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죽이는’ 영화의 탄생이다. ‘경주기행’이 스릴러의 긴장감과 블랙코미디의 서늘한 위트, 로드무비의 깊은 정서를 영리하게 포개며 독특한 가족극을 완성했다.
이야기는 엄마 옥실(이정은)과 세 딸 장주(공효진), 영주(박소담), 동주(이연)가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여행지는 8년 전 세상을 떠난 막내딸 경주의 수학여행지, 초대받은 게스트는 그곳에서 경주를 살해한 백성현(변요한)이다.
‘경주기행’은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족이 해소되지 않는 분노 끝에 직접 복수에 나서는 ‘사적 제재’를 소재로 삼는다. 하지만 내내 비장하거나 어두운 심연으로 함몰되는 작품은 아니다. 영화는 경주에게 벌어진 비극의 전말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허탈한 법의 공백을 고발하는 데 힘을 쏟지도 않는다.
대신 집중하는 건 ‘가족’이다. 메가폰을 잡은 김미조 감독은 복수극의 외피 안에 가족영화의 결을 새겨 넣었다. 네 모녀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여정에서, 묻어뒀던 상처를 마주하고 감춰왔던 감정을 들여다본다. 결국 복수라는 극단적인 선택 너머에 놓여 있는 건 가족을 향한 지독한 형태의 사랑이다.
영화 ‘경주기행’ 스틸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슬픔과 분노를 예리한 유머의 날로 벼려내는 감각도 돋보인다. 김 감독은 벌레 한 마리 직접 죽여본 적 없는 네 사람이 무려 살인을 도모하는 평범하고도 비범한 풍경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남겨진 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온 상실과 서로 다른 상처가 부딪히며 빚어내는 균열은 서툴고 삐걱거리는 여정에 기묘한 웃음을 만든다.
배우들의 열연은 다층적인 장르와 서사를 지탱하는 단단한 축이다. 엄마 옥실로 극을 이끈 이정은의 연기는 경이롭다. 이정은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구제받지 못한 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외길에 선 옥실의 절박함과 슬픔을 삼키고 또 토해낸다.
세 딸은 옥실은 물론, 영화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기능한다. 공효진, 박소담, 이연은 생활밀착형 연기로 캐릭터를 선명하게 구축하고, 실제 자매를 방불케 하는 호흡으로 극의 온도를 조절한다. 특히 날 것의 에너지로 활력을 더한 이연의 연기가 눈에 띈다. ‘그리고’ 변요한은 복수의 표적이 된 백성현의 불안과 분노를 날카롭게 포착하며 극의 긴장감을 붙든다.