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가 위기를 지웠다. 이제 ‘야마모토’가 우승을 완성할 차례다. 물론 무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대구다. 오타니 쇼헤이를 동경하는 이재희가 한국시리즈(KS) 4차전 승리를 이끌었고, 야마모토 요시노부처럼 던지고 싶다던 원태인이 5차전 선발 마운드에 오른다. 다저스 두 스타를 바라보며 꿈을 키운 삼성 라이온즈 투수들이 마지막 1승 앞에 섰다.
삼성은 지난 7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2026 신한 SOL KBO 포스트시즌 KS(7전 4승제) 4차전에서 10-5로 승리했다. 1차전 패배 뒤 내리 세 경기를 잡아 시리즈 전적 3승 1패를 만들었다. 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5차전까지 잡으면 2014년 이후 12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우승으로 향하는 길목을 먼저 지킨 선수는 이재희였다. 7-4로 쫓긴 5회 초 1사 만루에서 등판한 그는 2⅔이닝 동안 타자 8명을 모두 범타로 돌려세웠다. 생애 첫 KS 등판에서 승리투수와 데일리 최우수선수(MVP)를 모두 차지했다. 투구를 마친 그를 크리스 페덱과 아리엘 후라도가 안아주며 부른 이름은 ‘테무산 오타니’였다. 평소 이재희의 오타니 사랑을 아는 동료들의 유쾌한 칭찬이었다.
이재희에게 오타니는 단순히 좋아하는 선수가 아니다. 투구폼과 준비 동작, 루틴을 연구하고 따라 하며 자신의 야구를 발전시키는 기준이다. 타자 등장곡까지 사용했고, 내년에는 투수 등장곡도 따라 쓰겠다는 생각이다. 올해 등번호를 17번으로 바꾼 이유 역시 오타니였다. 같은 번호를 원했던 박승규가 양보하고 구자욱이 지원하면서, 동경하던 선수의 번호를 등에 새겼다.
삼성 이재희. 삼성 제공
연초 이재희는 “의미 있는 번호를 달았으니 이제는 삼성의 상징이 되는 번호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당시에는 팔꿈치 수술 뒤 복귀를 준비하던 재활 선수였다. 지난해 가을야구도 박승규와 TV로 지켜봐야 했다. “말로만 하면 안 된다. 복귀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던 약속은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투구로 이어졌다. 오타니를 따라 달았던 17번이 삼성 팬들에게도 특별한 기억을 남겼다.
이재희는 4차전 뒤 “처음에는 야구 실력을 좋아해서 빠져들었는데, 알수록 인성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 모든 면이 좋다고 생각했다”며 “본받자는 생각으로 따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타니처럼 쓰레기를 줍는 습관까지 실천한다는 그다. 동경은 흉내에서 끝나지 않았다. 만루에서도 자신의 공을 믿고 승부한 이재희는 삼성의 승리를 지키는 투수로 성장했다.
이제 바통은 원태인이 받는다. 원태인이 이번 가을 떠올린 이름은 야마모토다. 월드시리즈에서 선발로 던진 뒤 다시 구원 등판해 팀의 우승을 도운 야마모토의 모습은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선발과 불펜이라는 보직의 경계를 넘어, 팀이 필요할 때 마운드에 서는 투수. 원태인이 꿈꾸는 가을의 모습도 같았다.
삼성 강민호-원태인. 삼성 제공
원태인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이미 불펜으로 힘을 보탰다. KS 미디어데이에서는 우승 순간에 관해 “선발 완봉이나 마지막 세이브”를 이야기했다. 경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든,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든 우승하는 마운드 위에 있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팀이 우승까지 1승을 남긴 상황에서 5차전 선발 등판 기회가 찾아왔다.
박진만 삼성 감독도 “내일 홈에서 끝내겠다”며 총력전을 예고했다. “이기기 위해 쓸 수 있는 투수는 다 쓰겠다”는 각오다. 원태인이 선발로 승부의 문을 열고, 필요하다면 동료들이 뒤를 받친다. 이재희가 4차전에서 보여준 것처럼, 우승으로 향하는 과정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위기를 넘길 투수가 필요하다.
‘오타니’는 먼저 자신의 몫을 해냈다. 이제 ‘야마모토’를 꿈꾸는 에이스가 안방 마운드에 오른다. 대구에 뜨는 두 이름의 주인공은 결국 이재희와 원태인이다. 동경하던 스타의 등번호와 투구를 좇던 이들이, 이제 삼성의 우승 장면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