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수 MC몽과 차가원 원헌드레드 대표 사이의 120억원대 대여금 분쟁과 도박빚 대납 의혹, 해외 원정도박과 불법사채 이용을 밝힌 BJ 철구의 60억원대 차용금 사기 혐의 피소가 잇달아 보도됐다. 다만 돈의 실제 용도와 형사책임은 아직 확정된 바 없고 철구 사건도 수사 초기다. 구체적 진실은 수사와 재판이 가릴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왜 사람은 낯선 이보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더 쉽게 돈을 건네고,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하고도 가장 늦게 돌아서는가.
낯선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계약서와 담보부터 확인한다. 그러나 가까운 사이에서는 관계 자체가 담보를 대신한다. 상대가 자신을 속였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 사람뿐 아니라 그를 믿어온 자신의 판단까지 부정해야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부조화’다. 그래서 피해자는 거짓말을 의심하기보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이번 한 번만 넘기면 되겠지”라며 그 거짓말이 사실이기를 바라게 된다.
도박빚이 얽히면 상황은 더욱 잔혹해진다. 이미 빌려준 돈을 포기할 수 없어 더 많은 돈을 건네는 ‘매몰비용의 덫’에 빠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송금은 도움일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송금은 기존 돈을 되찾기 위한 구조작전이 되고, 세 번째 송금은 모든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된다. 사기범은 바로 그 절박함을 이용한다.
“우리가 서류를 쓸 사이냐”, “나를 못 믿느냐”는 말도 경계해야 한다. 이런 말 한두 마디만으로 가스라이팅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합리적인 확인을 배신으로 몰고 자기 보호에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압박이 반복된다면, 친밀함은 가스라이팅의 도구가 된다. 특히 친분과 사업의 경계가 흐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사적인 호의가 어느 순간 투자금이나 대여금으로 바뀌고, 관계가 깨진 뒤에야 돈의 성격을 둘러싼 다툼이 시작된다.
다만 돈을 갚지 못했다는 결과만으로 곧바로 사기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돈을 빌릴 당시의 기망이다. 당시부터 약속한 때에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는 사정을 숨기거나, 자금 용도와 상환재원을 속여 돈을 받았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차용 당시의 재산 상태와 기존 채무, 실제 사용처와 반복 차용 과정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차용증이 없다고 채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돈이 대여금인지 투자금이나 선물인지를 입증하기는 훨씬 어려워진다. 차용증과 계좌이체 메모, 자금 용도와 변제기를 확인한 메시지는 불신의 흔적이 아니다. 관계가 무너졌을 때 약속과 변명을 구분해 주는 기록이다.
계약서는 관계가 깨질 것을 바라며 쓰는 문서가 아니다.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확인함으로써 관계를 지키는 안전장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약속은 더 선명해야 한다. 사람을 지키는 믿음은 눈을 감는 믿음이 아니라, 서로의 책임을 분명히 바라보는 믿음이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