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창간 57주년을 기념해 축하 메시지를 보낸 키움 데이비슨(위)과 SSG 에레디아. 두 선수가 직접 메시지를 적었다. 구단 제공
KBO리그에서 수년째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야구를 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는 물론, 낯선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라운드의 이방인을 넘어 한국 야구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장수 외국인 선수들이 있다. 4년 차 기예르모 에레디아(35·SSG 랜더스)와 3년 차 맷 데이비슨(35·키움 히어로즈)도 그중 하나. 창간 57주년을 맞은 일간스포츠가 두 선수를 만나, 한국에서 수년간 생활하며 경험한 한국 야구와 한국 문화에 대해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장수 외국인 선수 에레디아와 데이비슨. 구단 제공
◇"'눈물의 여왕' 베리 굿" "설렁탕 그레이트"
쿠바 출신 에레디아는 한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새로운 취미가 하나 생겼다. 드라마 시청이다. 푹 빠진 장르는 스릴러도 판타지도 아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한국 드라마를 찾아본다는 그는 "'눈물의 여왕'을 가장 재밌게 봤다. 정말 많이 울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2024년 3월부터 16부작으로 방영된 '눈물의 여왕'은 최종회에서 24.9%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로맨틱 코미디다.
외국인이 한국 드라마 특유의 감정선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에레디아는 "(남녀 주인공인) 김지원과 김수현의 눈물 연기가 좋았다"며 "한국 문화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크다. 내 친구들도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를 궁금해한다. 나 역시 (드라마뿐만 아니라) 음식과 노래도 다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지난 6월 NC를 떠나 키움으로 이적한 데이비슨. NC에서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자녀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있다. 왼쪽에 있는 딸 브릭스톤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즐겨보며 한국 문화에 큰 관심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NC 제공
일본에서 1년, 한국에서 3년째 생활 중인 데이비슨은 "딸(브릭스톤)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즐겨봤다. 그뿐만 아니라 K-팝이나 K-뷰티를 좋아하는 거 같다"며 웃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글로벌 OTT를 통해 공개된 미국의 뮤지컬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해 한국 문화와 케이팝을 판타지 세계관에 녹여냈으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202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다.
데이비슨은 한국 음식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평소 설렁탕과 소고기를 즐겨 먹는다"며 "설렁탕은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 것 같다. 특히 한국 소고기는 유난히 부드러운 것 같다"고 놀라워했다.
지난해 3월 '셋째 젠더리빌 행사'에서 선수들의 축하를 받은 에레디아 가족. 아내 릴리아나, 딸 리아, 아들 로에니의 모습. 에레디아는 SSG 소속으로 셋째 에이든을 득남하기도 했다. SSG 제공
두 선수가 꼽는 한국의 장점은 안전과 특유의 K-문화이다. 간식으로 호두과자를 챙겨 먹는 에레디아는 "한국은 굉장히 평화로운 나라"라며 "어딜 가더라도 외국인들을 도와주려는 한국 사람이 많다. 현재 살고 있는 송도는 한적하고 공원도, 편의시설도 많다. 타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데이비슨은 "어디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고 배달 서비스도 잘 갖춰져 자주 이용한다"며 "한국인들의 친절함과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는 정말 인상적이다. 음식이나 음악뿐만 아니라 이런 부분도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BO리그의 강점 중 하나는 팬" "최정? 베스트 플레이어"
KBO리그는 2024시즌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첫 1000만 관중 시대를 연 뒤, 매 시즌 최다 관중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올해는 사상 첫 1300만 관중 달성을 목표로 또 한 번의 흥행 기록에 도전 중이다. 에레디아는 "어느 경기든, 어떤 경기장이든 관중이 많다. 응원 열기가 느껴진다"며 "소셜미디어(SNS)에서 날 태그해 올리는 게시물이 확실히 늘었다. 야구에 관심이 커지면서 이런 일이 더 많아졌다"고 놀라워했다.
데이비슨은 "KBO리그의 강점 중 하나가 팬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느 구장에 가더라도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아주시고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열정적으로 응원한다. 미국에서도 많은 팬들 앞에서 뛰어봤지만, KBO리그는 팬들이 경기 내내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응원가가 있다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며칠 전 지나가던 어린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아이가 특정 팀뿐만 아니라 KBO리그 여러 팀의 선수들을 대부분 알고 있어서 놀랐다"며 "어린 팬들도 그 정도로 리그와 선수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외국인 타자인 데이비슨과 에레디아의 타격 모습. 구단 제공
두 선수는 최근 몇 년 사이 KBO리그에 나타난 변화를 직접 체감하고 있다. 투수들의 능력이 향상됐다고 꼽은 에레디아는 "전체적으로 경기 템포가 빨라졌다. 특히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가 도입되면서 경기 페이스도 더 빨라졌다"고 강조했다. 데이비슨이 주목한 건 리그의 전반적인 경쟁력이다. 그는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최근에는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젊은 선수들도 많고 메이저리그(MLB) 스카우트들이 KBO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며 "선수들도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컨디셔닝, 데이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쌓이면서 리그 경쟁력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리그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시설과 선수 지원 환경을 더욱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데이비슨은 경기장 시설뿐 아니라 컨디셔닝과 회복 프로그램, 데이터와 분석을 활용한 경기력 향상 시스템 등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봤다. 에레디아는 특히 경기장 환경 개선을 강조했다. 그는 "잔디나 그라운드 상태가 더 좋아진다면 지금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야구팬들이 보다 편안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시설도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KBO리그에서 눈여겨보는 선수에 관한 질문에는 두 선수 모두 젊은 선수들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데이비슨은 김도영(KIA 타이거즈) 곽빈(두산 베어스) 김주원(NC 다이노스) 안우진(키움 히어로즈) 등을 언급하며 "이미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더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에레디아는 리그의 강점으로 타자들의 높은 수준을 꼽으면서, 가장 뛰어난 선수로 팀 동료이자 리그 통산 홈런 1위인 최정을 지목했다. 그는 최정에 대해 "훌륭한 팀메이트이자 커리어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베스트 플레이어"라며 "슬럼프도 없을 정도로 지속적으로 성적을 내는 선수"라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