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하기 위해 대학을 자퇴했다. 독립야구단에 들어가기 위한 비용을 모으고자 산업체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돈을 벌며 미래를 준비하던 어느 날, 공장 절단기에 장갑과 함께 손이 빨려 들어가는 큰 사고를 당했다. 하필 공을 던지는 오른손의 두 번째 손가락이었다. 급히 접합 수술을 받았지만, 손가락은 좀처럼 구부러지지 않았다. 공을 쥘 수조차 없었고, 억지로 관절을 굽히려 할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수반됐다.
하지만 박명헌(27·고양 PIC)은 포기하지 않았다. 6년간 이어진 긴 재활과 인고의 시간 끝에 2027시즌 KBO 신인 드래프트 트라이아웃 그라운드에 섰다. 그는 "후련하다. 지난 3년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마침내 이곳에서 내 야구를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라며 활짝 웃었다.
박명헌은 지난 1일 고양 국가대표야구장에서 열린 2027 KBO 신인 드래프트 트라이아웃에 참가해 10개 구단 스카우트 앞에서 쇼케이스를 펼쳤다. 메이저리그 출신 최지만(울산 웨일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뛰었던 최병용 등 20명의 참가자 사이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자신의 기량을 선보였다.
1999년생인 박명헌은 전주고 졸업 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으나 프로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이내 자퇴했다. 야구에 대한 꿈을 놓을 수 없었던 그는 독립구단 입단을 목표로 삼았다. 중학교 3학년 때 받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로 신체검사 4급 판정을 받았던 그는, 운동 경비를 직접 벌기 위해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해 복무했다. 그러나 2020년 여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손가락 부상을 당하며 큰 좌절에 빠졌다.
접합 수술을 받았던 박명헌의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 여전히 다 구부러지지 않은 상처와 굳은살의 흔적이 보인다. 고양=윤승재 기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공을 던지는 손이다 보니 야구 선수로서 커리어가 끝났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20대 때 내 인생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되물어보니, 타의에 의해 야구를 그만두게 된 것이 너무 큰 후회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어렵겠지만, 마지막으로 내 모든 시간을 한 번 쏟아부어 보자'고 마음먹고 다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재활의 시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1년여의 수술 및 상처 치료를 마친 그는 손가락 굴곡 각도를 회복하기 위해 전북 익산의 한 정형외과에서 눈물의 시간을 보냈다. 굳어버린 관절을 강제로 꺾고 펴는 물리치료가 매일 이어졌다. 그는 "끔찍하게 아팠다. 손가락은 신경이 예민한 부위라, 과거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후의 재활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라고 회상했다.
굴곡 재활이 끝나고 드디어 공을 던졌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극심한 통증 탓에 공이 베이스에 도달하지 못했다. '정말 끝인가' 싶었지만, 박명헌은 '시간이 지나면 신경이 안정될 것'이라는 의료진의 소견을 믿고 버텼다. 공을 던질 수 없는 기간 동안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했다. 식단과 운동을 철저히 통제하며 70kg이던 체중을 92kg의 단단한 체격으로 불렸다.
1일 2027 KBO 신인 드래프트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박명헌. 고양=윤승재 기자
재활과 훈련에 바친 시간들은 흔들리던 멘털을 잡아주는 지지대가 됐다. 박명헌은 "정말 많이 울었다"면서도, "지난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이 엄격하게 통제하며 준비했기 때문에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올해부터 독립야구단에서 뛰었는데, 적은 출장 기회 속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며 '내 방향이 맞았구나'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현재 대구에 거주하며 고양 소속으로 뛰고 있는 그는 매번 당일치기로 훈련과 경기를 오가는 험난한 일정 속에서도,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트라이아웃을 준비하며 소셜미디어(SNS)에 훈련 영상을 꾸준히 올리기도 했다. 그는 "나이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나를 어필할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함으로 시작했다. 영상을 직접 편집하며 내 투구 폼을 객관적으로 보게 됐고, 밸런스가 좋을 때와 나쁠 때의 패턴을 파악해 스스로 단점을 개선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1일 2027 KBO 신인 드래프트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박명헌. 고양=윤승재 기자
우여곡절 끝에 밟은 트라이아웃 무대. 박명헌은 "프로 구단에 입단해 내 이름으로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하는 상상을 수없이 했다. '그때는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버텼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지명될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기회가 왔을 때 꼭 잡고 싶었고, 내가 노력해 온 모습을 증명하고 싶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만약 지명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라고 담담히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오랜 시간 자신을 묵묵히 뒷바라지해 준 부모님께 고개를 숙였다. "과거 부상과 대학 자퇴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이 컸다. 그동안 부모님께서 얼마나 힘들게 운동 비용을 대주셨는지 알기에, 더는 손을 벌릴 수 없어 산업체에 들어가 스스로 돈을 벌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자식을 위해 이렇게까지 희생하셨구나'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제야 깊이 깨닫게 됐다. 지금은 그저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