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3월 7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의 친선전. 한국과 이라크 선수들이 경기 전 일렬로 서 있다. 한국 선수단 가장 왼쪽이 주장 조광래다. 송기룡 대한축구협회 심판운영실장 제공. 한국 축구대표팀 '천재 미드필더' 조광래의 A매치는 '99경기'에서 멈췄다.
1977년 2월 14일 싱가포르와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뒤 1986년 10월 5일 서울아시안게임 결승 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까지 조광래는 약 10년 동안 한국 축구의 간판 미드필더였다.
과거 한국 축구에서 볼 수 없었던 창의적인 플레이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정교한 패스와 폭넓은 시야 그리고 영리한 플레이로 '컴퓨터 링커'라 불리며 수많은 영광을 품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 출전했으며, 1980년 쿠웨이트 아시안컵 준우승 멤버였다. 그리고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외에도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예선, 메르데카컵 그리고 한·일 정기전까지 조광래는 한국 축구를 위해 뛰고 또 뛰었다. 헌신하고 희생했다. 10년 가까이 태극마크를 달고 수많은 경기를 뛴 조광래. 집계된 A매치 수는 99경기였다.
2018년까지는 그랬다. 조광래는 A매치 100경기를 뛰면 가입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센추리클럽'에 단 1경기가 모자랐다.
하지만 2019년에는 달라졌다. 2019년 초 조광래의 잃어버린 100번째 A매치를 찾았다. 그는 '센추리클럽' 가입 조건을 갖췄다.
대한축구협회(축구협회)는 한국 축구 선수들의 누락된 A매치 기록을 찾는데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던 과거에 눌러 앉을 수 없었다. 한국 축구의 진정한 가치를 찾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기록을 찾아 나섰다.
이런 행보의 중심에는 송기룡 축구협회 심판운영실장이 있었다. 그는 한국 축구 기록 전문가다. 유실된 선수들의 기록을 찾는데 공을 들였다. 동남아시아까지 가서 도서관을 찾았고, 신문을 뒤졌으며, 축구 원로들을 만나 생생한 증언들을 수집했다. 해외에 살고 있는 이들을 상대로도 자료를 모으는 노력도 기울였다. 기록원을 해외에 파견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 중 하나가 조광래의 100번째 A매치를 찾는 것이었다. 조광래의 누락된 경기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기울인 끝에 드디어 찾아냈다. 100번째 경기라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조광래의 누락된 1경기는 1982년 3월 7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의 친선전이었다.
한국은 0-3으로 패배했다. 이 경기는 신문 기사로 남아있지 않았다. 그 어떤 문서로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광래가 이 경기에 뛰었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 자료를 찾아냈다.
송 실장은 "당시 이라크전에 뛰었던 최경식 선수가 일기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일기장을 확인해 보니 누가 출전을 했고, 어떤 경기를 했는지 나와있었다. 또 최경식 선수와 함께 경기에 뛰었던 이태호 선수가 조광래 선수가 주장으로 경기를 뛴 것을 증언했다"고 밝혔다.
더욱 결정직인 증거, 당시 사진을 입수했다. 이라크전 킥오프 전 두 팀 선수들이 심판과 함께 서 있는 사진이다. 한국 선수단 가장 왼쪽에 있는, 심판 바로 옆에 있는 선수가 주장 조광래다. 사진이 흐릿하기는 하지만 분명 조광래다.
송 실장은 "이라크에 살고 있는 사람을 지인을 통해 알게됐고, 그에게 사진을 한 장 받았다. 출전선수 11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멀리서 찍었고, 화질이 좋지 않아 흐릿하지만 심판 바로 옆 선수가 조광래 선수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료가 증명했다. 조광래는 A매치 100경기를 뛰었다.
이에 조광래 현 대구 FC 대표이사는 기쁨을 드러냈다. 그는 일간스포츠를 통해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안타깝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다. 예전에는 선수들 기록을 잘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수들이 직접 챙길 상황도 아니었다. A매치 100경기가 되지 않아 안타까웠다. 이렇게 100경기를 찾으니 너무 좋다. 축구협회에서 신경을 써줘서 고맙게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구 대표이사의 본능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우리 대구 선수 중 누구라도 대표팀에서 내 기록 이상을 남겨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대구가 더욱 사랑받는 팀이 될 수 있다.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조광래의 A매치가 100경기로 입증이 됐으나 '센추리클럽' 가입자로 국제축구연맹(FIFA)의 공식 승인을 받기 위해서 남은 일이 있다. 조광래가 올림픽 예선을 뛰기 때문이다.
지금은 23세 이하 대회지만 조광래 시절에는 A대표팀이 올림픽에 출전했다. 연령 제한이 시작된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이전까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권 대부분의 국가는 올림픽 예선에 A대표팀을 출전시켰다. 실질적으로 A매치였다.
그런데 FIFA는 올림픽을 A매치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FIFA가 공인한 한국 센추리클럽 가입자는 차범근·홍명보·황선홍·이운재·박지성·이영표·유상철·김태영·이동국·기성용 등 10명이다. 축구협회와 이견이 나오는 부분이다.
아시안게임은 다르다. FIFA는 연령 제한이 없었던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까지는 A매치로 인정을 해준다. 유럽과 남미 등에는 아시안게임과 같은 대회가 없어서 세계적인 기준을 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광래는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예선 6경기를 뛰었다. 이 경기를 A매치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지가 관건이다.
과거 축구협회는 차범근의 A매치 누락 경기를 수집한 뒤 FIFA에 전달한 바 있다. 당시 FIFA에서 돌아온 대답은 "올림픽은 A매치로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을 인정해주면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올림픽 출전을 인정해줘야 한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차범근 당시 때는 누락 기록만 FIFA에 보냈다. 이번에는 아시아의 특수성을 강하게 어필할 예정이다.
송 실장은 "차범근 선수 기록을 FIFA에 보낼 때는 다른 설명 없이 기록만 보냈다. 다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기록과 함께 바르셀로나올림픽 전까지 한국과 아시아는 A대표팀이 출전했다는 내용을 추가로 넣을 것이다. 아시아의 특수성을 감안해 아시아만이라도 A매치로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FIFA가 인정해 줄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광래의 100번째 경기는 올해 하반기 FIFA에 보고할 예정이다. 조광래와 함께 A매치가 누락된 김호곤(124경기) 조영증(112경기) 박성화(107경기) 허정무(103경기·이상 축구협회 집계) 등의 자료를 모두 모아 한 번에 보낸다는 계획이다.
송 실장은 "지금까지 축구협회가 최선을 다해 누락된 기록을 찾았다. 이제 더 이상 찾기 힘들 것으로 본다. 추가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지금껏 모은 자료들을 한 번에 FIFA에 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송 실장은 이런 노력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과거 한국 축구는 기록에 소홀했다. 기록은 중요한 것이다. 정확한 기록은 한국 축구의 명예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