 가고 싶다 보니 오히려 공격적으로 던지게 된다"라면서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지 않고, 타자를 윽박지르기보다는 일정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던지는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투구 밸런스를 잡는 데 보직 변경이 큰 도움이 됐다.
LG 손주영. LG 제공
반면 손주영은 선발 마운드에서 구사했던 다양한 구종과 레퍼토리가 마무리 투수 역할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무리를 맡으면서 결정구 능력이 향상된 것 같다. 낮게 던지라는 주문에 확실히 낮게 제구하려고 하다 보니 변화구의 예리함이 생겼다"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염 감독이 장담한 손주영의 멘털 역시 적중했다. 그는 "안타를 맞지 않으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볼넷이 나오고 움츠러든다. 강하게 던져서 후회 없는 승부를 하는 편이 낫다"며 마무리 투수다운 담대함을 보였다.
내친김에 손주영은 세이브왕 타이틀까지 노린다. 현재 16세이브로 부문 1위 김재윤(삼성 라이온즈)을 1개 차로 추격하고 있는 그는 "페이스가 워낙 좋아 지금은 세이브왕 욕심이 조금 난다"라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팀 우승을 위해 어떤 역할이든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편해졌고, 마무리로서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이렇게 된 이상 세이브왕도 해보고 싶다"라고 다짐했다.
아직 대체 선발 요원인 장현식은 선발승에 대한 욕심보다는 "선발로 등판해 한 타자씩 잘 막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팀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손주영과 같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해 불펜진의 과부하를 덜어주고 싶다는 것이 장현식의 바람. 그는 "어떤 상황에 등판하든지 내가 투수로서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앞으로의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