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정은이다. 천만 영화 ‘기생충’에서 우비 하나를 걸치고 분위기를 순식간에 뒤집은 그가 이번에는 딸을 잃은 엄마로 변신, 서늘한 복수극의 중심을 이끈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나는 네 모녀의 복수극이다.
이정은은 극중 동네 수선집 옥패션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의 엄마 옥실 역을 맡았다. 옥실은 막내딸 경주를 살해하고 8년의 실형을 살고 나온 백상현(변요한)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를 납치한다. 옥실은 첫째 딸 장주(공효진)부터 둘째 영주(박소담), 셋째 동주(이연)을 설득해 가족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알리바이를 계속 만들면서 경주로 향한다.
옥실은 ‘경주기행’에서 사건을 발발시키고 끝까지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다. 딸을 죽인 백상현을 향한 오랜 복수심에 가장 먼저 사건을 계획하고, 남은 세 딸을 하나의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딸을 잃은 엄마의 멈춰있는 시간을 이정은은 세심한 연기로 표현해낸다.
특히 이정은은 옥실이라는 캐릭터를 위해 외적으로도 변신했다. 정돈되지 않고 부스스한 머리와 화장기 없는 꼬질한 얼굴로 딸을 잃고 자신의 삶을 돌볼 여유가 없는 엄마를 표현해낸다. 그러나 그는 내적으로 자식을 잃고 슬픔에만 빠져있는 수동적인 엄마에 머물지 않고, 가슴 속에 품어온 복수심을 서늘한 집념으로 바꾸고 직접 계획하고 행동하는 주체적인 엄마로 넘어선다.
그만큼 ‘경주기행’에 출연한 배우들도 이정은이 연기한 옥실을 극의 중심으로 꼽았다. 공효진은 “나를 위해 복수해 줄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한국에서는 엄마일 것”이라고 언급했고, 박소담 역시 “엄마의 감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대본 그 자체다. 어느 순간 보면 옥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인자를 살해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계획을 세우는 인물이지만, 이정은이 연기했기에 설득력 있게 표현이 된다는 의미다.
이정은의 대표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천만 영화 ‘기생충’이다. 극중 박사장(이선균)의 곁에서 오랜 시간 일해온 가사도우미 국문광 역할을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바 있다. 특히 국문광이 영화 중반 비 내리는 밤에 우비를 입고 다시 박사장의 집을 찾는 순간은 ‘기생충’의 분위기와 장르 자체를 뒤집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경주기행’에서 이정은은 다시 우비를 입는다. ‘기생충’에서 우비를 입고 장르를 뒤집었다면, ‘경주기행’에서는 우비를 입고 복수극의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킬 전망이다.
무엇보다 ‘경주기행’은 가족의 중심인 옥실에 이정은이 합류하면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연출을 맡은 미조 감독은 구상 단계부터 이정은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옥실을 그려왔다고 밝혔다. “옥실은 가슴 속 불덩이를 꺼뜨리기 위해 달려가지만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갈등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라며 “옥실의 깊은 내면을 이정은이 대체 불가한 연기로 완성해 냈다”며 극찬했다.
이수진 기자 sujin06@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