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선 감독이 영화 '살생부'를 함께 제작하는 촬영감독 라스 콕스(왼쪽), 조명감독 키런 웨이트와 함께 27일 서울 서초구 라이브러리컴퍼니 사옥에서 일간스포츠와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2026.10.27/
“한국적인 요소를 유지하면서 해외 관객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김홍선 감독이 ‘늑대사냥’ 이후 4년 만에 한국영화로 돌아왔다. 김 감독의 신작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정치 액션 누아르 ‘살생부’다. ‘살생부’는 세계 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프로젝트로, 김 감독과 영국 드라마 ‘갱스 오브 런던’ 시즌3를 함께한 라스 콕스 촬영감독, 키런 웨이트 조명감독이 의기투합했다.
한국 관객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라스 촬영감독은 영화 ‘블러드샷’, 넷플릭스 ‘위쳐’ ‘원피스’를, 키런 조명감독은 ‘테넷’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더 마블스’ ‘오디세이’, HBO ‘왕좌의 게임’, ‘갱스 오브 런던’ 등 블록버스터와 액션 작품에 참여한 베테랑이다. 이들은 할리우드에서의 작업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영화의 역동적인 화면과 규모감을 구현할 예정이다.
‘살생부’ 고사 다음 날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김홍선 감독의 작업실에서 김 감독과 라스, 키런 감독을 만났다. 서로를 “친구”라고 칭한 세 사람은 ‘갱스 오브 런던’ 시즌3에 이어 한국영화로 호흡을 맞춘 소회부터 첫 촬영을 앞둔 설렘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어제 고사를 앞두고 정장도 사러 가고 유튜브로 절하는 법도 배웠어요. 근데 (고사) 현장에서 보니 김 감독이 알려준 절하는 법은 내가 본 영상과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절하는 모습을 지켜봤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긴장됐어요. ‘감사하다’는 말을 한국어로 전하고 싶어서 연습했는데 그것 역시 틀린 것 같아요(웃음).” (키런 웨이트 조명감독)
“고사에서 모두가 이 영화와 감독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아끼는지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어요. 전 세계 어디에서나 같은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존중한다는 게 아름다웠고, 한국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볼 수 있어서 좋았죠. 무엇보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열정을 직접 느낄 수 있어서 인상 깊었어요. 아름답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되길 바랍니다.” (라스 콕스 촬영감독)
김홍선 감독이 27일 서울 서초구 라이브러리컴퍼니 사옥에서 일간스포츠와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2026.10.27/
‘살생부’는 누적조회수 1억 2000만회를 넘긴 동명 웹툰을 영화한 작품으로, 안티히어로 한명회(정우성)를 통해 권력과 욕망, 복수와 배신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그려낸다. 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원작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실사 영화로서의 현실감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인 웹툰은 어둡고 유혈 표현이 강한 질감, 파격적인 액션을 특징으로 한다.
“원작 속 잔인하고 잔혹한 장면, 성적으로 강한 표현들을 실사로 바꾸는 데 신경을 썼어요. 판타지적인 요소를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로 만드는 게 중요했죠. 한명회와 수양대군, 사육신처럼 실제 인물들을 다루는 만큼 너무 만화적으로 보이지 않게, 영화로 성립시키는 것이 포인트고요. 동시에 긴 이야기를 두 시간 안에 압축하는 게 큰 숙제죠. 웹툰의 장점은 살리면서 그 안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적합한 표현 수위를 영화로 가져오려고 해요.” (김홍선 감독)
김 감독은 또 “‘로컬 투 로컬’(Local to Local, 국내 시장과 관객을 중심으로 한 것)보다 ‘로컬 투 인터내셔널’(Local to International, 한국적인 색채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과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에 가까운 접근”이라며 “화면과 캐릭터는 좀 더 명료하고 단순하게 구성하되, 그 안에서 한국 문화와 옛 조선시대의 문화를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하려 한다. 그렇게 하면 신선한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연출 주안점을 짚었다.
글로벌 대작에서 묵직한 발자취를 남겨왔던 두 감독 라스와 키런이 한국 역사를 소재로 한 정치 액션 누아르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인상도 궁금했다. 라스 감독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여서 무척 흥미로웠다”고 떠올렸다.
“한국의 역사적인 배경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리면서 판타지 요소를 더한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어요. 그 두 가지 요소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결합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현실감 있게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했죠.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두려움도 관객들에게 진짜처럼 전달되도록 말이에요. 또 촬영 장소들도 좋았고, 이야기도 아름다웠어요. 함께할 사람들을 직접 만난 후에는 기대가 더욱 커졌고요.” (라스 콕스 촬영감독)
“감독님께 조선시대를 공부하란 이야기만 듣고, 시나리오는 한국에 와서 시차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이틀 동안 봤죠(웃음). 이후 콘셉트 아트 작업과 스토리보드 같은 자료들을 보고, 촬영 장소도 몇 군데 둘러봤어요. 그러면서 작품 전체가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이었고, 앞으로가 기대되기 시작했죠. 기대 요소가 정말 많고 가능성도 큰 작품이라고 봐요. 원작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웹툰도 더 많이 찾아보려고 합니다.” (키런 웨이트 조명감독)
두 사람은 한국의 시대적 배경,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군도’, ‘전, 란’,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등 다양한 한국 작품도 접했다. “사실 한국 콘텐츠에 아주 익숙한 편은 아니었다”고 털어놓은 라스 감독은 이들 작품을 통해 연출뿐 아니라 촬영과 미술, 의상, 분장까지 모든 분야에서 높은 완성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홍선 감독이 영화 '살생부'를 함께 제작하는 촬영감독 라스 콕스(왼쪽), 조명감독 키런 웨이트와 함께 27일 서울 서초구 라이브러리컴퍼니 사옥에서 일간스포츠와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2026.10.27/
“처음에는 수준을 예상하지 못했는데, 작품들을 보고 나니 한국영화가 영화 제작의 최전선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 세계적인 수준이었죠. 이런 곳에서 작품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부담도 느껴요. 단순히 무언가를 다르게 만들기보다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 이 작품을 더욱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주고 싶죠.” (라스 콕스 촬영감독)
그러면서 라스 감독은 액션 촬영에 특히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원래 액션 장면을 정말 좋아한다”며 “스턴트 팀과 함께 작업하는 건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다. 동작을 충분히 익히고 나면 정말 멋진 장면이 나온다. 나도 스턴트 팀에게 몇 가지 팁을 주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키런 감독은 궁궐과 오래된 저택, 숲 등 다양한 공간에 구현될 빛과 색감에 대해서 귀띔했다. 앞서 함께 살펴본 참고 작품의 요소를 바탕으로 하되, 이를 한층 발전시켜 영화만의 독창적인 비주얼을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규모가 상당히 크고 웅장한 작품이 될 것 같아요. 밤에 촬영하는 대규모 장면도 있죠.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한국적인 색채가 두드러져요. 여기에 저희만의 색깔을 더해 발전시킬 계획이죠.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기존과 다르면서도 연결되는 화면을 만들고자 해요. 성공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특별한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키런 웨이트 조명감독)
크랭크인에 앞서 진행된 테스트 촬영은 성공적이었다. 라스 감독은 한명회를 연기한 정우성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고, 키런 감독은 한국 스태프들의 세심한 배려와 놀라운 적응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특히 미소로 응대하는 태도와 함께,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익히는 속도가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정)우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모든 것을 해냈어요. 카메라가 얼굴을 가까이 비추는데도 과장된 구석 하나 없이 아주 섬세했고요. 그래서 그가 본격적으로 연기하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저 앉아 있거나 서 있기만 해도 마치 하나의 선물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라스 콕스 촬영감독)
“헌팅 때 스태프들을 처음 만났는데 굉장히 친절했죠. 무엇보다 제가 ‘이건 준비됐나요? 저건 준비됐나요?’라고 하면 24시간 안에 그걸 해결해요. 이번에 차콜색의 조명용 그리드를 제작했는데, 그것도 이틀 만에 해냈죠.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걸 다루는 법을 저보다 더 잘 알게 됐어요. 정말 습득이 빨라요.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죠.” (키런 웨이트 조명감독)
김홍선 감독이 영화 '살생부'를 함께 제작하는 촬영감독 라스 콕스(왼쪽), 조명감독 키런 웨이트와 함께 27일 서울 서초구 라이브러리컴퍼니 사옥에서 일간스포츠와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2026.10.27/
두 사람은 한국 스태프들과 원활한 소통을 위한 특별한 메모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항상 소지한다는 손바닥 모양의 노트에는 숫자부터 위, 아래, 오른쪽, 왼쪽 등 현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부터 주요 배우, 스태프들의 이름이 음차로 기록돼 있었다.
“사실 언어는 장벽이 되지 않아요. 함께 해결해야 할 장애물일 뿐이죠.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고 있고, 몸짓이나 짧은 말만으로도 이해하기 시작했죠.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의 언어, 일종의 신호 체계가 있고, 때로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충분해요. 테스트 촬영 때도 그랬어요. 무엇보다 우리는 모두 ‘카메라 덕후’들이라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하죠. 새로운 팀을 만나 반갑고, 서로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걸 발견하는 과정이 무척 기대돼요.” (라스 콕스 촬영감독)
세 사람은 서로를 향한 강한 신뢰도 드러냈다. 키런 감독은 김 감독의 장점을 묻자 “웃음소리가 좋다”며 그를 흉내 냈다. 라스 감독 역시 동의하며 김 감독의 웃음과 에너지가 현장 분위기를 밝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김 감독님의 웃음이 작품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죠. 또 그는 집중력이 굉장히 뛰어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어요. 덕분에 저희도 작업의 방향과 목적을 분명하게 정할 수 있고요. 상대의 의중을 추측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죠.” (라스 콕스 촬영감독)
김 감독은 동일 질문에 “데이 네버 세이 노”(They never say no, 그들은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라고 곧장 답했다. 그는 “현장에서 유연하게 뭔가를 해보려 할 때,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로 어렵다는 답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바로 안 된다고 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 방법을 찾는다”며 “그 과정에서 감동한 순간이 많았다”고 화답했다.
김홍선 감독이 27일 서울 서초구 라이브러리컴퍼니 사옥에서 일간스포츠와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mgkim1@edaily.co.kr /2026.10.27/
김 감독은 이들과 함께한 테스트 촬영에도 강한 만족감을 드러내며 “나도 보고 놀랐던 지점이 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룩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울러 이들 외 ‘갱스 오브 런던’ 시즌3를 함께한 마이클 이글 호지슨 프로듀서 등을 비롯한 스태프들도 합류 소식을 전했다.
“기존 팀과 새로운 제작진이 함께해요. 배우들 역시 새로 만나는 배우와 이전에 작업한 배우들이 있죠. 특히 (정)우성 선배는 정통 사극이 또 처음이에요. 이런 요소가 어떤 시너지를 낼지 기대됩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다른 작품들을 하면서 어떤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죠.” (김홍선 감독)
인터뷰일 기준, 첫 촬영을 하루 앞둔 세 사람은 남다른 각오도 전했다. 가장 먼저 운을 뗀 김 감독은 “좋은 배우, 스태프들과 어떻게 즐겁게 찍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라며 “하드코어 액션이 굉장히 많은 만큼 끝까지 안전하게 잘 찍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기존 영화 관객은 물론 웹툰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특별하고 오래 기억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키런 웨이트 조명감독)
“한국 관객은 수준 높은 영화와 드라마를 접해왔죠. 그만큼 눈높이가 높아서 쉽지 않은 도전이죠. 하지만 저는 한국 관객이 이 영화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작품 자체의 매력을 알아봐 주길 바랍니다. 저희 역시 최고 수준의 작품을 만들겠습니다.” (라스 콕스 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