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예진이 9일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에서 열린 넷플릭스 새 시리즈 '스캔들'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9.9 / 사진=연합뉴스 제공
배우에게 연륜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폭과 비례한다. 손예진이 신작 ‘스캔들’을 통해 이를 증명한다. 사랑에 빠진 여인의 순수함부터 욕망을 숨긴 채 판을 설계하는 여인까지, 한 인물의 긴 시간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연기 내공을 보여준다.
18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은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를 조선시대로 옮긴 작품으로, 조선시대 여성으로만 갇혀 살기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인과 조선 최고의 연애꾼이 발칙하고 위험한 사랑 내기를 벌이는 이야기다.
손예진은 조씨 부인을 연기했다. 누구보다 영민하고 매력적이지만, 여인이란 이유로 자신의 이름과 꿈을 내려놓아야 했던 인물이다. 재능과 욕망을 뒤로한 채 사대부 집안을 돌보는 정숙한 부인으로 살아가던 그는 소실 소옥(신윤하)의 등장에 글친구이자 사촌동생인 조원(지창욱)을 불러 은밀한 내기를 제안한다.
조씨 부인의 가장 큰 특징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과 말, 감춰둔 속내가 끊임없이 어긋난다는 점이다. 손예진 역시 “조씨 부인의 정숙한 표정과 말하는 대사, 진짜 속마음이 다 다르다. 아주 미묘하고 섬세하게 디자인하지 않으면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없을 듯해서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으로 완성해야 했다”며 “무슨 감정인지, 진짜 감정이 뭔지 숙제처럼 풀어갔다”고 연기 주안점을 짚었다.
‘스캔들’ 스틸 / 사진=넷플릭스 제공
손예진은 조씨 부인의 변화를 섬세한 온도 차로 빚어냈다. 마음에 조원을 품었던, 조윤 시절에는 사랑 앞에서 망설이고 설레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러나 사랑과 이름, 재능을 하나씩 내려놓은 후에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감정을 감추고, 상대의 마음을 읽으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끈다. 한 인물이 살아온 시간이 달라진 만큼, 손예진의 표정과 눈빛에도 이전과는 다른 온도가 감돈다.
이 지점에서 손예진이 쌓아온 멜로의 얼굴도 새로운 방식으로 기능한다. 영화 ‘클래식’,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사랑의 불시착’ 등에서 보여준 따스하고 애틋한 눈빛 위로 욕망과 긴장을 겹쳐 놓는다. 부드러운 표정에 속내를 감추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순간, 익숙했던 멜로의 얼굴은 상대를 유혹하고 상황을 설계하는 인물의 얼굴로 변주된다. 사랑을 바라보던 얼굴에서 사랑과 욕망을 자신의 방식대로 다루는 여인의 얼굴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연출을 맡은 정지우 감독은 “손예진과 조씨 부인을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첫 번째였다”며 “손예진은 매우 신기한 사람이다. 이야기 전체를 어깨에 딱 얹고 그 캐릭터를 있게, 믿게 만든다. 전체 드라마를 책임지는 힘이 슈퍼히어로 같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나’ 싶은 기분을 매번 느꼈다”고 작업에 높은 만족도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