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시각적 언어에 굉장히 익숙한 시대가 됐잖아요. 미술, 촬영, 조명 등 한국에서 시각적 언어를 다루는 분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그분들이 한국 콘텐츠를 글로벌 콘텐츠로 발돋움시키는 역할을 하고 계신 거죠.”
KBS2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영화 ‘간신’, ‘안시성’, 여기에 최근 시청률 12%를 찍으며 파트1이 종영한 MBC ‘연인’까지. 굵직한 작품에서 한복 의상 디자인을 담당한 이진희 디자이너가 최근 일간스포츠와 만났다. 한예종 연극원 무대미술과 교수이기도 한 이 디자이너는 인터뷰 당일까지도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지만, 다소 어려운 질문에도 꼼꼼히 답변을 이어가며 유쾌한 인터뷰 현장을 만들었다.
이 디자이너는 한복 고유의 기품은 유지하면서도 현대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아름다운 한복 의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 2020년 제56회 대종상 영화제에서는 ‘안시성’으로 의상상까지 수상했다. 이 디자이너의 의상은 K컬처 붐이 일고 있는 미국과 일본, 동남아 등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이 디자이너는 ‘성균관 스캔들’과 ‘구르미 그린 달빛’의 한복 의상이 실제 해외에서 호응이 좋았다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성균관 스캔들’은 일본 팬들에게 반응이 좋아서 현지 호텔에서 패션쇼를 하기도 했어요. 과감한 시도를 많이 해서 그런지 이슈가 많이 됐죠. ‘구르미 그린 달빛’ 방송 이후에도 각 나라에서 다이렉트 메시지(DM)을 보내주셨어요. ‘한복 색감이 아름답다’ ‘한복을 맞춰 입고 싶다’는 요청이 국가별로 들어왔죠. 특히 ‘구르미 그린 달빛’에 출연한 박보검 배우의 해외 팬덤이 워낙 탄탄하다보니 더욱 열광적이었던 것 같아요.”
무대 미술의 한 분야 의상 디자인을 처음 시작해 이제는 전 세계에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이 디자이너. 단순히 입기 위한 ‘옷’을 뛰어넘어 옷이 주는 미학적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 디자이너는 자신이 생각하는 한복의 매력에 대해 “처음 한복을 공부했을 때는 패턴이 너무 단순하다 느꼈다”면서도 “한복이 가진 색, 선형, 소재가 굉장히 독특하고 힘이 있다”고 밝혔다.
“처음 의상을 배울 때 서양복식을 먼저 배웠어요. 디테일이 복잡하고 화려한 서양복식의 특징에 매료됐죠. 그에 비해 한복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을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이 없어졌다는 게 오히려 현대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른 것은 과감히 뺐다고 생각하니까, 한복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죠.”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 동시에 16부작까지 이어지는 드라마의 경우 주조연·엑스트라의 의상까지 합하면 수천 벌이 투입된다. ‘연인’은 병자호란이 발발한 1600년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조선과 청나라까지 두 나라의 옷이 필요하다. 이 감독은 “‘연인’에 4000벌이 넘는 의상이 들어갔다”면서 전반적인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대본을 처음 받으면 극 내용을 분석해요. 이 극이 갖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각 신을 쪼개서 보는 거죠. 또 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물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그러면 저절로 구상이 되는데, ‘간신’은 왕의 욕망이 붉은색으로 느껴져서 이 작품을 다 레드로 물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안시성’은 작품의 야생성을 질감으로 표현했고요. 디자인이 끝난 후에는 도식화를 한 뒤 제작팀과 미팅을 진행하죠. 제작이 끝나면 배우들이 직접 피팅을 하고, 촬영을 진행해요.”
이 디자이너는 한복 디자이너로 유명하지만 MBC ‘하얀거탑’, KBS2 ‘드림하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현대물에서도 의상 감독을 맡았다. 다만 이 디자이너는 현대물은 전체 의상을 담당하는 것이 아닌 특수복 위주로 디자인한다고 설명했다. 사극인 ‘연인’의 경우 백성들이 입는 옷까지 전부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이 디자이너는 “‘연인’의 역사 배경, 복식의 사실감을 드라마에서 구현해내고 싶었다”며 현실 고증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흔히 사극은 궁 안의 이야기 위주인데, ‘연인’은 능군리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서 출발하잖아요. 진짜 그 시대의 디테일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실제 고증을 보면 조선시대에 실크를 안감으로 쓰고 겉감에 무명을 댔다더라고요. 또 조선 초중기에는 풍성한 옷을 많이 입었어요. 기존 사극의 핏한 의상이 아님에도 배우들이 의상을 좋아해주셨어요. 남궁민씨는 피팅을 해보시고 ‘이제 연기만 잘 하면 되겠네요’라고 만족해했고, 안은진씨도 ‘한복이 참 예뻐요’라고 칭찬해주시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죠.”
마지막회 시청률 12%를 돌파하며 파트1이 종영한 ‘연인’. 파트2는 오는 10월 중 방송된다. 이 디자이너는 “파트1보다 파트2에서 훨씬 더 갈등이 고조되고 긴장감이 맴돈다”며 파트2 시청을 독려했다.
“내 자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으면 행복하지만, 알아봐주지 않으면 속상하고 안타깝잖아요. ‘연인’은 많이 알아봐주셔서 너무 감사하죠. ‘성균관 스캔들’이나 ‘구르미’처럼 화려한 의상을 입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님에도 의상도 함께 좋아해주셔서 감사하고요. 파트2에서는 배우들의 캐릭터 연기가 더 섬세해지는 만큼 저 또한 의상 작업에 열심히 몰두하고 있어요. 파트2를 꼭 기다려주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