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제공 일본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강제로 지배당했던 35년의 시간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났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에서 이무생은 애틋한 사랑을 그려낸다. ‘독립’이라는 대의 앞에서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기에, 이무생은 눈빛으로 대신한다. 그의 전매특허이자 배우로서 진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100일의 거짓말’은 밀정이 된 경성 최고의 소매치기와 조선총독부의 엘리트 통역관이 적의 심장부에서 마주하며 벌어지는 100일간의 첩보 로맨스다. 극중 이무생은 하와이 출생의 조선계 미국인 유필립 역을 맡았다. 미국 언론사의 경성 특파원으로 활동하지만, 그 이면에는 구국단의 일원으로서 치밀하게 적을 처단하는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숨어 있다.
유필립은 같은 구국단 소속 저격수 유소란(김현주)과 대외적으로 부부 행세를 한다. 그러나 소란에게는 독립운동가 금석중(김우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금서희가 있었다. 소란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사토 신이치(진선규)에게 딸을 잃은 뒤 복수를 꿈꾸는 인물이다. 유필립은 소란의 아픈 과거와 그가 짊어진 복수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킨다. 사진=유튜브 채널 tvN DRAMA 캡처 눈은 마음의 도구이고, 눈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근육이라는 말이 있다. 작품 속 이무생의 눈빛은 이런 의미에서 투명하다. 내뱉는 말과 행동은 냉철하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소란을 향해있다. 그래서 소란을 대신해 죽을수도 있을거란 슬픈 예감이 들지만, 시청자들은 필립과 소란을 ‘어른 사랑’이라 부르며 응원한다. 두 사람의 서사를 담은 유튜브 클립이 공개 10일 만에 조회수 20만 회를 훌쩍 넘어선 것도 이러한 관심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무생의 연기는 ‘소란’스럽지 않다. 그래서 고급스럽다. “이곳에서 당신과 오래오래 기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로맨틱한 대사를 건넬 때조차 담백하다. 그렇다고 매 순간 절제된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감정을 드러낼 때와 삼켜야 할 때를 정확히 구분한다. 조선총독부가 소란을 위협할 때, 소매치기 출신 가경이 조선총독부의 밀정 제안을 거절했을 때, 사토 암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 소란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됐을 때는 순식간에 다른 얼굴을 꺼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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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생은 시청자들에게 긴장감과 익숙함을 동시에 안기는 배우이기도 하다. 선역과 악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쌓아온 필모그래피가 어느새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덕분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마에스트라’, ‘당신이 죽였다’, ‘서른, 아홉’, ‘더 글로리’, ‘부부의 세계’ 등에서 섬뜩함과 희열을 안기는 악역을 능숙하게 소화하는가 하면,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물을 연기할 때는 특유의 신뢰감으로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한다”며 “이번 ‘100일의 거짓말’에서 보여주는 절절한 순애보 역시 ‘이무생로랑’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연기”라고 평가했다.
극중 이무생이 연기하는 ‘유필립’이라는 이름도 짚어갈 필요가 있다. 언뜻 서양식 이름처럼 들리지만, 반드시 필(必)에 설 립(立)을 대입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굳건히 서서 뜻을 이루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름마저 순애보를 닮은 남자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어디까지 나아갈지, 사랑하는 소란을 위해 무엇을 내려놓을지. 그 선택의 순간마다 이무생이 어떤 눈빛을 꺼내 들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유필립의 사랑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로 완성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