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촉발한 12.3 비상계엄 사태 후 한 달이 흘렀다. 헌법재판소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재판 준비기일을 거쳐 1월 셋째주부터 관련 심리를 본격 시작할 예정이라 밝혔고, 계엄 관련자들이 속속 재판에 넘겨지는 등 계엄 사태 해결 및 정상화를 위한 움직임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가요계는 울상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이르면 2월 안에 나올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탄핵 여부와 별개로 내란수괴에 대한 조사는 물론, 형사재판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상태라 관련 이슈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모든 이슈를 잠식하는 탄핵 이슈가 계속될 경우 수개월 이상 공들여 준비한 앨범이나 음원 소식이 대중에게까지 닿기 어려워지는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 연말 뜻하지 않게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일주일간 국가애도기간이 이어졌다. 이에 1월 컴백을 준비해 온 가수들의 프로모션 콘텐츠 공개 일정도 올스톱됐고 서이브 등 몇몇 가수들은 컴백 일정을 아예 미뤘다. 한창 활력 넘쳐야 할 정초 가요계는 어느 해보다 침체된 분위기다.
◇ 컴백 미뤄도, 강행해도 노답…탄핵정국에 가요계도 진퇴양난
연초 컴백을 준비해 온 가수들의 컴백 러시는 6일부터 시작된다. 보이넥스트도어, 온유, CIX, 권은비, 세븐틴 유닛 부석순, 여자친구, 브브걸, 위아이, 갓세븐, 아이브 등이 일찌감치 1월 컴백 주자로 꼽혀왔다. 이들만 해도 적지 않은 라인업이지만, 당초 1월 컴백을 계획했던 팀들이 더 있었으나 탄핵 이슈 직격탄을 피하기 위해 아예 2~3월 이후로 컴백 플랜을 변경하는 팀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가요 관계자는 “작년에는 하이브-민희진 이슈가 가요계 이슈를 모두 잠식했고, 뉴진스 전속계약 소송까지 더해져 관련 이슈가 이어질 것이라 마음을 비워 왔는데, 비상계엄 후 이어지고 있는 탄핵 정국에 어지간한 연예 이슈는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아 진짜 비상”이라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내란수괴 혐의를 받고 있는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시작조차 되지 않은 탓에 탄핵 및 파면 이슈가 예상보다 더 길게 이어질 분위기가 관측된다는 점이다. 1월 컴백을 목표로 준비해 온 가수와 기획사들이 컴백 일정을 2월 이후로 변경하는 것도 그래서다.
반면 이슈 잠식 가능성에도 컴백을 강행하는 데는 ‘고육지책’이라는 속사정도 깔려 있다. 한 관계자는 “이슈를 피해 컴백을 준비하면 꼭 다른 이슈가 나오기도 하더라”면서 “이 시국의 컴백이 화제가 되기 힘든 건 알지만 뒤로 미룰수록 컴백 라인업이 더 치열해져 음악 방송 출연 기회조차 얻기 힘들어질 수 있어 그냥 예정대로 컴백한다”고 전했다.
◇고환율 장기화에 비용 증가…중소기획사 비명
정국 불안정 장기화에 따라 환율 악재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원·달러 환율이 1476원까지 치솟으며 금융위기 후 15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지난 일주일간 1480원 전후의 고환율이 이어지고 있다. 탄핵, 체포영장 청구 및 집행 등의 정치 이슈 현황에 따라 환율 변동이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환율을 극적으로 떨어지게 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 고환율 장기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데, 가요계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한 아이돌 기획사 관계자는 “환율이 높아짐에 따라 종전과 동일한 달러 금액이라도 보다 많은 원화를 지불해야 한다”며 “인건비 및 공연 제작 비용 상승이 실질적으로 다가오는 문제다. 해외 일정 파견 인원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해도 한계가 있어 결국 비용 상승은 피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해외 작곡가들의 참여도가 높은 현 K팝 시장에선, 곡비 상승 효과도 피할 수 없다. 여기에 해외 브랜드 의상을 사용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 중소기획사 관계자는 “대형기획사의 경우 환율 상승 여파가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으나 중소기획사는 비용 하나하나의 집행이 민감한 만큼 실질적인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요 관계자는 “불황과 탄핵 이슈에 여객기 참사라는 안타까운 사건까지 겹쳐 컴백이 화제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소비심리도 위축돼 전반적으로 우울한 상황”이라면서도 “음악의 치유의 힘을 믿고 음악을 통해 힐링을 얻으셨으면 한다”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