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는 제7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화란’을 현지에서 처음 본 뒤 이렇게 말했다. 김창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홍사빈)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시나리오에 반해 노개런티로 출연한 것으로 알려진 송중기는 특히 저수지 장면에서 연규가 뒤에서 치건의 귀를 바라보는 표정을 볼 때 “이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맞았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칸 현지에서 외국 영화인들에게 ‘화란’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 신인 감독한테 주는 ‘황금카메라상’이나 ‘주목할 만한 시선상’ 등의 수상은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웰메이드 한국형 누아르로서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화란’에서 치건 역할은 송중기의 필모그래피에도 중요한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칸에서 송중기를 만나 ‘화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칸을 찾은 전세계 영화인들에게 ‘화란’이 어떻게 보여졌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나.
이렇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는 이제 없어졌다. 그래봐야 제 기대 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처음 대본 읽었을 때 느꼈던 색깔대로 되면 반응은 제 각각일 것 같다. 그래도 칸에 왔기 때문에 더 떨리긴 하다. 칸이 주는 좋은 압박감이 있다.
‘화란’에 노개런티로 출연해서 화제가 됐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 결정을 했나.
그 점이 많이 기사화가 됐던데, 그게 뭐 그렇게까지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화란’ 대본을 아는 분을 통해 우연히 읽게 됐는데, 그분이 주인공은 아니라고 하면서 읽어보라고 주셨다. 전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대본을 받아 저녁에 처음 읽었을 때, 너무 좋았지만, 이건 상업적인 면에서 투자되기 어렵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돈 안 받고 해야겠다고 결정 했다. 만들어지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화란’ 대본의 어떤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었나.
일단 가족 문제를 다루는 게 가장 좋았는데, 또 특히 가정폭력을 다루는 문제를 다루는 지점이 와 닿았다. 이 이야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 연규랑 치건이가 너무 측은한 점이 끌렸다.
인생에서 가정이 중요했던 시기여서 대본에 좀더 끌렸을 수도 있는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타이밍보다는 보편적으로 가족 얘기를 하는 게 좋으니까 선택했다.
이번 역할에 도전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는가.
예전부터 어두운 역할을 맡고 싶었는데, 군대 가면서 못한 영화가 있었다. 그래서 이제 좀 새로운 어두운 역할을 하고 싶다, 안 해본 것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내면에 있었던 것 같다. 상업적으로 성공적인 작품이 감사하게도 제게 많이 제안이 오지만 다른 것을 하고 싶을 때도 있잖나. 숨쉬고 싶을 때, 우연히 만나게 된 대본이 ‘화란’이었다.
숨통이 트였다는 것은 흥행에 대한 부담, 새로운 연기의 확장도 있었던 것인가.
흥행에 대한 부담도 있었고, 그것을 안고 살아야 하니까. 홍사빈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사빈이가 원탑이기도 하고, 나와 형서(비비)는 조연이니깐. 이 영화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니까 숨이 좀 쉬어졌다. 노개런티도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한 것일 수 있다. 감사하게도 너무 좋은 프로듀서들이 함께 해서 좋았다. 사나이픽쳐스 한재덕 대표님을 비롯한 프로듀서팀이 좋은 공동제작에 들어가게 되어서 평소 프로듀싱을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옆에서 보면서 많이 배웠다. 영화는 어둡지만, 많은 회차를 적은 예산으로 알차고 디테일하게 잘 찍었다고 생각한다. 프로듀싱팀이 배우들과 호흡이 잘 맞았다.
홍사빈이 송중기가 조언도 많이 해줬다면서 인터뷰하면서 울컥하던데.
사빈이는 주연배우 처음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진짜로 부담스러울 텐데, 원래 성격인 것 같다. 담대하고 허세도 없고, 묵직한 성격인 것 같다. 더듬이가 넓어서 주연배우로서 잘 했다. 비비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지만, 김형서는 연기 배운 적도 없고 첫 작품인데, 연기를 그냥 잘했다. 대단한 아티스트인 것 같다. 저는 이 영화로 숨을 쉬었지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숨을 쉬는 영화는 아닌데도, 비비가 저희 영화 한다고 하니 영화가 어두운데도 비비가 대중에게 영화를 약간 밝게 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연기할 때 어떤 감정으로 잡고 한 것인가.
치건을 어떻게 톤을 잡고 가야 될지 좀 어려웠다. 그런 지점들도 한재덕 대표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 ‘화란’의 치건은 식욕도 없고, 성욕도 없는 상실감과 무기력한 캐릭터다. 치건이 옛날에 자기가 살았던 것과 비슷한 아이인 연규를 만나 오지랖 넓게 삼백만원을 주게 됐는데, 그게 오히려 연규를 낚시줄로 당긴 것처럼 됐다. 연규와의 호흡이 중요했다.
치건의 설정 중 제안한 게 있다면.
제가 제안한 것은 아니지만, 피디님께서 치건의 속살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옷을 입어도 브이넥을 입고, 목이 보이도록 하고, 가슴도 비주얼적으로 드러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런 모습이 캐릭터 형성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피디가 그렇게 디테일하게 따져야 하는 직업이구나를 느꼈다.
그동안의 연기 패턴과 다른 것처럼 보이는데.
어두운 역할이 처음은 아닌데, 최근에 ‘재벌집 막내아들’을 하게 되어 그런 이미지가 굳어진 것 같다. 오히려 고생한 역할을 한 적이 더 많고, 귀공자 성격에 제가 원래 끌리는 성격이 아니다.
귀에 상처 분장 등 외적인 변화도 했는데.
색다르게 분장을 했는데, 안 해본 분장도 해봐서 저도 좀 놀랍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연규와 치건의 관계가 잘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듀서를 왜 하고 싶었던 것인지.
요즘은 배우가 더 잘할 수도 있다. 많은 것을 공부하면 내가 하는 연기도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작에는 평소에도 너무 관심이 많고, 현재 대표님과 같이 제작사도 하고 있다. 작품 기획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다. 배우로서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도 많은데, 칸에 온 소감은 어떤가.
아기도 한 달 있으면 세상에 나오게 되고, 칸도 오게 되고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긍정적으로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