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을 당시의 박해민과 박승규. 삼성 제공삼성 라이온즈에서 선배와 후배로 끈끈한 우정을 자랑했던 박해민(왼쪽)과 박승규. 삼성 제공
"내가 없는 자리를 네가 메꾸면 된다. 너한테는 또 다른 기회다."
2021년 12월 자유계약선수(FA)로 삼성 라이온즈를 떠난 외야수 박해민(36·LG 트윈스)이 팀 후배 박승규(26)에게 전한 메시지다. 당시 박해민은 "승규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데 잘 따라주는 고마운 후배였다. 잘해서 라이온즈의 중견수를 맡아줬으면 좋겠다"며 애정 어린 당부를 전했다.
박승규에게 박해민은 그야말로 '하늘 같은 선배'였다. 팀의 주전 중견수이자 센터라인의 핵심인 박해민은 박승규가 늘 닮고 싶어 했던 롤모델이기도 했다. 10살 차이의 대선배를 졸졸 따라다니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 했던 박승규를 두고 박해민은 "껌딱지처럼 붙어서 뭐라도 뺏어가려고 하는 귀여운 후배"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승규는 선배가 남긴 당부처럼 주전 외야수 자리를 꿰차지 못했다. 매년 반복한 크고 작은 부상이 문제였다.
6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6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3차전 kt wiz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8회말 1사 상황에서 삼성 박승규가 솔로홈런을 치고 있다. 2026.11.6 [연합뉴스]
박승규는 지난해 8월 정우주(한화 이글스)가 던진 공에 오른손 엄지를 맞아 분쇄 골절상을 입고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다. 2024년 7월 전역 후 팀 내 입지를 넓혀가던 시점에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긴 공백기를 보내야 했다. 개인 첫 두 자릿수 홈런(12개)을 때려낸 올 시즌에도 부상 악재는 이어졌다. 4월에는 허벅지, 후반기에는 옆구리에 불편함을 느끼면서 경기 출전과 휴식을 반복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PS)에서 반전이 시작됐다.
주전 외야수 구자욱이 허벅지 부상으로 수비를 소화하지 못하면서 삼성은 플레이오프(PO)와 한국시리즈(KS)에서 외야진 운용에 고민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박승규가 안정적인 외야 수비로 팀의 고민을 덜어준 것은 물론, 타석에서도 매서운 타격감을 뽐내며 핵심 전력으로 발돋움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KS 4차전 뒤 박승규를 두고 "미친 선수"라며 극찬했다.
7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한국시리즈 4차전 kt wiz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3회말 2사 주자 1,3루 상황에서 삼성 박승규가 1타점 적시타를 치고 포효하고 있는 가운데 kt 김현수가 안타까워하고 있다. 2026.11.7 [연합뉴스]
박승규는 경기고 2학년 때 타자로 전업했다. 스스로 "고등학교 때는 모든 게 애매했던 거 같다"고 말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 선수가 아니었다. 그 결과 201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2차 9라운드에 이르러서야 이름이 불렸다. 전체 10라운드 중 사실상 마지막 순번에 가까운 지명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조금씩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나갔다.
어쩌면 박해민이 남긴 말이 이제야 현실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배가 떠나며 건넸던 '또 다른 기회'를 붙잡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숱한 부침을 겪으며 성장한 박승규가 이제 삼성 외야의 새로운 주축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어쩌면 2026년 가을은 그 가능성을 증명한 첫걸음이 될지 모른다.
6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6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3차전 kt wiz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8회말 1사 상황에서 삼성 박승규가 솔로홈런을 친 뒤 기뻐하고 있다. 2026.11.6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